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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장용학 선생님의 추억

2010. 10. 7. by 현강

I.
1956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한창 오수가 밀려오는 5교시, 장용학 선생님이 담당하는 국어 시간이었다. 교탁 앞에 서신 장 선생님의 모습이 그날따라 예사롭지 않았다. 가뜩이나 우울해 보이는 얼굴인데 분노로 크게 일그러져 있었다. 흥분을 가라앉혀 보려고 애쓰시는 품이셨다. 그러나 끝내 폭발했다. 마치 활화산에서 용암이 분출하는 느낌이었다.

  “이 놈들아, 너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로 시작한 그의 토설은 10여 분 계속되었다. 말씀인 즉, 내가 다니던 K 고교에 오자면 안국동 로터리에서 풍문여고 옆 골목으로 접어들어 덕성여고를 거쳐 화동 언덕으로 올라와야 되는데, 덕성여고 앞에 앉아서 구걸하는 걸인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행태가 돼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항상 눈여겨본다. 그런데 너희 놈들은 그 거지들을 마치 물건 보듯 한다. 그냥 거침없이, 아무 연민 없이 그 쪽을 바라보잖아. 마치 담벼락을 보듯이. 아냐 너희는 아예 그곳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분명해. 아무 감정 없이 눈길이 그곳을 지나치니까.”

  “나는 풍문여고를 넘어서면 가슴이 저리고 다리가 떨려. 연민 때문에, 그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차마 그들과 눈을 마주칠 수가 있니. 사람이면...어떻게. 나에겐, 그 길을 지나는 게 무서운 고역이고 고문인데.”

  “아직 어린놈들이, 너희들은 지금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있어.”

 얼마 후 그의 목소리가 많이 잦아들었다. 마침내 자탄하듯 말했다.

  “세상이 다 그런데, 더 말해서 무엇 하겠니. 너희가 공부를 잘해. 웃기지마. 그게 무슨 소용이냐. 하나같이 인간이 돼 먹지 않았는데.”

그의 통렬한 절규를 들으며, 아이들은 숙연해 졌다. 나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서울 어디가도 거지들이 지천인데, 덕성여고 앞을 지나칠 때도 별생각 없이 그냥 지나쳤는데 그게 그처럼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때 일깨워진 내 의식의 한구석은 아직도 나를 자주 흔들어 깨운다.

  II.
벌써 반세기가 넘었으니 장용학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조금 가물가물하다. 큰 몸집은 아니셨고, 우수에 찬 얼굴에 순수하고 진지한 분이셨다. 유난히 까맣던 머리와 눈썹, 거뭇한 턱수염 자국이 기억에 난다. 세상물정은 전혀 모르실 것 같은 인상인데, 막상 수업시간에 국어 문장의 속뜻을 캐 들어가실 때 보면, 이분이 세상의 구석구석을 얼마나 면밀하게 관찰하고 계신지, 또 생각이 얼마나 깊고, 날카로운지 놀랄 때가 많았다.

주지하듯이 장용학 선생님은 손창섭 등과 더불어 전후 한국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가 중 한 분이셨다. 비인간적 시대상황에 대한 고발과 인간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그의 문학의 줄기찬 주제였다. 따져보니 그가 우리 교실에서 학생들의 비인화(非人化 )를 질타하시던 그때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비인(非人)탄생>(1956)을 쓰셨던 바로 그 해였다.

그의 소설 전편에서 흐르는 극렬한 슬픔과 처절한 삶, 인간소외와 극한의 불안 등은 그가 붙안고 고뇌하던 그 시대의 실존적 표상이었다. 파괴되어 가는 인간성 때문에 가슴 아파하던 그에게 철없는 학생들의 모습이 순간의 분노를 자아냈던 듯하다.

내 기억 속에 장용학 선생님은 얼마간 기인(奇人)풍의 인물이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는 단지 인간화를 염원하던 꾸밈없는 보통인, 그 시대에 당연히 그랬어야 마땅한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미 비인화에 물든 우리의 일그러진 의식이 그를 기인으로 보았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가 즐겨 활용한 상징과 우화, 일인칭 화자의 내적 독백 형식, 고도로 관념적 서술을 모두 좋아했는데, 그 이유인 즉, 이러한 문장형식이 지극히 <그다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찌 평범한 문장으로 자신의 깊은 사색과 고뇌, 소외와 실존을 표현할 수 있었을까. 그가 현대작가로서는 드물게 소설에서 국한문혼용체를 사용하는데, 나는 후에 그가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한문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논설을 접하면서 그것이 그의 신념임을 알았다. 문장 속에 자신의 철학을 심어 놓은 것이다.

그는 <인격화된 글>을 쓰는 분이셨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삶과 무관하게 글을 쓰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장용학 선생님의 글 속에는 그 자신의 모습과 삶의 여정, 그의 시대, 그리고 그의 아픔과 고뇌가 그대로 투영된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의 글 속에서 자신의 평소의 모습 그대로 살아서 숨 쉬고 있다.

  III.
그날 그 수업시간에 장용학 선생님의 질타는 당시 어린 우리에게 시대의 벌거벗은 모습과 아픔,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이 가져야 할 연민과 인간화를 동시에 웅변적으로 일깨워 주셨다. 나는 아직도 <인간화>라는 개념을 생각할 때면, 그의 절규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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