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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글을 쓴다는 것

2010. 9. 28. by 현강

I.
돌이켜 보면 나는 평생 글 고민을 머리에 달고 살았다. 늘 원고 재촉에 시달렸고, 그렇지 않더라도 새로 쓸 글 주제를 구상하고, 그 얼개를 만들기 위해, 또 거기에 그럴듯한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내 머리는 언제나 글 걱정으로 가득 찼다. 그러다 보니 비단 책상머리에 앉았을 때뿐만 아니라, 지하철 안에서나 등산길에서도, 심지어는 잠자리에 들면서도 글 고민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공부바탕이나 지적 통찰력이 뛰어나지도 못하면서 글 욕심은 있는 편이었기에 더 힘겨웠던 것 같다.

글 걱정과 부족한 능력 때문에 얼마간 고단한 삶을 영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생활을 스스로 그리 불행하다거나 견디기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글과 더불어 바쁘게 사는 데 따르는 긴장감과 분주함, 글의 생산과정에 수반하는 탐구의 보람과 성취의 기쁨이 내 삶의 생동감과 행복감을 더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II.
나는 연구논문을 쓸 때나 사회비평을 할 때, 그 어느 때나 글을 쓸 때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임했다.

그 첫째는 글을 정직하게 쓰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 양심의 소리에 따라 쓰자는 것이다. 그래서 내 내면의 울림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특히 시평을 쓸 때, 독자의 선호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들의 구미에 맞는 글을 쓰거나. 혹은 일정 권력집단이나 이념집단에 잘 보이기 위해, 혹은 그들의 미음을 사지 않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소리를 마다하는 일은 한껏 피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때에는 얼마간의 용기와 고뇌가 따랐고 황야에 홀로 서 있다는 느낌을 가질 때도 많았다.

두 번째는 어느 글이나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주요 학술지나 유명 언론에 글을 쓸 때나 몇몇 사람이 돌려 보는 동인지에 글을 쓸 때, 혹은 초등학생에게 보내는 격려의 글에서도 나는 언제나 각고와 탁마를 다했다. 내 능력이 모자라 글이 보잘 것 없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내 정성이 모자라 글을 망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세 번째는 정치목적이나 영리목적에 이용될 우려가 있는 글은 쓰지 말자는 것이다. 내 전공이 정치학, 행정학이다 보니 정부와 연관되는 일이 적지 않고,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이러 저러한 명분으로 이른바 정부 용역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들 용역 중 많은 것에 보이지 않는 ‘꼬리가 달려있어’ 실제로 정부 정책을 정당화하거나 정부가 요구하는 논거를 마련해 주는데 이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정부용역을 피했고, 특히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이를 금기시 했다.

네 번째 돈과 연관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글을 쓸 때 미리 원고료를 확인해 본 적도 없거니와 원고료가 적어서 불만을 피력해 본 적도 없다. 내가 오직 관심을 가졌던 것은 어떤 매체에, 어떤 글을 쓸 것인가, 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가 전부였다. 혹자는 글 값은 자신이 존재감과 자존심의 표현이기 때문에 꼭 따져 봐야 한다고 말 한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돈 때문에, 혹은 돈의 연계해서 글을 쓰고 안 쓰고 하는 것은 글 쓰는 일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III.
나는 글은 자기 인격의 표현이자 삶의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회과학자의 글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경우가 많기에 사회적 책임을 수반해야 하며,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에 진정성과 엄숙성이 내재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아래와 같은 글은 경계하고, 혐오한다.

첫째는 재주로 쓰는 글이다. 글재주와 순발력이 뛰어나서 겉보기에 화려하고 그럴싸해 보여도 실제로 내용이 빈약하거나 관점이 모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 치장에 정성을 들였으나, 글이 가볍고 그 안에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글은 마땅히 본질에 접근해서 할 말만 가려해야 한다.

둘째로 인기와 시세에 영합하는 글이다. 이 경우, 대체로 시대와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제나 주류의 입장을 옹호한다. 그러나 무릇 지식인은 시대의 주된 흐름으로부터 얼마간 비켜서서 비판적 지성의 눈으로 상황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시대와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거북한 동시대인'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는 멀리서 다가오는 먹구름을 경고하고, 체제의 빈틈을 지적하며, 진정한 사회통합의 방도를 제시해야 한다.

세째는 이념의 노예가 된 글이다. 이념적으로 과도하게 편향되면, 사고가 끝내 폐쇄회로에 갇히게 된다. 교조적 이념을 추종하는 사람은 전사((戰士)일 뿐 이미 지식인이 아니다. 이들 글에서 보이는 불같은 열정과 가없는 헌신은 국익이나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혁명/반혁명과 이념집단을 위한 것일 뿐이다. 지식인은 마땅히 자신의 가치지향과 관점이 있어야 하나, 그것은 사회통합과 국리민복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IV.
우리가 이순신의 <난중일기>, 다산의 <목민심서>, 김구의 <백범일지>에 크게 감동하는 것은 이들 저작들 속에 담겨있는 나라사랑, 민생 걱정, 진리탐구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책들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마치 저자 한분 한분의 화신인 것처럼, 아니 더 나아가서 <난중일기>가 이순신 인양 느껴지는 것은, 이들 책 속에 그들 각자의 인격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인격화된 글>을 쓰는 것이 모든 글쟁이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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