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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별 헤는 밤" I. 내가 윤동주 시인을 시를 통해 처음 만난 것은 1957년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그 때까지 윤동주는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었기에, 그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나 편견 없이 느끼는 그대로 그를 접할 수 있었다. 윤동주의 1955년 정음사에서 나온 증보판 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순백의 시혼에 전율했다. 그의 시어(詩語)에서 전혀 때 묻지 않은 맑은 영혼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온 국민의 애송시가 된 를 비롯해 , , , . 을 읽으며 식민지 지식인이 얼싸안았던 처절한 고독과 내면으로 깊게 파고드는 자아 성찰과 실존의식, 그리고 를 비롯해 그의 시 전편에 흐르는 부끄러움의 미학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내게 비친 윤동주는 순절에 이르는 애국혼이나 저항시인의 모습 보다는 .. 2021. 3. 26.
안병영 교육부장관 인터뷰 (시사저널 1996/09/26) 교육부가 역대 어느 때보다 바쁜 현안 부서로 떠오르고 있다. 문민 정부가 화두로 삼은 ‘교육 개혁’을 정책 수단을 통해 현장에 접목하고 있으며,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한총련 사태의 뒷수습을 맡았는가 하면, 한의대 사태 역시 진원지가 학원인 탓에 보건복지부 대신 사태 해결의 ‘총대’를 짊어졌다. 정치학과 행정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교육부에 입성한 안병영 교육부장관은 사태를 해결하는데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를 만나 교육계 언저리에서 발생하는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 교육 개혁의 요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개혁 과제를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때, 그동안 진행된 개혁 작업에는 비판 받을 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진행 되어온 개혁의 성과와 어려움, 앞으로의 .. 2021. 3. 24.
연세춘추와의 인연(III) I. 나는 가끔 /Annals 주간 시절이, 참으로 힘겹고 어려운 시간이었는데, 왜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내 뇌리에 자주 떠오를까 의아할 때가 많다. 또 그 때의 고생스러웠던 큰 기억들은 시간과 더불어 점차 퇴색하고, 당시에 소소하고 단편적이었던 한 컷, 한 컷의 즐거웠던 작은 순간들이 덧칠되고 미화되어 밀도 있게, 또 낭만적으로 추억되는지 신기할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고통 속에서 겪는 작은 행복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인 것 같다. '연세춘추와의 인연(I)'올 올린 후, 당시 기자였던 안인자 교수가 내게 문자를 보내, “춘추와 함께 한 1년 반은 참으로 제 생의 황금기였어요”라는 술회했다. 나는 “와! 이 친구들도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놀라고 크게 기뻤다.. 2021. 3. 23.
연세춘추와의 인연(II) I. 연세대 백양로를 따라 걷다 보면, 본관 가까이 왼편에 나지막한 언덕이 나온다. ‘시인의 언덕’이라 불리는 이 언덕 위에 윤동주 시비(1968년 건립)가 있고 그 뒤편에는 2층 규모의 고색창연한 작은 석조건물이 하나 있다. 당시 가 이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일년 사계절을 늘 아름답게 품에 안았고, 돌집이라 특히 여름에는 시원했다. ‘핀슨홀(현 윤동주 기념관)’로 불리는 이 건물은 1922년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지어졌는데, 윤동주 시인이 1940년 후배 정병욱(훗날 서울대 국문과 교수)과 함께 하숙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2년여를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연세대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이 건물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며 다락층도 있어 실제로는 3층인 .. 2021. 3. 23.
연세춘추와의 인연(I) I. 1976년 3월 초, 내가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연세대로 직장을 옮긴 후 한 학기가 지난 때였다. 총장(이우주)님이 나를 보자고 연락을 주셨다. 왜 나를 부르실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의아해 하면서 찾아뵈었더니, 나보고 대학신문인 와 영자신문 Annals 주간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내가 학창시절에 연세춘추 기자를 했던 이력이 있고, 나이도 젊어 학생기자들과 교감을 잘 할듯해서 발탁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얼떨결에 "네“하고 답하고 총장실을 나왔다.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앞에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II. 나는 원래 어려서부터 언론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시절 한때는 장래 직업으로 기자를 꿈꾸기도 했었다. 그래서 대학신문의 주간을 맡는다.. 2021. 3. 11.
처칠과 애틀리가 함께 쓴 전쟁과 평화의 서사시(敍事詩) I. 영국 현대사의 큰 별이었던 두 총리, 처칠(1874-1965)와 애틀리(1883-1967)는 전시에는 파트너, 그리고 평화시에는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은 1940년부터 1955년까지 15년간 소용돌이치는 영국정치사에서, 권력을 서로 교체하며 한때는 동지로, 또 보다 더 긴 기간은 적수로 마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시 연립내각(1940-1945)에서 처칠은 총리, 애틀리는 부총리로 함께 일했고, 전후에는 애틀리가 먼저 총리를 했고, 처칠이 그 뒤를 이었다. 전쟁의 영웅 처칠과 평화의 거인 애틀리는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보수, 노동 양대당의 지도자로서 함께 협력하고 좌절하며, 때로는 치열하게 다투었으나, 두 사람은 힘을 합쳐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전후 새 나라의 초석을 쌓는데 불멸의.. 2021. 2. 26.
안병영 신임 교육부총리/"중장기 비전 갖고 개혁 깜짝쇼식 변화 없을것"(한국일보 2003.12.24 00:00) 안병영 신임 교육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23일 "단기적 현안보다 중장기적 비전을 갖고 본질적인 교육문제를 다룰 것인 만큼 깜짝 놀랄만한 정책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교육은 그동안 희망과 용기의 원천이 아닌 좌절과 실망의 씨앗 역할을 했다"고 진단하면서 "견실한 대중교육 및 공교육의 기반 위에 경쟁력 있는 엘리트 교육도 제 빛을 발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오늘 아침 통보 받고 상당히 고심을 했다는데 지난번 장관 때와는 상황이 달라진 점이 부담이었나. "학자 생활이 (내 인생의) 마지막 길이라고 마음 먹었었다. 8년 전에는 멋모르고 했고 이번에는 상황을 알만큼 안다. 교육에 관한 기본적이고 큰 그림은 변화가 없고 여러 쟁점이 시간과 함께 다시 대두된 것 같다. 참여정부는 여기에 분권.. 2021.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