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영 부총리는 어떤 인물?

(한국대학신문 2003/12/23)

 

안병영 신임 교육부 총리는 지난 95~97년까지 2년 동안 교육부 장관을 맡았던 인물. 그의 인선은 교육부 내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설이 대학가에도 파다하다. 안병영 새 교육부총리와 연세대 정외과 동기동창생인 이우영 서강대 대외부총장은 "성품이 올곧고 추진력이 좋은 친구"라며 "안 부총리가 교육부 장관 재임시절에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안 장관 말이라면 믿을만 하다'는 얘기까지 있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안 신임 교육부총리가 얼마전까지 입각 제의를 고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인들 사이에서는 당초 예상과는 다른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부총장에 따르면 안 신임 부총리는 어제(22일) 밤 '연세대 정외과 동창회'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예정과는 달리 불참했던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의 설득이 밤 늦게까지 계속됐던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안 신임 부총리는 연세대에서도 지난 88년 교무처장을 맡아 일을 처리, 대과없이 임무를 수행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원칙을 중시하는 업무스타일로 '원칙주의자'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때문에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로도 알려져 있다. 한편 새 교육부총리 인선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엇갈렸다. 한 대학 관계자는 "최근 들어 노 대통령 등 괜찮은 인물들이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 한계를 드러내는 '피터의 법칙'이 적용되는 안타까움을 느껴왔는데, 새 부총리와 함께 교육 정상화가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반면 한 관계자는 "아무리 좋은 인물을 세우면 뭐하겠나, 이번에는 또 얼마나 가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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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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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사교육비경감대책>을 발표하고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퍼온 것인데, 당시의 내 의지와 심경을 되돌아 볼 수 있어

나로서는 매우 값진 자료이다.  

 

다산을 찾아서 네이버 블로그.mht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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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파일은 오래 전에 나의 중도주의적 입장을 논의한 어느 분의 글을 퍼온 것이다.

 

한 중도주의자의 고뇌 - 안병영 네이버 블로그.mht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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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과 연관하여 동아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 내용이 아래에 실렸다.

안교수님 인터뷰(동아180905).pdf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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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을 펴내고 <중앙선데이>에서 인터뷰를 했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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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한국행정학회총회에서 '학술공헌상'을 수상하고, 회원들 앞에서 수상기념강연을 했다.

그런데 새로 발간된 '한국행정포럼'에 그 내용이 실려  아래에 담는다.

 

학술상수상기념강연.pdf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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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퇴임 기념강연 내용을 <신동아>(2007. 1월호)에 담았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연세대 퇴임 고별강연 신동아.htm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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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내 40대의 초상

사회적 고뇌와 희망 함께하는 열린 광장 되길

 

 

 

나와 신동아의 인연은 각별하다. 우선 나는 아마도 신동아에 글을 가장 많이 쓴 필자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데 필요해서 신동아에 내가 그동안 쓴 글의 목록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살펴보니 1976년 이래 최근까지 신동아에 40편의 글을 썼다. 그런데 그 중 23편이 한국 정치가 오랜 권위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향해 숨 가쁘게 질주하던 1980년대에 집중되어 있었고, 특히 민주화의 불꽃이 가장 높게 치솟았던 1985년 초부터 1987년 6월 항쟁 직전까지 9편의 글을 썼다. 글은 대부분 신군부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민주화의 당위와 그 나아갈 길을 설파하는 정치평론이었는데, 글 목록 속에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내가 느꼈던 분노와 절박감, 열망과 감동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1980년대는 내 40대와 그대로 겹치는 시기다. 이 때문에 나는 그 목록을 보며 1980년대의 신동아 속에서 가슴 뜨거웠던 내 40대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신동아의 편집위원으로 장기간 일했다. 편집회의에서는 그 시대에 걸 맞은 공공의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열띠게 논의했다. 가끔 주요한 편집기획에도 참여했다. 편집위원 중에 나보다 스무 살 많은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계셨는데, 가끔 달관한 경지의 말씀을 툭툭 던지시던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1991년, 신동아가 환갑이 되는 60년을 기념해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4차례의 연속기획 토론의 장을 열었는데 공전의 성황을 이뤘다. 첫 번째 주제인 ‘제3의 길은 있는가’에서 내가 사회를 보았고, 세 번째 주제 ‘복지국가의 길’에서 내가 발제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부터 21년 전에 신동아가 복지국가 담론을 펼쳤으니, 당시 신동아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내 뇌리에 가장 인상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1980년대의 신동아는 지식인 계층이 읽는 지성지와 대중이 읽는 종합지의 중간 성격을 띠었다. 어느 정도 상업성을 추구하고 있었으나, 사회와 시대에 대한 ‘의제 설정(agenda setting)’기능을 성실히 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시대적 고뇌를 같이하며 우리 사회가 무엇을 아파하는지, 우리 사회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성찰적 자세를 잃지 않았다.

 

 당시 편집위원들도 당대를 향해 비판적, 창조적 지성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진입한 후 신동아는 지성지의 성격이 약화되고, 교양 있는 일반 대중이 읽는 종합지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지성지의 핵심인 의제 설정 기능을 잃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나 프랑스의 ‘렉스프레스’도 시대와 더불어 지성지에서 종합지로 바뀌었으나, 아직도 의제 설정 기능이 엄연히 살아 있는 것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그래서 내 마음이 아프다. 시대와 매체 상황이 크게 달라진 오늘 ‘아! 옛날이여’를 외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고언(苦言)이 허락된다면, 신동아가 현재의 백화점식 편집에서 얼마간 탈피해 우리 시대의 관심 주제를 한발 앞서 제시하고, 시대의 아픔과 희망에 대해 토론하는 열린 광장의 구실을 해줄 것을 감히 청하고 싶다. 신동아가 너무 무겁지 않게, 흥미를 돋우면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방식으로 의제 설정 기능을 왕년의 반쯤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얘기다. 오늘 이 땅의 주요 언론매체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어 실제로 이런 공간이 비어 있다. 이 때문에 신동아가 이 빈틈을 슬기롭게 파고든다면 그러한 시도가 무모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랜 연륜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는 신동아가 창간 81주년인 올해를 의미 있는 변화와 발전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2012/11).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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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04/12/29 박영춘(hayam)

 

지난 24일 오전, 안병영 교육인적부장관으로부터 반가운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교육부 메일 서비스는 교육부 홈페이지 회원에 가입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교육 현안 등에 관해 장관의 진솔한 심정을 담아 보내는 것이 특징이다.

'대안학교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보낸 이 편지는 김영삼 정부 시절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1996년에 체험한 한 대안학교 이야기를 토대로 이듬해 7월 '대안학교의 법제화와 60억의 재정지원'이라는 후속 조치를 발표한 후 현재 대안학교가 양적, 질적으로 성장했다는 내용을 담은 장문의 편지이다.

 

공교육 예산이 대안학교로 지원될 때 공교육 종사자들의 반대 여론이나 냉소도 있었지만, 안 장관의 뜻에 공감한 교육부의 젊은 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대안학교 챙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젊은 관료들은 감사원의 감사를 받으면서까지 16개 시도 교육청 담당 공무원들과 몇 개 대안학교를 견학했고, 그 과정에서 감동을 받은 교육청 공무원들이 속속 대안학교 인가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후 7년 여만에 인가받은 대안학교만 24개 학교에 이르렀고, 안 장관은 참여정부 교육부 수장으로 재등극했다. 안 장관은 대안학교가 '공교육 체제 내에서의 대안적 접근'으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고 이 글에서 밝혔다.

안 장관은 '대안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운동'이라며, '교육이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에 감동이 서려야 하고, 대안교육에는 감동과 교감, 열정과 헌신이 있고, 무엇보다 사랑이 있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안 장관은 '대안교육은 제도권 교육에 주는 엄청난 교훈이 있고, 교육은 사랑의 공동체이며 실험정신과 자기쇄신의 노력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에 온갖 교육적 소외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더불어 안 장관은 일부 대안학교의 외연 확대를 걱정하고 '준공립화'하는 경향 속에서 '관료화, 관성화, 상투화, 현실 안주 현상' 등을 염려하면서 '양적 확대보다는 질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안 장관은 '양질의 교사 확보를 위한 공동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대안 교육에 관한 새로운 철학과 지식, 이론, 정책 대안 등을 창출하는 대안교육 연구센터 설립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A4 용지 4쪽 분량의 긴 편지 안에는 대안교육을 위한 안 장관의 소신과 의지가 절절하게 넘쳐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온갖 교육적 소외는 사라져야 한다'는 대목은 학교 교육의 일선에 있는 교사로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대안교육을 바라보는 안 장관의 진정성에 놀란다. 그동안 대안교육 발전을 위해 헌신해온 분들에게도 안 장관은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있다. 대안학교를 법제화한 장본인으로서 정부가 직접 나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각오로 대안학교 발전을 위해 지원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반가운 편지다. 제도권 밖에서 나름의 교육철학과 신념을 갖고 공교육의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안학교가 교육부 수장의 절절한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다. 안 장관의 표현대로 대안학교가 '건강한 교육본질 회복 운동'으로서 들꽃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다음은 안병영 장관의 편지 전문.

 

안병영 부총리 서한문-대안학교 이야기

 

이야기는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영산성지학교를 방문한 것이 그 해 6월이었던가요. 영광읍에서 학교를 찾아가는 길 양쪽으로 펼쳐지던 담배밭, 고추밭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소년원에서 금방 출소하여 여전히 보호 감호를 받고 있던 아이들,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 가출하여 길가를 배회하던 아이들, 귀고리에다 노랑머리를 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었지요.

제도권 교육에서는 도저히 포용하기 어려운 이 아이들,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때부터 저는 이들에 대한 또 한번의 교육적 배려가 절실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잠시 쉬었다 다시 길 가도록 도와주는 '간이역' 같은 것, 그런 것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저의 고뇌는 교육부가 97년초 발표한 '교육복지 종합대책'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해마다 중고등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7만, 8만명에 이르는 중도탈락생들을 위한 대안학교의 설립운영방안, 바로 그것이었지요. 당시만 해도 '대안교육'이니 '대안학교'니 하는 말들은 우리 모두에게 생소했던 때였습니다. 일부 시골지역,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서 공교육과 전혀 다른 형태의 교육을 하는 움직임들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기억에 새롭습니다만, 학교모양을 갖춘 대안학교로는 홍성의 '풀무학교,' 영광의 '영산성지학교,' 그리고 지금의 간디학교 전신인 산청의 '숲속마을 작은학교' 정도였고, 대부분이 계절형 또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공동육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변산의 '공동체마을'이나 안산의 '들꽃피는 마을'은 우리 공교육과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할 정도의 극단적인 탈학교 형태를 띠고 있었지요.

하여튼 전국을 다 뒤져도 20여 곳이 채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교육학계에서 조차도 미국에서는 70년대 붐을 이루었다가 작금은 한물 간 연구주제가 되어버린 대안교육에 관한 연구가 전무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7월로 접어들어 '대안학교의 법제화와 60억의 재정지원' 이라는 후속조치를 발표했으니, 대안교육 관계자들마저 반신반의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정신없이 앞서나간 교육부의 정책을 유사이래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영산성지학교의 곽진영 교감선생님, 숲속마을 작은학교의 양희규 교장선생님, 들꽃피는 마을의 김현수 목사님, 두레마을의 김진홍 목사님, 그리고 푸른꿈학교 설립을 준비하시던 김창수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당시 우리나라 대안교육운동을 이끌던 재야 운동가들과 종교계 지도자들이 교육부의 대안학교 설립 허용과 재정지원 방침에 일제히 환호하며 동참의사를 표명했을 때, 저는 교육부장관으로서 자그마한 기쁨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공교육내로부터 저항도 만만찮았습니다. 대안(alternative)이란 그 무엇을 대체한다는 것인데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 말에 탐탁하게 생각할 리 없었겠지요. 공립학교로 지원될 교육예산이 대안학교로 흘러들어 가는 것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교육부내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대부분의 정서는 대안학교가 무슨 학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학교 설립인가권을 가지고 있는 교육청 공무원들의 냉소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제가 97년 8월, 장관직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 강단으로 돌아가고 나서의 일이었지요. 그 해 10월, 대안학교 설립을 허용하는 법이 마침내 통과되고 이에 따라 이듬해 개교를 신청한 14개의 대안학교에 대하여, 인가 마감시한인 97년 12월이 다 가도록 인가해 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교육청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들은 얘기 몇 마디 해야겠습니다. 교육청 공무원들이 법 집행을 주저하는 상황에서, 저의 뜻에 공감한 교육부의 젊은 관료들은 제가 떠난 후에도 대안학교 챙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무원들이 대거 지방출장 가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IMF직후였다지요. 해외연수차 김포공항에 집결했던 교사들마저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던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관료들은 감사원 감사를 받으면서까지 16개 시도교육청 담당공무원들을 데리고 영산성지학교와 간디학교로 내려갔습니다. 눈이 펄펄 내리던 12월 말, 두 곳의 대안학교에서 현장연수가 이루어졌답니다. 곽진영선생님이 나서고 양희규선생님이 나서, 공교육에서 소외받은 우리네 아이들을 지원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그들의 작전이 맞아 떨어졌던 것일까요.

 

교육청 공무원들은 감동을 받았고, 12월 29일 전남교육청이 영산성지학교를, 12월 30일 경남교육청이 산청 간디학교를 인가했다는 낭보가 교육부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6개의 대안학교들이 1998년 3월에 개교하게 되었지요. 청원의 양업고등학교와 경주의 화랑고등학교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부지를 물색하던 끝에 가까스로 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안학교들이 양적으로는 인가받은 학교만 24개에 이르고, 질적으로도 다양하게 성장했습니다. 저는 대학 강단으로 되돌아와서도 제가 불씨를 지핀 대안학교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양업고등학교 개교식에 다녀오고, 영산성지학교도 방문했습니다.

 

교육부 수장을 다시 맡으면서는 서울의 하자센터와 분당의 이우학교, 그리고 12월 주말을 이용하여 안산의 들꽃피는 학교에도 다녀왔습니다. 교회에 몰래 들어와 잠을 자던 가출청소년들을 데리고 출발한 들꽃피는 학교가 이제 어엿한 사단법인으로 일어선 것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또다른 음지의 아이들인 탈북자 자녀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중에 있습니다.

학내분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인문계형 대안학교인 담양의 한빛고는 정상을 되찾고 있다고 들었고, 간디학교는 경남교육청과의 지리한 싸움을 끝내고 밀월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합니다. 이우학교는 자유를 꿈꾸는 서머힐(Summerhill)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수원의 대명고는 최초의 공립 대안학교로서 도시형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유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 사이 중학교과정의 대안학교도 6개나 생겨났습니다. 화랑고에서는 재작년에 고려대에 진학한 학생이 나왔다고 합니다. 이제 강화도의 산마을고등학교만 학내갈등의 후유증이 치유된다면, 명실상부 이들 24개의 대안학교들은 "공교육 체제내에서의 대안적 접근"으로 자리잡으리라 기대합니다.

 

제도권밖은 어떻습니까. 대안학교가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던 서울 도심에만 하자센터, 난나를 포함하여 11개의 도시속 작은학교들이 공교육에서 소외받은 아이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미산에, 구의동에, 서울 인근에는 일산, 파주, 하남, 부천지역에, 저멀리 지리산 실상사에 이르기까지 초등과정의 대안학교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교육밖 움직임들을 '건강한 교육본질 회복운동'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을 인가받지 않은 학교로 멀리하기 보다는, 진정한 교육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한 공교육의 파트너로 함께 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원한다면 아주 쉽게 인가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길을 터주기 위하여 지금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학교법인을 만들지 않고도 학교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인가받지 않은 대안학교와 야학들에게 컴퓨터도 지원해 주었습니다. 내년 1월에는 대안학교 교사들에게도, 기존 학교 교원들에게만 제공해 왔던 해외 연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대안교육은 온갖 어려움을 헤쳐 가며, 열정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결정체이기 때문에 무서운 자생력과 실험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들꽃같은 생명력 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안교육은 교육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운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하고자 합니다. 교육이 무엇입니까. 진심과 정성을 다하여 사람을 바로 키우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간에 감동이 서려야 그것이 교육입니다. 그런데 대안교육에는 감동과 교감, 열정과 헌신이 있고, 무엇보다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진정한 교육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우리 대안학교의 7년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안교육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교육적 효과를 발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제도권교육에 주는 엄청난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은 사랑의 공동체라는 것, 교육은 실험정신과 자기쇄신의 노력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에 온갖 교육적 소외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대안학교들은 인가받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 사회를 향해 이러한 복음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유아기를 지나 막 여덟살 소년기로 접어든 우리 대안학교들이 제도권교육에 건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헤쳐 나가야 할 몇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선, 인가받은 대안학교들은 그 종류나 유형에 있어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안학교가 소위 말하는 문제아이들을 다루는 학교라는 인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다양한 메뉴의 대안학교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저는 다수의 대안학교들이 학급증설이나 중학교 신설 등 외연확대에 너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들이 본래 의도하는 우리 교육의 '대안적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운영주체들의 재정자립은 물론이고, 아직은 우수 교사 확보와 교육과정 콘텐츠 개발에 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안학교의 몸집이 커짐에 따라 일부 대안학교들은 '준공립학교'화 하는 경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안학교 스스로가 그렇게 싫어하던 관료화, 관성화, 상투화, 현실 안주 현상이 일부 대안학교에서 나타나고 있다고도 합니다. 어느 대안학교는 대학입시 준비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의 채근에 학교철학이 훼손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한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학생 선발과정이 좀 더 신중해져야 되겠습니다. 자기혁신에 소극적이면 더 이상 대안학교라 부르기가 어렵겠지요. 양적 확대보다는 질 관리에 좀 더 신경써야 하겠습니다.

일반 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색다른 교육이념과 방법을 지향하는 대안교육의 성공 여부는 그러한 교육을 담당하는 헌신적인 교사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들리는 바로는, 대안학교들이 자꾸 생겨나다 보니 각 학교들이 우수교사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독일의 발도르프 교육이 교원양성에 왜 그토록 많은 준비를 했는지 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간디학교와 이우학교는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자체 교사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이제 대안학교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양질의 교사 확보를 위한 공동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 교사양성을 어떻게 하고 콘텐츠를 어떻게 하겠다기 보다는 대안학교 스스로가 하는데 측면 지원해 드리는 방법이 무엇인지 저 나름대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저는 대안학교를 법제화한 장본인으로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각오로 공동의 해법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97년도 당시 대안학교 운동을 이끌어 오셨던 분들은 어찌 보면 1세대 대안학교 운동가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들 선구자들의 경험과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대안교육에 관한 새로운 철학과 지식, 이론, 필요하면 정책대안 까지도 창출하는 소위 "대안교육 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곳을 거점으로 하여 우수 교사 확보라든가, 교육과정과 관련한 현안을 파악하고 공동의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대안학교들의 대안'을 모색해 보십시다. 이러한 혁신의 자세만이 우리 대안교육의 안정적 정착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져오리라 확신합니다.

 

끝으로, 그동안 저에게 대안교육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주시고 영감을 던져주신 연세대 조한혜정 선생님, 들꽃피는 마을의 김현수 목사님을 비롯한 대안교육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謝意)를 드립니다. 그리고,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대안교육을 향해 정진하고 계시는 원광대 이강래 선생님께는 이 자리를 빌어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2004년 12월 23일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안병영 드림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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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이야기3] 대안학교와 안병영 장관의 인연

             오마이 뉴스 2004/01/12

              정일관(jasimmita) 기자

 

내가 1997년 영광의 대안학교인 영산성지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대안교육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 전 해인 1996년 6월에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우리 학교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라웠다.

 

당시 영산성지학교는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궁촌벽지에서 50명도 채 안 되는 학생들을 데리고 인성교육과 체험학습을 실험하고 있던, 아주 작고 볼품없는 학교였다. 기숙사라고 해봐야 조립식으로 지은 단층 건물에서 아이들은 발 냄새 풍기며 살고 있었고, 학교는 40년 전에 지어진 낡은 초등학교 건물에서 삐걱거리는 복도 마루와 덜컹거리는 교실 문과 함께 운영되고 있었으며, 학교 유형은 정부의 인가를 받지 못한 '각종 학교'였다.

또한 학생들 역시 소위 엘리트도 아니었고,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직업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 아이들은 무척 어렵게 자기 인생을 살고 있는 '꼴통'들이었다.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미혼은 30만원, 기혼은 50만원의 급료를 받으면서 어렵게 살고 있던 학교였다. 그 무렵 MBC의 <시사 매거진 2580>에서 학교를 취재하고 방송함으로써 사회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시골의 작은 학교를 교육계의 수장인 교육부 장관이 전격 방문한 것은 그 때 당시 사회 분위기로 봐서 파격적인 것이었다.

 

안 장관은 영산성지학교를 방문하여 여전히 삐걱거리는 마루가 깔린 낡고 좁은 강당에서 학교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으며, 이동하여 마침 전체회의를 하고 있는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교사들과 학생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영산성지학교가 가장 어려움에 처한 문제가 아이들에게 편안한 기숙사를 마련해주지 못한 점이란 걸 파악하고 돌아갔다.

청소년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확대되어 그 해결과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골몰하고 있던 1990년대 중반, 안병영 장관의 영산성지학교 방문이 사회에 보낸 반향이 무척 컸으며, 이는 소위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을 우리 사회의 화두로 던져 올린 중요한 사건이었다. 안 장관의 방문 이후로 수많은 언론과 수많은 교육 단체와 수많은 개인들이 학교를 찾아와 학교를 취재하고 소개하고 토론하고 배워갔다.

 

이후, 교육부에서는 배성근 서기관이 중심이 되어 영산성지학교와 간디학교 등, 이 두 학교를 모델로 교육법을 개정하여 '특성화고등학교'라는 학교 유형을 신설함으로써 대안학교가 국가의 지원을 받으면서 대안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7년 5월에 이영탁 교육부 차관이 또 영산성지학교를 방문하였으며, 또 그 해 안 장관의 방문을 계기로 교육부에서 내려준 특별교부금으로 학생 기숙사 공사를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안병영 장관은 장관직에서 곧 물러났지만 대안학교 설립 작업은 계속되어 1998년 3월, 드디어 영산성지고등학교, 합천 원경고등학교, 경주 화랑고등학교, 산청 간디학교, 청주 양업고등학교, 담양 한빛고등학교 등 6개의 정부 공인 대안학교가 공식 출범하게 되었고, 이 때 천주교 신자인 안 장관은 양업고등학교에서 축사를 하기도 하였다.

6개의 대안학교가 정부의 인가를 받으며 출범한 것은 우리나라 교육사에 한 획을 긋는 큰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것은 새로운 교육의 물꼬를 터서 다양성 교육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앞으로 더 많은 대안학교가 설립되어, 입시 교육에 매몰되어 생기를 잃어버린 한국 교육에 활력을 불어넣고, 교육의 본질에 더욱 접근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19개의 대안학교가 운영되고 있으며, 미인가로 운영하는 학교도 많다. 또한 계속해서 전국의 여러 곳에서 대안학교를 운영하려는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이와 같은 대안학교의 발전을 지켜보는 안 장관의 감회는 아마 남다를 것이 분명하다.

 

안 장관은 지난 2001년 4월 5일, 영산성지학원 신구임 이사장 이·취임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할 때 지난 시기를 회고하며 눈물을 보임으로써 그 깊은 감회를 드러내기도 하였는데, 사실 모든 대안학교와 학생들과 교사들은 대안학교의 초석을 다져준 안병영 장관에게 은혜 입은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이제 안 장관은 문민정부 교육부 장관에 이어 참여 정부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신년사를 통해 '이제 우리는 교육의 본질 문제에 천착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필자는 교육의 본질 문제를 언급하는 지금 안 장관의 인식은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에 눈 돌린 혜안과 닿아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안병영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지난 경험들로 인해 더욱 깊어지고 넓어진 품으로 한국 교육을 품고 나아갔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또한 지난 번 장관 재직 시, 교육계의 수장으로서, 일반 학교 교육에서 들러리로 살다가 떨어져 나온 소위 '꼴찌'들에 대해 보여준 관심과 애정을 앞으로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안병영 장관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많이 있겠지만 대안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안 장관이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관심이 앞으로 교육 전체의 현안에 접근하는데 매우 중요한 신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온기'인 것이니, 안 장관이 훈훈하고 따뜻한 교육을 지향하며, 교육 현안들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간다면 한국 교육의 미래가 좀더 건강해지는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menu=c10500&no=147454&rel_no=1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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