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과거에는 문인, 학자, 예술가들은 이름 외에 별칭으로 아호(雅號)를 가졌다. 흔히 집안 어른이나, 스승 혹은 친구들이 지어서 불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호에는 자신의 인생관, 좌우명, 출신(지), 선호 등을 담았는데, 많은 이가 2종 이상의 아호를 가졌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화가인 김정희(金正喜)는 추사(秋史)를 비롯하여 완당(阮堂)ㆍ시암(詩庵)ㆍ예당(禮堂)ㆍ노과(老果) 등 200여개(일설에는 503개)를 가졌다. 단연 기록보유자가 아닐까 한다. 그런가 하면, 김소월(金素月 김정식), 김영랑(金永郎 김윤식), 이육사(李陸史 이원록), 박목월(朴木月 박영종) 등 한국의 대표 시인들은 우리에게 주로 아호로 기억되고 본명은 거의 잊혀졌다. 역시 천하의 묵객들에게는 돌림자를 따라 정해지는 본명보다 자신의 숨결이 감도는 풍아(風雅)한 아호가 제 격이 아닐까 한다

 

우남(雩南 이승만), 백범(白凡 김구), 해공(海公 신익희), 인촌(仁村 김성수), 몽양(夢陽 여운형) 등 한국 현대사의 이름있는 정치인들도, 본명 보다 아호로 불릴 때 우리에게 그 정치적 이미지가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한글학자 주시경(한뫼), 최현배(외솔), 허웅(눈뫼)은 아호를 순수 우리말로 지어 우리의 얼을 아로새겼고, 사상가 함석헌은 아호를 씨알, 바보새로,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은 옹기로 지어, 민초(民草)를 연상케 하는 토속적 은유를 통하여 자신의 추구하는 세계관을 담았다.

 

                                    II.

 

아호가 때로는 짓궂은 유머로 혹은 풍자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선생(1892-1968)이 하루는 가까이 지내는 정인보(鄭寅普)선생(1893-1950)를 찾아, 위락당(爲樂堂)이라는 아호를 권했고, 정인보 선생은 이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 후 얼마 후, 가람선생이 정인보 선생을 다시 찾아 크게 웃으면서, “여보게, 자네 아호를 거꾸로 읽어보게!”라는 것이 아닌가. 거꾸로 읽으면, ‘당나귀’가 되는데, 워낙 정(鄭)씨 성(姓)이 당나귀를 뜻하기 때문에 이에 빗대어 놀려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일은, 정인보 선생이 크게 놀림을 당하고도, 가람이 건네 준 아호 위락당에서 가운데 ‘락’ 자만 빼고, 자신의 호를 위당(爲堂)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당대의 국학의 대가, 두 분이 아호를 둘러싸고 주고받은 수 싸움이 역시  고수답지 않은가. 무엇보다 끝내 서로를  격의없이 품에 안은 그 결말이 너무 아름답다.

 

                                    III.

 

우리 앞 세대만 해도 아호를 지닌 분들이 꽤 되었던 것 같은데, 우리 세대에 이르러는 이미 아호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문인, 학자, 예술가 들 가운데 아호를 가진 사람도 드물거니와, 아호를 지녀도 누가 기억하고 불러주는 이가 별로 없어 그냥 사장(死藏)되기가 일쑤이다. 

 

나는 일찍부터 아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 필요성도 별로 느끼지도 않았다. 또 마음 한 구석에 아호를 갖는 것  자체가 괜히 잰체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 때문에 따로 아호를 갖지 않았다. 그런데 약 30 년 전에 영남 제일의 서예가인 청남(菁南) 오재봉 (吳濟峰) 선생(1908-1991)께서 내게 손수 ‘현강(玄岡)’ 이라는 아호를 지어 주셨다. 내 제자 한 사람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청남 선생은 나를 한번 만나 보신 후, 따로 청을 드리지도 않았는데, 손수 아호를 지어 내게 보내셨다. 고맙게 그지없었다. 음과 뜻 모두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그래서 은밀하게 가슴에 안았다.

 

이후 10여년 지나, 이곳 속초/고성으로 온 후, 나는 새로 지은 집을 현강재로, 그리고 새로 개설한 블로그 역시 현강재라 부르면서, 은연중에 내 아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 좋아서 읊조리는 수준이지, 아호를 뭇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장광설(長廣舌)하거나 많은 사람이 불러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IV.

그러면서 내심으로 적어도 가까운 친구나 제자 몇 명 정도는 내 아호를 기억하고 장난스레 불러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작은 기대마저 산산이 깨졌다. 내 아호가 공개된 지 10여년이 지나도 나를 현강이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미 아호의 시대는 지났다는 것을 절감했다. 보다 직설적, 직면(直面)적이고 단순화, 명료화를 지향하는 오늘의 세태에서 얼마간 여유를 가지고, 넌지시, 조금은 은밀하게, 그리고 뭔가 함축성을 지니며 은근히 다가가는 아호 접근법은 전혀 맞지 않는 게 분명하다. ‘현강재’는 그냥 안병영의 불로그 이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안병영이라는 공식적 명칭 이외에 어찌보면 그 이름보다 더 의미 있는 인간의 총체성, 즉 그의 꿈이나 인격, 인간적 향기를 표상하는 또 하나의 의미복합체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불현듯 김춘수의 ‘꽃’이 연상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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