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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내 아호(雅號) 현강(玄岡) 이야기 II

2020. 12. 5. by 현강


                           I.
처음 청남(菁南) 선생으로부터 ‘현강(玄岡)’이라는 아호를 받고, 나는 급한 대로 옥편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한자로 ‘현(玄)’은 검(붉)다, 멀다, 아득하다, 심오하다, 하늘 등의 뜻과 함께 노자. 장자의 도에 이르기 까지 실로 다양한 의미를 지녔고, ‘강(岡)’은 산등성이, 고개, 작은 산 등을 뜻했다. 쉽게 ‘아득히 보이는 작은 산’ 정도로 이해해도 그 그림이 낭만적으로 가슴에 다가왔다. 또 여기에 노장철학을 곁들여 보다 심오한 뜻을 부여해도 내 생활철학의 관점과 그리 멀지 않게 느껴져 그 철학적 무게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현강’이라는 음(音)또한 듣기에 그리 경박하지 않고, 다분히 진중하고, 사려 깊은, 그러면서 어딘가 결의에 찬 울림이 있어 좋았다. 그래서 무척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누구에게 내 아호를 대놓고 말하기가 쑥스럽고, 부끄러워 마치 혼자 숨겨놓은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7년 내가 정년퇴직을 하자 제자 40명이 글을 모아 내 정년기념 문집을 냈는데, 놀랍게도 그 제목이 <큰 스승 현강 안병영>이었다. 알고 보니 청남선생과 인연이 있었던 그 제자가 거기에 필자로 참여하면서 내 아호를 공개했던 것이었다.. 그 책의 출간이 내게 알리지 않은 채 진행되었기 때문에 나는 인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책의 제목은 물론, 이 책 속에 옛날에 청남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아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청남 선생은 안타깝게도 그 때 뵌 후 얼마안가 타계하셨다.

  


                            II.
그때 청남선생은 설명을 곁들인 아호, ‘현강재(玄岡齋)’라는 내 서재 이름, 그리고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을 변용한 ‘처무위지행학불언지교 (處無爲之行學不言之敎)’를 크고, 작은 것으로 두 장을 써 보내 주셨다. 대서예가의 작품들이기 때문에 하나 같이 명품이었다. 청남선생은 서예가를 넘어 심오한 구도자의 풍모를 지녔는데, 한 때 해인사에 출가했다가 환속 후 노장사상에 크게 심취하셨던 분이다. 그가 내게 보내 주신 위의 글귀도 그의 이러한 사상적 바탕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모두 액자에 넣어 고성 내 서재에 걸어 놓았는데, 안타깝게도 아호 뜻풀이 액자와 현강재 액자, 그리고 작은 <도덕경> 액자가 모두 작년(2019) 고성 산불에 사라졌다. 그러나 다행히 큰 <도덕경> 액자는 서울집에 있었기에 화마를 피했다.

                         

                            III.
아호는 삶의 지향 내지 수양의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인물에 대한 특성을 반영하기도 한다고 한다. 청남 선생이 내 아호를 지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일단 내 아호를 내가 지향해야 할 내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깊은 뜻은 알지 못하나 평소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 내지 “자연 그대로의 삶”을 뜻하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은 내게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고, 또 말년의 내 삶의 방식과 흡사해서, 청남 선생이 내 앞날을 미리 꽤 뚫어 보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래 액자는 아호에 대한 설명 글귀이다. 실물은 불에 타버렸으나 다행이 사진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한국지성사를 공부하는 제자인 안동대학교의 이병갑 교수에게 뜻풀이를 청했다.

 


내 아호는 <주역>의 58번째 중택태괘(重澤兌卦)〔태는 형통하니, 곧아야 이롭다(兌亨 利貞). 두 못이 나란히 있어 한 못이 마르면 다른 한쪽이 채워주는 형상이니, 군자는 이런 이치로 벗들과 학문을 하고 익힌다.(麗澤兌 君子以朋友講習)]에서 비롯되는데, 의역을 하면 교육활동을 통하여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괘로 해석된다. 이어 아호를 해설한 글귀는 “큰 인품은 천 사람을 담고, 어진 덕성은 사해를 길하게 한다〔大盛千人, 仁吉四海.〕”는 뜻이 된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내용이나, 내 부족함을 채워줄 지향 목표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서재에 걸어 두었던 아래의 액자도 화마에 사라졌다. 자주 올려다보며 흐뭇해 했는데 아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아래의 노자 도덕경 액자는 서울에 두었기에 다행히 불길을 피했다. 백번 다행한 일이다.
이 글귀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성인은 무위의 일을 하며, 말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 〔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라는 구절을 변용한 것인데, 굳이 해석하자면, “무위의 행위를 하고, 불언의 가르침을 배운다〔處無爲之行, 學不言之敎〕”라는 뜻이다. 실로 금과옥조와 같은 내용이 아닌가. 


                                  IV.
이제 나는 아호를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내 마음 속에 고이 담아 나를 바르게 세우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도구로 삼으려 한다. 그러면 더없이 유용한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호의 참뜻이 내 안에서 체화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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