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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별처럼 수많은 '무명가수'를 위하여

2021. 1. 23. by 현강

                   I.

트롯트 열풍이 대단하다. T.V 방송국마다 토롯트 경연을 펼치고 성악, 발라드 등 다른 장르의 가수들도 이제 별로 주저하지 않고 트롯트의 세계를 기웃거린다. 서민들의 정서와 애환을 품속에 담아 그 100여년의 역사가 바로 한국의 사회사(社會史)이면서도 ‘유치’의 팻말을 떼지 못하고 뒷전에 밀렸던 트롯트가 단걸음에 실지회복(失地回復)을 했고, 트롯트 스타들이 하루아침에 줄지어 탄생했다. 트롯트의 폭발적 열기는 코로나의 질곡 속에서도 식을 줄을 모른다.

 

트롯트가 치솟는 인기의 배경에는 오랫동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2, 3류 인생으로 살다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몇몇 어제까지의 ‘무명가수’들의 인생 스토리텔링이 한 몫을 했다. 오랜 무명의 모진 세월을 딛고 마침내 인생역전에 성공한 그들의 인생사가 우리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또 많은 이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피기 때문이다.

 

                  II.

비단 트롯트 뿐 아니라, 근래에 부쩍 늘어난 각종, 다수의 T.V 음악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세상에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크게 놀랐다. 그리고 음악적 자질이 뛰어난 지망생들도 하늘의 별처럼 많다는 사실에 함께 놀랐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무명으로 출발한다. 개중에는 드물게 일찍부터 각광을 받고, 비교적 순탄하게 대가수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중도에서 좌절, 탈락, 포기하거나, 아니면 꽃 같은 세월을 무명가수로 전전하며 힘든 인생역정을 거치게 된다.

 

그런데 무명가수들의 모습도 무척 다양하다. 어떤 이는 세찬 파도에 지치고 한 맺힌 모습인데, 다른 이는 묵묵히 한길을 정진하는 구도자의 초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 크게 알려 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작은 세계에서는 이미 높은 평가와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언더그라운드의 스타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데 뒤늦게 무명의 설음을 디디고 스타로 입신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는 것 같다. 우선 그들은 대체로 긍정적, 낙관적인 사고를 지녔고,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계속해 내공을 쌓으며 자신을 가꾸어 온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늘 준비하며 때를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덕성과 능력을 지녔다고 모두 큰 가수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실제로 많은 이는 스타가 될 수 있는 온갖 좋은 조건을 갖췄으면서, 갖가지 사회적, 개인적 이유로 인생역전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아니 어쩌면 그런 경우가 대부분일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사에는 늘 짙은 그림자와 애잔한 멜로디가 함께 한다.

 

나는 새로 탄생한 토롯트 스타들 중에 장민호에 주목했다. 그는 아이돌 가수로 출발하여, 발라드, 토롯트를 전전하며 20여년 무명생활을 딛고 눈가에 잔주름이 생긴 40대 중반에 이르러 빛을 보게 된 반전인생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그는 노래도 잘하지만, 오랜 동안 겪어야 했던 무명의 설음과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세월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바른 모습을 보여 준다. 단정한 용모, 따듯하고 배려 깊은 행동거지, 진솔한 심성이 화면에 그대로 묻어났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미스터 토롯트 '진'에 오른 임영웅도 상대적으로 무명의 세월은 짧아도, 노래실력이나 반듯한 언행, 서정(敍情)의 깊이가 그가 그동안 얼마나 성실하게 내공을 쌓아왔나를 알려준다. 결코 쉽게 그 자리에 오른 청년이 아니다.

 

                III.

최근 트롯트 세계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실제로 우리 사회의 많은 영역에서 비슷한 곡조로 끊임없이 펼쳐진다. 자신의 소우주(小宇宙)에서 스타로 발돋움 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 그 치열한 경쟁과정에서 많은 이가 일찍 포기하고 딴 길을 찾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 길목에서 머뭇거리며 늙도록 끝없이 세월을 낚는다. 과거 사법고시, 행정고시가 그 대표적 예다. 고시라는 신기루를 쫓다가 좌초한 수많은 인생, 그들의 깊은 한(恨)과 뼈를 깎는 아픔, 그들이 마주했던 ‘통곡의 벽’은 아마도 당사자 말고는 누구도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또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도, 그 과정에서 터무니없게 사라져간 인적 자원의 손실이 얼마나 클까.

 

나는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온갖 ‘경연’이 보다 공정하고 투명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숨어있는 보석’들이 제대로 빠짐없이 발굴되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단계마다 적절한 ‘패자부활전’이 있어서 아깝게 탈락하는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줄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꿈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멋진 일거리, 그냥 일자리가 아니라 그들의 꿈을 품어 줄 그런 ‘꿈자리’가 더 늘어나고, 자칫 그 꿈을 찾는 길목에서 길을 잃거나 헤매는 친구들에게 제때 적절한 길로 인도해 줄 사회적 장치가 더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요원한 얘기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경연에서 당장 밀린 후보자도 다음 기회를 찾거나, 아니면 다른 꿈자리를 넘볼 수 있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 간의 아스라한 격차도 줄어들고 패자가 승자를 보다 좀 더 격의 없이 축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러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오늘의 살벌한 경연무대가 보다 축제에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

                   

               IV.

그리고 우리 사회가 오랜 무명의 세월을 떨치고 찬연한 새 운명을 개척한 극소수의 송가인, 임영웅을 환호하는데 그치지 말고, 아직 어둠 속에 묻혀있는 대다수 <무명가수>의 오늘의 삶과 그들의 내일에 대해 보다 따듯한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는 최근 T.V에 펼쳐지는 많은 음악경연무대를 보면서, 그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연출되는 온갖 극적인 장면, 전율의 순간, 그리고 특히 승패가 엇갈리는 그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이긴 자의 인간승리와 환희에 공감하기에 앞서, 패배한 자의 좌절과 아픔이 밀물처럼 가슴으로 밀려왔기 때문이다. 교수시절에도 그랬다. 내가 행정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매년 행정고시가 끝나면, 많은 제자들의 희비가 갈린다. 그때 마다 나는 합격한 제자에게 짧게 축하하고, 불학격한 제자들을 길게, 그리고 깊게 위로했다. 마음은 늘 <무명가수>의 편에 있었다.

 

           V.

오늘도 언젠가 찾아 올 해뜰날을 희원하면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젊은 <무명가수>들에게 진심을 담아 따듯한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김윤아의 ‘Going home'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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