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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 책 낸 안병영 前 교육부장관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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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17 17:5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첨부한 글은 2014년 12월 16일 고려대학교 교육신문 인터뷰 내용입니다

고대교육신문_412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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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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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농성 11일, "실태조사 후, 2달 내에 납득할 수 있는 안 제시하겠다.”

     이철용 기자 withnews@withnews.com     

입력시간 : 2004. 07.16. 16:03

 

  장애인교육차별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단식농성 11째를 맞는 7월 15일 오후, 예상치 못했던 안병영 교육부총리의 방문이 있었다.예상치 못한 교육부총리 방문, 긴장속 기대감장대비 속에서 진행된 ‘장애인차별철폐투쟁 교육주체(부모) 결의대회’를 마치고 농성장인 국가인권위원회에 돌아온 농성단에게 안 교육부총리가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뜻밖의 소식에 농성장은 단식농성중인 윤종술 공동대표와 도경만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50여명의 청년 대학생, 장애학생의 부모들이 안 교육부총리가 어떤 안을 제시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후 6시 15분 안 교육부총리는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농성장인 국가인권위원회 7층 인권상담센터에 들어와 윤종술 공동대표, 도경만 집행위원장과 악수를 나눈 후 50여명의 농성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안과 관련한 교육인적자원부의 입장을 밝혔다.안 교육부총리는 “시원한 얘기를 할 수 없는 안타까운 것이 있다. 답을 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이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안 교육부총리는 나름대로 사태 해결을 위한 고충이 있음을 밝히고 "그러나 참여정부는 교육복지에 관한 관심이 크다"는 것과 이 교육부총리 자신도 개인적으로 특수교육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밝히고 단식농성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안 교육부총리, “지금부터 약속한 것은 지킨다.”농성단 대표, “무리한 요구 아니다.”

    안 교육부총리는 교육인적자원부에 대한 불신과 관련해 “전에 교육부가 약속을 했던 것을 제 때 실천하지 못했던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지금부터는 적어도 약속한 것은 잘 지키도록 하겠다. 현재 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는 말로 뿌리 깊은 불신감 해소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안 교육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농성단 대표들은 특수학급 설치 요구와 일반학교 통합학급 장애아동들을 위한 치료교사 배치 등 현안 과제와 실태를 전했다. 윤 공동대표는 자신도 현재 한 달에 110만원을 들어 치료교육을 시키고 있다며 부모들의 이러한 요구는 무리한 요구가 아닌 최소한의 기본적인 요구라고 밝혔다.이와 관련해 안 교육부총리는 예산과 관련해 한계가 있다며 오늘도 기획예산처장관과 특수교육 관련 대화를 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예산과 관련해서 농성단이 요구하는 장애인 교육예산 6% 확보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최소한 3%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교육부총리는 장애인교육권연대의 8가지 요구사항은 적절한 요구라고 평가한 후 현재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 교육지원과 관련한 전담 부서에 대해 "특수교육과를 전담 조직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현재 행정자치부 실무자와 협의를 하고 있고, 전담부서가 생긴다면 전국적으로 고무적인 현상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안 교육부총리, “실태조사 후 절박성을 감안해 교육부 계획 수정하겠다.

  ”안 교육부총리는 “시도교육청에 방문하면 다른 것은 몰라도 특수교육을 어떻게 진흥시키겠는가를 묻는다. 해답을 듣고 약속을 받는다.”라며 평소에도 특수교육과 관련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밝히고,“장관을 얼마나 할지 모르지만 특수교육에 대해서 어떤 정성을 들였는지 어떤 성과가 나오는지 평가해 달라.”는 말과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로 이해를 구했다. 안 교육부총리는 장애인교육권연대의 요구사항과 관련해 전반적인 실태 조사를 통해 교육인적자원부의 계획들을 수정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안 교육부총리는 “절박성을 감안해서 취약 지역부터 시작해서 문제를 풀어가겠다. 확실한 실태조사를 다시 해서 그 결과를 갖고 같이 의논하겠다.”라고 했다.안 교육부총리는 현재 교육인적자원부가 마련하고 있는 새로운 안과 관련해 “여러분이 볼 때도 제대로 상황을 타결하려고 하는 거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실천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정부를 믿어달라”고 말했다.

 

 안 교육부총리, “정부를 믿어달라”윤종술 공동대표, “믿어달라는 말 수십년 들어왔다.

  ”안 교육부총리의 정부를 믿어달라는 말에 대해 윤종술 공동대표는 “우리는 믿어달라는 말을 몇 십년 들어왔다.”라며 불만을 토로했고 안 교육부총리는 “나아질 것이다.”라는 말로 거듭 이해를 구했다.안 교육부총리는 “앞으로의 계획을 현실적으로 절박성에 근거해서 다시 짜겠다. 지켜질 약속을 하겠다.”라는 확고한 의지를 밝히며 새로운 안을 만들기까지의 시간에 대해서도 “2달 정도면 믿음직한 방안,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안을 보여주겠다.”라고 밝혔다.이와 관련해 농성단은 안을 만드는 과정에 교육수요자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함께 논의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안 교육부총리는 “우리에게 맏겨 달라. 그 이후에 기대에 차지 못하다면 다시 항의하라. 어떤 정부도 정책 수요자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한 번에 할 수 없다.”며 다른 정책과 비교해서 우선순위에서 특수교육과 관련한 것이 앞선다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어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농성단은 안 교육부총리의 제안에 대해 “우리의 요구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막연하게 기다릴 수는 없다. 정부가 부모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라는 말을 전했고 안 교육부총리는 교육인적자원부를 믿고 내일 아침에 꼭 철수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안 교육부총리, “2달 후 새로운 안 제시하겠다.”20여분 간의 대화를 마친 안 교육부총리는 농성을 하고 있는 농성단과 악수를 나눈 후 농성장을 떠났다. 7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국장이 “오셔서 잘 해결될 것 같다.”는 말을 하자 안 교육부총리는 “우리 일로 인해 인권위원회에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고 했고 농성단에 대해서도 "부모들의 마음이 어떻겠냐"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했다.장애인교육권연대는 안 교육부총리와의 대화와 관련해 집행부의 논의 과정을 거쳐 앞으로 농성과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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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40826/66001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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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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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만곤 2014.09.10 15:3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총리님!
    축하드립니다. 세상이 부총리님을 잊지 않고 있는 것도 다행스럽습니다.
    행복한 순간입니다.

  2. 현강 2014.09.11 08:38 Address Modify/Delete Reply

    교장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러잖아도 가까운 친구 몇명이 "어떻게 세상이 아직도 자네를 기억하지"라고 묻더군요.
    이번에 세상이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모든 것이 두번 장관 재임시 놀라운 열정과 헌신으로 저를 도와주신 교육부 직원 여러분들의
    노고 덕택입니다. 청와대와 생각이 달라 힘들고 외로울 떄도 여러분은 언제나 제 뒤에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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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ike Free 4 2013.04.16 14:49 Address Modify/Delete Reply

    공유 감사합니다

  2. 태현 엄마 2014.06.25 02:06 Address Modify/Delete Reply

    왜 저한테 이런 거 써달라고 요청이 안들어 올까요? 저도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해서 잘 쓸 수 있는데. :)

서울 토박이' 안병영 前 교육부장관, 산골생활 4년을 말하다

 

농부가 된 부(副)총리가 땅에서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농부의 뒤로 아스라이 설악산 울산바위가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농부는 “농부답게 밀짚모자라도 써달라”는 요청에“작위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싫다”고 했다. 평소에는 청바지 차림으로 지낸다고도 했다. /문갑식 기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길을 잃었다. 기계도 맥 못 추니 사람은 당연하다 싶었건만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스승의 전화기 속 음성은 안타까움에 젖어있었다. "그래서야 어찌 기자 생활을…." 스승에게 제자는 항상 위태로운 어린애 같은 모양이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란 말은 이맘때의 설악산에 딱 맞는다. 상강(霜降) 추위가 덮쳐 더 선명해진 풍경과 알싸해진 공기에 둘러싸인 '현강재(玄岡齋)'는 볕 좋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40평 남짓한 공간은 천장이 높아 시원했고 창틈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비 내리는 날에는 자연의 풍금 소리가, 눈 쏟아지는 밤에는 묵화(墨畵)처럼 추억이, 맑은 날에는 별의 합창이 들릴 것이다. 둥그런 공간 사이 자리 잡은 창틀은 산수화 한 폭을 담은 액자였다. 가깝게는 달마봉, 멀리는 울산바위가 계절에 따라 변색하는 것이다.

 

거기서 안병영(安秉永·71) 전 교육부장관은 네 번째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농부(農夫)가 된 부(副)총리는 새벽 4시 일어나고 한철에는 8시간쯤 땅을 가꾼다. 400평 중 250평엔 과실수, 100평엔 농사를 짓는다. 설악과 동해와 제 힘으로 가꾼 결실을 함께 맛보는 삶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러 가던 중 인제 근처에서 가슴 철렁한 연락을 받았다. "겨우 세상의 눈을 피해 안정을 찾았는데 다시 언론에 등장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겸양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심각했다. "아내가 더 난리야. 몇 년 만에 부부 싸움을 했어…. 돌아가."

 

물러설 수 없기는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권력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인간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은둔(隱遁)의 미학을 듣는 것은 이처럼 어려웠다. 얼굴을 마주한 농부는 한참을 망설이다 마침내 시골살이만 말하겠다는 조건을 걸고 입을 열었다.

 

◇운명을 바꾼 나들이

6년 전 그는 연세대(행정학과)에서 정년을 맞았다. 그 10년 전부터 안 전 부총리는 퇴임하면 시골에 가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되도록 멀리 갈 궁리를 했다. 서귀포, 남해, 통영, 속초 등이 후보지였는데 그가 작정한 곳은 속초였다.

 

―고향이 강원도입니까.

"서울 토박이죠. 마침 가까운 친구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강추'하더군요. 제가 원래 산을 좋아했습니다. 설악산이 바로 지척이잖아요. 동해도 금방인 데다 친구까지 있어 별 고민 안 하고 결심했습니다."

―지인들이 말리지 않던가요.

"아마 2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도 저를 '그곳 사람'이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처음 정착한 곳은 여기가 아니고 속초의 아파트였지요.

"산과 바다 외에 적당한 크기의 속초가 마음에 들었어요. 서울 연희동 집은 아들이 살고 있고 33평짜리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아내와 단둘이 살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어요."

 

―시골행(行)을 택하는 데 제일 큰 걸림돌이 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는 순순히 동의했어요. '늘그막에 영감 없이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산다'든가 손자의 재롱, 쇼핑 재미, 고급 문화에 대한 미련이 다 아내로부터 비롯되는 겁니다. 저도 그랬다면 시골 가기를 처음부터 포기했을 겁니다. "

―나이 들면 건강이나 의료에 대한 걱정도 있을 텐데요.

"지병(持病)이 있거나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는다면 의료 시설이 좋은 대도시를 떠날 수 없다고 모두들 생각하는데 이런 면도 있어요. 의학적으로 검증된 장수(長壽)의 세 가지 요건이 운동, 음식, 조기 검진이지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시골은 운동과 섭생에는 최적의 조건이잖아요. 조기 검진은 마음의 문제이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보안 문제도 있습니다.

"시골 외진 곳에 살면 강력 범죄에 무방비일 것 같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좀도둑은 있어도 강력범은 거의 없습니다. 정 불안하면 보안 업체 도움을 받으면 되는데 전 여기 사는 동안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뭘 그리 훔쳐갈 게 있다고 여기까지 오겠어요."

 

―그런데 왜 속초의 아파트 생활을 2년 만에 접었습니까.

"어느 순간부터 아내 입에서 '자그마한 텃밭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처음엔 귓전으로 흘려들었죠. 어느 날 속초 교외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아름답게 줄지어 선 명품 소나무 사이로 예쁜 하얀 집이 보였습니다. 집 구경도 할 겸 해서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운명을 바꾼 발걸음이었겠습니다.

"마침 그 집 부부가 밖에 나와 있었어요. 차 한잔 하자며 손을 이끌더군요. 알고 보니 그분들도 서울에서 왔는데 속초의 아파트에 산다고 하니 깜짝 놀라면서 대뜸 이러시는 겁니다. '아니 서울 분이 이곳까지 내려와 아파트에 산다니 말이 됩니까?' 그 말을 듣고 불현듯 뭔가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뭡니까, 그게.

"'속초는 기착지(寄着地)일 뿐 종착역은 아니지' 하는 생각이었어요. 아파트에서도 멀리 울산바위가 보이고 동해를 안고 있지만 그곳은 역시 인공(人工)의 도시일 뿐 제가 그리던 자연의 품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 깨달은 겁니다. 그 부부의 주선으로 지금의 땅을 마련해 집을 지은 겁니다."

―거실은 천장이 온통 유리로 덮인 천창(天窓)이고 내부가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구조입니다.

강원도 고성까지 찾아온 제자를 위해 손수 차(茶)를 준비하고 있는 안병영 전 교육부장관. 그가 살고있는 공간은 부인이 직접 설계한 것이라 고 한다. /문갑식 기자

“아내가 그런 재주가 있어요. 설계, 인테리어, 시공에 아내가 다 관여했어요. 농사짓는 땅은 그 2년 뒤 샀지요.”

 

◇농사꾼의 삶

‘여기 와 살면서 자연이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다. 서울에서는 태풍, 폭설, 천둥, 벼락을 가까이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남의 일이었고 내게는 생활에 불편을 주는 정도였다. 이곳에선 그런 자연의 손길을 일상에서 만난다’(블로그 중에서).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몇 년 안 돼 전원생활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가 추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합니다. 1년에 몇 번 1m 이상 폭설이 내려 꼼짝 못할 때도 있지만 그게 나름대로 엄청난 정취(情趣)를 주기도 합니다. ‘외경(畏敬)스럽다’는 말, 그 뜻을 저는 여기서 깨달았어요.”

―이런 질문 실례인데 궁금해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돈은 얼마나 들었습니까.

“허허. 집터 사고 집 짓는데 그리 큰돈이 들지 않았어요. 우리가 농담으로 서울 강남 아파트 몇 평 값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시골살이 자랑 좀 해주시지요.

“뭐랄까, 나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할까, 남과 척지지 않으려고 하기 싫은 일도 할 필요가 없고 실속 없이 스케줄에 쫓길 길도 없지요. 알량한 체면이나 하찮은 명예에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뿌리치기 힘든 연고(緣故)의 늪에서도 해방될 수 있습니다. 늘그막에 세속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대도시 젊은이들은 잘 모를 겁니다.”

―독사(毒蛇)나 야생동물로부터 받는 위험도 있을 텐데요.

“저기 뒤편 창문으로 보이는 오솔길, 저기 올라가 끝까지 다녀오는 데 한 시간쯤 걸려요. 워낙 개발이 안 된 곳이라 야생동물이 많아요. 저번에는 잼버리 야영장 근처를 차를 타고 지나다가 200㎏ 남짓한 멧돼지가 돌진하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어요. 전 무섭기보다 카메라를 휴대하지 않은 걸 후회했어요.”

―카메라요?

“제가 기계치(痴)라 20년 전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는 불가역적(不可逆的) 변화에 굴복한 셈이지요. 지금은 솔선해서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한 사진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그게 뭐겠어요, 솔선해 나선 미학(美學) 여행 아니겠어요?”

―경제적으로도 실제로 도움이 됩니까.

“되지요. 우선 주거비가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고 심야 전기를 쓰니 냉·난방비도 적게 듭니다. 손수 작물을 재배해 먹으니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재래시장이나 농협 마트에 다녀오면 족하지요.”

―농사 지을 때는 무리를 하면 안 되지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제가 100평 정도를 가꾸는데 그것도 한여름에는 7~8시간이 걸려요. 잡초와 한바탕 씨름하고 나면 또 벌레들이 괴롭힙니다. 밤이면 온몸이 결리고 여기저기 긁기 바쁘지만 흠뻑 땀을 흘린 뒤의 상쾌함은 말할 수가 없지요. 교육부장관 할 때보다 체중이 7㎏이나 줄었습니다. 그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요.”

―주로 무엇을 심습니까.

“고추, 상추, 깻잎, 배추, 고구마, 토마토, 옥수수, 땅콩…. 다 먹기가 벅찰 정도지요. 나무들은 심은 지 3년쯤 지나면 작은 수확이 시작됩니다. 저기 저 배나무도 가냘파 보이지만 벌써 배(梨)가 달렸잖아요.”

 

―때론 서울이 그립지 않습니까. 평생을 사신 곳인데.

“처음 3년간은 의도적으로 서울에 기웃거리는 일을 극력 피했습니다. 공식 모임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고 내 편에서 친지들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 가야 할 일이 있으면 몰아서 해결하고 왔고요. 뭐랄까, 정(情) 떼는 작업을 한 건데 이유가 있어요. ‘서울에서 잊힌 존재’가 돼야 여기 발붙이기가 훨씬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생각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외로움이나 소외감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다만 가슴이 저며올 정도로 심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시골에서 생활하려면 부지런해야 해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농작물과 나무 가꾸려면 고독할 틈이 없지요. 지금은 가을걷이가 끝나 앞마당에 떨어진 낙엽 쓰는 일이 고작이지만 ‘노동하는 사람(Homo Laborius)’이 되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대견스럽습니다.”

 

◇인생 3모작

안 전 부총리는 인생을 3모작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회사에서 정년을 맞는 55세까지 30년가량 일하고 그 뒤 10여년은 적성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을 하며 칠십 넘어서는 자연 속에서 마음을 비우며 살자는 것이다. 그게 고령화 사회를 살 해법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관계를 그렇게 단절하는 게 모질어 보입니다.

“하하,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에요. 상담(相談)을 꾸준히 하고 있으니까요.”

―상담?

“옛 제자들이나 친지, 저와 예전에 함께 일했던 교육부 공무원들한테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메일로 상담 요청이 꽤 자주 들어옵니다. 살면서 어려운 일, 업무를 보다 곤란한 일들이 생기면 해오는 상담 요청이 하루에 1~2건씩은 꼭 들어와요. 그럴 때마다 적지 않은 기쁨을 느껴요. 내가 아직도 할 일이 있다는 느낌 같은 거지요.”

―‘인생 3모작론(論)’에 대한 반향(反響)이 있던가요?

“인생 2모작에 대해선 주변에서 이미 확산되고 있는 걸 확인하고 있습니다. 50대 중반인 제자 한 명은 대기업의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땄다더군요. 올해 육십 된 교수 한 분은 전문 심리 상담사가 되는 게 퇴직 후의 꿈이랍니다. 그것을 위해 2년째 대학원에 다니고 있고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긴 했어요.”

 

―재미있는 일?

“제가 인생 3모작에 대한 글을 쓴 지 2년 가까운 얼마 전에 연세대 정무권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더군요. ‘스웨덴의 라인펠트 총리가 선생님 얘기와 거의 같은 말을 했다’면서요.”

―어떤 얘기였습니까.

“라인펠트 총리는 자유보수온건당 당수(黨首)로 중도 우파 연립정부의 젊은 총리입니다. 그가 올 2월 7일 스웨덴 일간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웨덴인들은 첫 직장에서 30년간 열심히 일하고 다음엔 좀 더 느슨한 일자리로 바꿔 20년간, 즉 75세까지 일터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겁니다.”

―‘자연으로 회귀’하는 건 없지 않습니까.

“제가 말한 제3기는 인생의 ‘부록(附錄)’ 같은 것이니 그리 개의할 필요는 없어요. 단 그가 75세까지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엔 꽤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평생 노동자화?

“우리나라도 연금 고갈 문제가 있지만 스웨덴도 지속 가능한 복지 수준, 특히 현행 연금 수준을 유지하려면 더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뜻이지요. 유럽의 많은 나라도 한때는 조기 퇴직을 권장했지만 그게 노후 연금과 의료 보장 체계에 엄청난 부담을 줄 줄은 몰랐던 겁니다.”

―그 문제는 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확보하려면 오래 일해야 하는데 실제로 많은 유럽 국가는 2000년대 초 이후 퇴직 연령을 대체로 65세 수준으로 잡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나라에서는 퇴직 후 연금을 제대로 받으려면 고용 기간을 45년 채우도록 규정하고 있고요.”

―우리는 정반대 아닙니까. 정년이 무척 이른데요.

“생애 주기를 교육·고용·퇴직 후로 나눠 보면 우리는 형편이 어렵다는 게 드러납니다. 맨 먼저 학업 기간이 유례없이 길지요. 어마어마한 과잉 투자도 일어나고 있고요. 반면에 고용 기간은 너무 짧고 그나마 불안정합니다. 노동생산성도 높은 편이 아니고요. 그런가 하면 노후 보장은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기대 수명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상황이 이러니 퇴직 후 30년을 ‘고단한 여생(餘生)’이라고 하는 겁니다.”

―해법이 뭘까요.

“일을 한 뒤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나 ‘놀이’처럼 재미있는 일을 하려면 ‘평생 교육’을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 중에 ‘학습 복지(Learnfare)’라는 개념에 주목하는 나라도 늘고 있고요.”

 

◇교육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버려지지 않아야

안 전 부총리는 교육부장관을 두 번 지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12월부터 97년 8월까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월까지다. 그가 만든 정책은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EBS 수능 강의, 학교운영위원회, 초등 영어 실시 같은 것들이다.

 

―교육부장관 재직 시 e-러닝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입니까.

“당시로선 혁명적인 정책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수많은 반대와 의심이 있었지만 제 소신은 확고했어요. 교육만큼은 이념을 배제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 후손과 현재 학생들이 어떻게 미래를 꿈꾸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리(黨利)와 당략에 좌지우지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이념 성향이 정반대지요.

“앞서 말했듯 교육정책이 이념에 따라 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러닝 정책을 처음 장관 할 때 시작했는데 두 번째 장관 하면서 세계 최고의 반열이 됐습니다. 그때 정말 기뻤어요.”

 

―그렇지만 아이들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마음 아픕니다.

“제일 큰 원인이 뭐랄까, 아이들에게 ‘자기 시간’이 없다는 거지요. 어린 나이에 창의성을 기르고 지덕체(智德體)를 함양해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길 반복할 뿐입니다. 전 우리나라의 지나친 주입식 교육이 창의력의 싹을 자른다고 봅니다. 정치 얘긴 안 하기로 했지만… 정권의 이념이나 통치자의 소신에 따라 과도하게 엘리트 교육이나 형평성, 어느 한쪽으로 크게 치중하는 교육정책은 지양해야 하지요.”

―전에는 그리 부각되지 않았던 학교 폭력과 공교육에 대한 부적응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원인은 사실 ‘교육적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은 가정에서부터 학교에 이르기까지 청소년들이 마음 편히 의지할 곳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즉흥적으로야 강력한 대책이 좋을 것 같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역시 가정·학교·사회가 서로 책임을 미루기보다는 함께 이들을 감싸 안는 것뿐입니다.”

 

―댁에 의외로 책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연희동) 집에 다 놔두고 왔어요. 필요할 때만 가져다 보지요.”

―평생 학자로 살아오셨는데….

“내년 1월쯤 출간을 목표로 책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통합 모형이랄까, 좌우 협력과 노사 협력 모델 같은 거지요. 제가 주목하는 나라는 오스트리아입니다. 한때 오스트리아는 국민마저 독일에 통합되는 날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국가였지만 지금은 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强小國)이 됐습니다. 그 비결을 찾아보는 작업입니다.”

―그럼 정치학 책이겠네요.

“물론 정치경제적 접근이 주조를 이루지만 지성사, 문화사적 접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선생 노릇을 오래 한 사람은 전공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지요.”

―우리나라는 미국 일변도인데 유럽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한국 문제를 푸는 데 미국은 유일한 준거의 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성숙(成熟)국가의 반열에 오른 우리에게 미국의 효용도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현대사 속에는 한국의 미래 문제를 풀 수 있는 해법들이 보물처럼 여기저기 숨겨져 있지요. 그걸 캐내는 것이 제가 주력하는 지적 작업입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언론을 싫어합니까.

“조용히 있고 싶은데, 지금 시절도 소란스럽고…, 아내는 제가 두 번째 교육부장관 할 때도 반대했습니다. 학자의 길을 걷기만을 바랐던 거 같아요.”

미시령을 향해 달리는 백미러 속에 우두커니 서서 기자를 지켜보고 있는 농부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인생 3막을 열고 있는 그를 소란스럽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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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득주 2012.11.13 19:06 Address Modify/Delete Reply

    준연 외조부님 안녕 하시지요. 지난번 조선일보에 실린기사내용 잘읽었습니다.많은사람들이 깊은 관심과 호기심으로 읽었습니다.좋은 반향이 일고 있습니다. 더욱 건강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천안 이득주 올림.

  2. 현강 2012.11.13 19:44 Address Modify/Delete Reply

    준연이 할아버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오래 인사 여쭙지 못했습니다.
    올 농사 잘되셨지요. 저는 초보 농사꾼이라 아직 부족한게 많습니다.
    이제 농한기이니 내외분께서 꼭 한번 이곳으로 행차하시지요.
    곧 추위가 닥치는데,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안병영 근배

2012년 6월 <연세동문회보>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

연세동문회보_안병영 명예교수님.pdf

 

 

미시령고개를 지나 설악산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 듯 풍광이 아름다운 강원도 고성에서 낙향생활을 즐기고 있는 안병영(정외 59입) 모교 행정학과 명예교수. 한 번도 되기 어려운 교육부 수장을 그것도 다른 정부에서 두 번이나 역임한 안병영 명예교수를 찾아 최근 근황에 대해 들어봤다.

 

퇴임하신 이후

고향이 아닌

강원도에 터전을

마련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산행을 좋아해서 설악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서울을 떠나 살고 싶었고, 제가 제 생활에 주인이 되고 싶어 이곳을 찾았습니다”
이외에도 1982년 서울과 지방의 교수 교류를 통해 강원대에서 1년간 생활했으며, 원주캠퍼스 초창기를 비롯해 강의 등으로 원주를 찾았고, 장관 재임 시에 교육부 워크숍을 남설악에서 개최하는 등 강원도와의 남다른 인연들을 설명했다.

 

요즘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작은 농사짓고, 산에 가고, 글 읽고 글 쓰고 그렇게 지냅니다. 농사라야 나무 가꾸고 텃밭 일구는 일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하루에 서너 시간 일을 하게 됩니다. 농한기인 겨울에는 공부를 많이 합니다. 아직도 ‘교수에게는 정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안병영 명예교수는 가끔 일이 있을 때 서울을 찾지만, 곧바로 돌아오고, 아주 드물게 특강을 하기도 하지만 가능한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호 ‘현강(玄岡)’을 따서 만든 블로그 ‘현강재(http://hyungang.tistory.com)’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교육부 수장으로 두 번 취임하시면서 감회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저는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 두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일했습니다. 첫 번째 문민정부는 민주화와 세계화의 격류 속에 있었고, 두 번째 참여정부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습니다. 저는 어느 경우에나 교육의 수월성과 형평성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철학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시대의 흐름이나 정권의 이념적 성향보다 교육의 본질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 교육 현실을 볼 때, 추진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반대로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요?
“1995년에 ‘5.31 교육개혁안’을 정책프로그램으로 만드는 역사적 작업을 주도했던 일이 크게 보람 있었습니다. e-러닝 활성화 특히 EBS 수능 방송 및 인터넷서비스를 시작한 일, 대안학교를 활성화한 일,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도입한 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제도화한 일이 제가 열심히 했던 일들입니다. 그간 금기시했던 교원평가 문제를 이슈화하고, 그 방안을 강구했던 일도 기억에 납니다.
아쉬운 일은 한둘이 아니지요.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고심을 많이 했고, 정책도 마련했지만 제대로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습니다”

 

안병영 명예교수님께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교육 정책을 추진하셨나요?
“1992년 저는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게 제 기본 철학입니다. 자유가 넘칠 때는 평등을 생각해야 하고, 평등이 흐름을 주도할 때는 자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 교육철학은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거세었던 김영삼 정부에서 대안학교 운동 등 ‘교육복지’에 열을 올렸던 것도, 진보성향의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 최초의 ‘수월성 대책’을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교육개혁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모색되어야 하며, 극단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개혁은 어느 정권의 정치적 수명을 뛰어넘어야 하며, 그 때문에 교육개혁에 정치논리의 개입은 저지해야 한다는 게 제 입장입니다”

 

모교 재학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만약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대학교 2학년 때 ‘4·19 혁명’을, 그리고 그 이듬해에 ‘5·16’을 경험했던 세대입니다. 질풍노도의 시대였으니 나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대체로 착실한 공부 꾼이었던 것 같습니다. 연세춘추 기자를 1년여 했는데, 연세춘추에 ‘이 주일의 시사’라는 칼럼을 자주 썼습니다.
요즈음 해외봉사를 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면 대견하고 부럽습니다.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저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스승님이 계신다면 어느 분이셨나요?
“직접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물론 이거니와 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들의 행동을 통해서 많은 분을 마음에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생전에 한 번도 뵙지는 못했으나 장기려 박사님이 제게 큰 스승이었습니다”

 

인생을 삼모작에 비유하신 적이 있으신데, 시작하신 세 번째 못자리는 잘 진행되고 있나요? 
“인생 일모작은 한창나이에 열정을 다해 비교적 힘든 일을 하는 시기이고, 이모작은 보람을 찾는다든지 내면으로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단계입니다. 마지막은 자연에 더 가까이하는 삶의 단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둘째와 셋째가 함께할 수 있고,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정년까지 학자로 살았으며, 두 번 장관은 본업이 아니라 나라에 봉사한 것입니다. 여기 찾아온 것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과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을 닮아가며 살고 싶어 온 것입니다. 지금 자연을 닮아가는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현재 읽고 계신 책이나, 후배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책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책을 추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나이가 드니 전공서적보다, 역사와 철학에 관심이 커지고 주로 그 분야 책을 많이 읽습니다.
지난겨울에 책을 하나 썼습니다. 초고를 끝내고 수정작업을 하고 있는데, 가을에 출판될 것 같습니다. 근년에 ‘스웨덴 모델’, ‘네덜란드 모델’ 등을 많이 얘기하는데, 저는 ‘오스트리아 모델’에 관해 썼습니다. 그 나라의 근현대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커서 그 ‘보물 캐기’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연세 동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과 지방 생활에 대한 조언을 부탁합니다.
“인간이 원래 불완전하고 모순덩어리이지만 ‘사람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인생의 길목에서 가끔 ‘내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기성찰적 맥락에서 자문해 볼 것을 권합니다.
지방 생활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선 건강해야 하고, 부부가 뜻을 같이해야 하며,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욕심을 많이 정리해야 합니다”

 

앞마당 텃밭과 아내가 설계한 집(사진)의 곳곳을 소개하는 안병영 명예교수의 모습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인생의 세 번째 못자리를 즐기는 안병영 명예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강원도 고성에서 박원엽 기자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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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anel bags 2013.03.20 17: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us.i과이 사실을 나누는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익하고 흥미로운 발견했습니다. 더 많은 업데이트를 기대하고 있어요.

  2. replica bags 2013.03.20 17: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웹 사이트에 처음이며, 내가 너에게 매우 독특한를 보내 보물 내게 그럴 가치가 있어요.

포항공과대학(POSTEC) 입학식에서 신입생에게 축사 겸 특강을 했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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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삶의 진정성을 추구하다. 안병영 전 부총리를 만나다

안병영교수님.pdf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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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깊고, 유연하게 배워라”
고령화 사회에서 필요한 ‘인생 삼모작’의 자세
김규남 (paullife)
  
▲ "인생을 삼모작으로"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생 삼모작'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안병영 명예교수

 

"고령화 사회에서 인생의 이모작과 삼모작을 이어가려면, 학교 졸업 이후에도 교육받고 학습하는 등 꾸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전 교육부총리)는 지난 10일 오후 8시에 양화진문화원(명예원장 이어령, 원장 박흥식)에서 '인생 삼모작'을 주제로 열린 양화진 목요강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를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했고, 현재는 그 비중이 11%에 달한다. 2018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의 14%되는 '고령사회(aged society)', 2026년에는 20%로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사회(super aged society)'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추세라면 2050년에는 65세 이상인구가 전체인구의 38.2%로,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되는 '노인천국'이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정년까지 가서 은퇴하는 직장인의 비율이 12%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사회에서 '인생 1모작 이후'를 준비하는 건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 되었다.

  
▲ 인생 삼모작이란...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가 인생 1모작은 '일중심', 2모작은 '보람중심', 3모작은 '자연회귀와 자아찾기'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인생삼모작

 

필수과목 된 '인생 1모작 이후', 구상하고 준비해야

안병영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는 1모작의 삶만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70대까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왔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명예교수에 따르면, '인생의 1모작'은 '일 중심'의 시기다. 나이로 보면, 직장을 갖고 퇴직하게 되는 20대~50대 중반까지인데 이 때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며 치밀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경성(硬性)의 일'을 하는 시기다. '인생의 2모작'은 '보람 중심'의 시기다. 대체로 50대 중반~70대에 해당하는데 이때는 개인의 관심사와 관련되고,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며, 서비스와 봉사 등을 중심으로 하는 '연성(軟性)의 일'을 하는 시기다. '인생의 3모작'은 70대 이후의 삶이며, '자연회귀와 자아찾기'의 시기다. 그는 이 같은 설명 뒤에 모든 사람이 다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1모작 이후'를 준비하는 지인들의 두 가지 사례를 들려줬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50대 중반의 제자가 늦둥이를 낳아 막내가 지금 중3입니다. 그는 정년퇴직이 코앞이라 아이 뒷바라지 문제로 조급해합니다. 그래서 그는 사회복지사 자격을 얻기 위한 공부를 꾸준히 해왔고, 마침내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2~3년 뒤 퇴임이후 복지분야에서 일할 준비를 줄기차게 해온 것입니다."

 

"대전의 한 사립대 교수는 2년째 연세대 신학대학 전문심리상담코스를 밟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전문자격을 얻게 됩니다. 그는 심리상담사로 봉사하며 여생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 '귀를 쫑긋' 청중들이 양화진문화원에서 안병영 명예교수의 '인생 삼모작' 강연을 듣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양화진문화원

보편화된 '인생의 2모작', 10년 이상 공부해야

 

안 명예교수는 "이와 같은 인생의 2모작은 이미 보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육을 강조했다. "연성의 2모작 시기가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40대가 되어 10년 이상 준비해야 관심사와 적성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고, 봉사와 서비스업 등의 분야에서 보람 있게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교육과 노동의 선순환'을 강조했다. 이른바 '평생교육'이다. 대학의 사회교육원, 특수대학원, 학점은행제, 사이버대학, 다양한 교육코스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안 교수는 '회귀교육(recurrent education)'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회귀교육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재충전을 위해 학교로 돌아와 교육받고 다시 직업현장으로 복귀하는 개념이다. 선진국의 경우 35세 이상의 직장인들이 다시 대학교육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이 같은 평생교육을 통해 개인은 '지속가능한 취업능력(sustainable employability)'를 확보하게 된다. 안 명예교수는 "자신이 지속적으로 고용될 수 있는 반열에 들어서야 한다. 이것은 몹시 힘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높은 지식 수준과 고숙련 노동력을 갖추기 위해 자기 혁신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학자들이 강조하는 '넓고 깊고 유연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 인생의 2모작, 3모작은 10년 이상 준비해야 안 명예교수가 인생 삼모작을 위해서는 미리 구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 양화진문화원
인생삼모작

인생의 3모작도 준비하라

 

70대인 안 명예교수는 "내 삶은 지금 3모작의 시기에 있다. 정년퇴임 후 강원도 속초에서 자연회귀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66세에 서울을 떠나 5년째 속초에서 살고 있다. 정념퇴임 10년 전부터 아내에게 퇴임하면 서울을 떠날 것에 대해 줄기차게 얘기해왔고, 미래를 구상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이유는 "자연으로 회귀하여 자아를 찾고 여유 있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다. 그는 "주거비용도 서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고, 자연 속에서 나무 심고, 꽃밭 일구고, 조그만 밭에서 반자급자족하는 생활 등을 통해 지적인 영감을 많이 받는다. 지적이고 예술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서울보다 이런 생활이 더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이 아니어서 불편한 점으로 꼽히는 정보접근은 인터넷을 통해 많이 해소가 되고,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는 1년에 두세 차례의 서울나들이를 통해 해소한다. 나이 들면 병원 가까운 곳에 살아야 한다는 통념에 대해서도 "자연 속에 산다는 것 자체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로 자연회귀의 3모작 삶을 예찬했다.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남아있으면 도둑)란 말들이 한때의 유행어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로 다가온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복지라는 안전판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이제야 비로소 복지논의가 움트고 있는 현실에서, 안병영 명예교수의 '인생 삼모작'의 지혜는 '우리의 삶'이라는 밭을 풍성하게 가꾸는데 좋은 비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는 양화진문화원 홈페이지(www.yanghwajin.re.kr)에서 무료로 다시 볼 수 있다. 오는 17일 열리는 양화진 목요강좌에서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뇌과학, 세상을 만나다'는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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