I.

되돌아보니, 80년 가까운 내 생애에서 8년을 조금 넘는 기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처음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5년 남짓 유학 생활을 했고, 이후 독일 만하임(Mannheim), 미국 시라큐스(Syracuse), 그리고 캐나다 벤쿠버(Vanquver)에서 각각 1년씩 그곳 대학에 연구교수로 있었다. 이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나라, 도시들은 저마다 삶의 양식과 지적, 문화적 특성에 차이가 있어, 거기서 보낸 세월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하고, 공부와 생각을 여물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영감과 숱한 추억을 남겼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안전과 보건, 문화, 환경, 교육, 인프라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랭킹을 정하는데, 빈이 몇 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벤쿠버도 늘 호주의 멜버른과 더불어 최상위 2, 3위를 다툰다. 그리고 만하임 옆 도시로 내가 한때 제집 드나들 듯했던 하이델베르크도 자주 최상위권에 진입한다. 이렇듯 내가 주거환경 및 삶의 질의 관점에서 세계 최상의 도시들에서 살았던 데 대해, 뒤늦게 놀란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

사정이 이럴진 데, 보기에 따라서는, 내가 의도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만 골라 마음먹고 찾아다닌 느낌 마저 준다. 사실은 전혀 그게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는 이들 도시 중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고, 또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빈 얘기를 하고자 한다.

 

                                    II.

빈은 참 아름다운 도시다. 풍광도 그렇고, 문화와 예술도 그렇다. 도시 면적의 절반 이상이 공원, 숲 등 녹지로 이루어져 얼마 전 세계 최고의 녹색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알프스에서 제공되는 신선한 식수는 예부터 명성이 높아, 빈의 말()은 파리에 가면 좀처럼 물을 마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물을 담은 물통을 따로 매달고 갔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도시 곳곳이 빼어난 역사유적지이자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여서, 도시산책 자체가 역사기행의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이 도시의 음악과 미술, 건축, 연극 등은 그 미학적 특성과 창의성이 돋보여, 빈에서는 세계 어디서도 향유할 수 없는 최상의 문화와 예술을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다.

 

나는 빈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학문과 지식의 함양 못지않게, 격조 높은 문화와 예술에 접하고 그것을 통해 문화적 감수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게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한동안 나와 기숙사에서 한방을 썼던 독일 유학생 슈미트는 빈의 문화와 예술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빈 대학에서 이른바  문화학기’(文化學期 / Kultursemester)를 보내려고 한 학기 예정으로 왔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턱없이 모자라 한 학기를 더 연장했다. 그는 주말이면, 으레 콘서트, 오페라, 연극을 찾거나. 미술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장과 공연장을 순회했다. 당시 빈 국립 오페라 하우스학생 입석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단돈 몇 천원 정도였으니, 누구나 별 부담 없이 세계 최고의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처럼 빈은 고급문화를 대중문화로 전환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슈미트는 유학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면서, 내게 자기는 이제 문화인으로 거듭났고, 그것은 자신의 일생일대의 자산이 되었다고 흡족해 했다.

 

                                      III.

나는 그곳에 살면서, 특히 세기말(世紀末) 의 지성문화와 예술에 깊이 빠져있었다. 세기말, 노쇠한 합스브르크 제국은 바야흐로 황혼길에 접어드는데, 그곳에서 문화와 지성이 미증유의 황금기를 구가했다는 것은 자못 역설적이다. 빈은 그 이른바 벨 에포크’(좋았던 시절) 시대에, 루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 견줄만한,  천재들과 반항아들의 경연장이었다. 세기말 빈의 두드러진 특색은 융합과 재창조였다. 모든 예술장르와 학문분야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긴밀하게 상호 교류했고, 이 통섭과 융합의 과정을 통해 놀라운 혁신과 재창조를 이룩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들을 지적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기존의 전통은 파괴되거나 훼손되기보다는 새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갔고, 옛것과 새것은 절충되기보다는 융합되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빈의 '카페하우스'는 바로 이러한 지적,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는 담론의 장이자 새 역사의 창작공간이었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출간된 1900년 앞뒤 세기말 빈은 유럽지성사에서 감히 어떤 도시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 자리를 차지한다, 전통의 해체와 재구성 속에서 현대적 자아를 추구했던 세기말 빈은 모더니티를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을 앞서서 형상화하고 있었다.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지테, 바그너, 브루크너, 볼프, 말러, 쇤베르크, 프로이트, 마흐, 볼츠만 등이 새 문화의 지평을 여는데 큰 몫을 했다. 오늘 많은 이가 말하는 통섭은 바로 세기말 빈 지성문화의 공통분모였다.

 

19191차대전이 끝난 후, 거대제국 합스부르크의 잔해 위에 오스트리아는 인구 7백만의 작은 나라로 다시 태어난다. 빈은 생존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약소국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정신적 제국이었다. 나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빈은 거의 모든 학문과 예술, 지성과 문화영역에서 지적 황금기를 구가했다. 음악과 문학 및 각가지 시각 및 공연예술은 물론 의학,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논리학과 철학, 자연과학, 경제학과 법학 등 주요 학문분야 마다 고유의 학파를 형성하며 학문적 위세를 떨쳤다. 물론 거기에는 세기말 빈의 연속과 심화라는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1930년대 초 히틀러의 침공이 있기까지 지속된 빈의 지성문화는 마치 꺼지는 불꽃이 마지막 힘을 다해 찬연한 광채를 발하는 것과 같은 신비한 힘을 지녔다.

당시 빈의 사회과학의 학문적 세계만 보아도, 빈 경제학파의 계보는 미제스, 슘페터, 하이에크로 이어졌는데, ‘기업가 정신창조적 파괴의 개념으로 경제 및 경영학의 혁신의 물결을 일으킨 슘페터는 1919년 오스트리아의 재무부장관을 지냈다. 그는 훗날 민주주의 이론을 발전시켜 정치학자로서도 대가의 경지에 이른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드러커도 빈에서 생장하며, 어린 시절 슘페터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현대 법학의 태두, 켈젠은 법실증주의와 순수법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일반체계이론(genral system theory, GST)의 창시자 베르탈란피, 게임이론의 대가 모르겐슈타인, 경험주의 사회학의 거장 라자스펠트도 그 시절 모두 빈 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학제간(學際間) 연구와 혁신적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학문세계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빈 특유의 문화적 유전자인 융합과 재창조를 웅변적으로 실천한 학자들이다.

오스트리아의 지성사를 집필한 존스턴은 책에서 한 시대에 혁명적 영향력에서 프로이트, 후설, 비트겐슈타인, 켈젠 또는 노이라트에 버금갈 만한 철학자나 사회이론가를 배출한 나라는 없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서 나라이라는 도시로 바꾸어 써도 크게 다르지 않다.

 

                                      IV.

나는 빈에서 5년 남짓 살면서, 거기서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공부하면서 가정도 꾸려야 했기에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다 보니, 이 도시가 선사하는 갖가지 살기 좋은 조건들을 고르게 누리지 못했음은 물론, 내가 열망했던 빈의 정신세계 속에도 제대로 깊숙이 진입해서 그 진수(眞髓)를 파지하기보다는, 늘 그 언저리에서 맴돌다 말았다. 그래서 아직도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내 찬란한 20대 후반, 5년간을 그 격조높은 정신적 공간에서 실존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반세기 저 너머,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맴돈다. 무엇보다 나는 빈에서 살면서, 고단한 삶이라 힘들었으나, 별로 불쾌했던 기억이 없다. 내가 만났던 은사, 친구, 이웃 모두가 호의적이었고, 인정이 넘쳤다. 한 마디로 그곳  사람들이 그렇게 좋았다.그래서 내게 빈은 내가 살았던 가장 좋은 사람들의 도시로 추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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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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