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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TV는 사랑을 싣고

2010. 9. 20. by 현강

   I.
얼마 전 나는 한때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TV는 사람을 싣고’의 종영 방송을 시청하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프로가 신선미가  떨어지고 감동의 농도도 예전 같지 않다고 느꼈지만, 막상 종영이라니 섭섭한 마음을 금하기 어려웠다.

다 알다시피 이 프로그램은 그 회의 주인공과, 지난 날 고마운 사람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당사자 간의 가슴 저리는 일화가 소개되고, 다음 방송국에서 백방으로 수소문해 가며 상대편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감격스런 상봉이 이루어진다.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명사나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사인 경우가 많아 더욱 흥미롭고 극적 효과가 있었다. 많은 경우, 거기에는 사랑, 연민, 배려, 헌신과 희생이 있고 얼마 간의 가슴 저미는 감동이 따랐다.

내가 특히 이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것은, 주인공들이 애타게 찾던 고마운 분 중 많은 이가 옛 은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요사이 사제지간의 도리가 땅에 떨어지고 스승에 대한 존경이 예전 같지 않은데, 자신을 보살펴 주셨던 선생님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 은덕을 기리려는 마음이 너무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서다. 대체로 여기 등장하는 은사들은 초, 중등학교 선생님이 대부분이고, 대학 때 스승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역시 교육적 감화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II.
사제지간의 감격적 해후를 보여 준 많은 내용 중, 아직도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수 조영남씨가 주인공이었던 경우다. 충청도 시골에서 힘든 소년기를 보냈던 그가 초등학교 상급 학년 때 자신을 깊게 이해하는 고마운 담임선생님을 만나 따듯한 격려와 고무를 받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크게 감동시킨 대목은, 그 전후의 스토리 보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소년 조영남에 관해 생활기록부에 기록한 '음악과 미술에 천재적인 자질이 있음' 이라는 문구였다.

간략하지만 조영남씨의 자질과 능력을 이보다 더 웅변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을까.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만, 스승의 혜안은 어린 제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극진한 사랑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담임선생님은 끊임없는 배려와 동기부여를 통해 조영남 소년의 꿈을 일구고 그의 내일을 경작한다.

 

     III.
1996년 5월,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나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스승 찾기’ 운동을 벌렸다. 옛 은사를 찾아 주는 일에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에서 손발을 벗고 나선 것이다. ‘TV는 사랑을 싣고’가 이 운동을 구상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스승찾기’를 시작하며, 나도 옛 피난시절 초등학교 은사이신 두 분, 강현매 선생님과 문용호 선생님의 신상정보 확인을 신청했다. 강 선생님은 1951년 대구에서 한 달 동안, 그리고 문 선생님은 이듬해 부산에서 1년 여 동안 나를 가르치셨던 분이다. 45년 전 헐벗고 고단했던 그 혹독한 피난 시절 이 두 분은 내게 꿈을 심어주고, 뱃길을 비추는 등대처럼 앞날을 밝혀 주셨던 고마운 어른이시다. 마음 속으로 무엇보다 이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기를 간절히 빌었다. 신청 이틀 만에 문 선생님이, 그리고 나흘 만에 강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문 선생님은 80대 초, 강 선생님은 90을 가까이 바라보시는 높은 연세셨다.

비서실에서 두 분께 확인 전화를 올렸더니, 놀랍게도 문 선생님께서는 첫 마디에 '아, 안병영이, 내가 기억하지, 기억하고 말고' 라고 말씀하셨다는 얘기다. 더 놀란 것은 강 선생님의 경우였다. 처음에는 '정말 미안합니다. 너무 오래되어 이름 만으로는 기억이 안 나는 군요'하셨다는데, 10분 후 비서실로 손수 전화를하셔서 '혹시 장관이 그 때 얼굴이 유난히 희고 항상 초록색 쉐타를 입었던, 그 소년인가 확인해 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뒤늦게 희미한 기억의 사진첩 속에서 내 옛 모습을 기억해 내신 것이다.

강 선생님 말씀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일상에서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진하고, 순수한 감동이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정말 참 스승이시구나. 아니 45년 전, 대구 남산 화장터 옆 노천에서 나무에 칠판을 걸고 수업했던 그 시절, 그것도 단 한 달 동안 가르쳤던 옛 제자를 기억해 내시다니. 더구나 90이 내일인 그 연세에.”

며칠 후 스승의 날에 두 분과 감격적인 해후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느꼈던 놀라운 사실은 그 간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나, 내 뇌리에 자리 잡았던 두 은사님의 영상과 눈 앞의 두 분의 모습이 세월의 흔적만 빼면 거짓말처럼 흡사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몇 달 차이로 두 분이 돌아가시기 까지, 이후 10년 가까이 이 분들과의 따듯한 교류가 이어졌다. 아직도 이 두 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IV.
조영남씨나 내가 옛 선생님들을 못 잊고 그들을 일생의 사표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분들이 사랑의 빛으로 어린 영혼을 흔들어 놓고 내일의 꿈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들 어린이들은 꿈이 있어 행복했고 꿈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나는 초등교육과정에서는 학생들의 인성을 키우고 창의성의 씨앗을 뿌리는 데 주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 설 때, 스승은 제자들의 꿈을 키울 수 있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승과 제자간의 바른 관계가 형성되며, 참 스승의 모습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반면 초등학교 때부터 학력신장의 명분아래 경쟁교육에 올인하는 경우 학생들은 미래의 꿈 대신, 오늘의 작은 성과에 집착하고, 지식 전달을 기술로 삼는 유능한 선생님은 존재하되, 학생들의 사표가 되는 참 스승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나는 마치 오늘의 학교가 <꿈을 찍는 사진관>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TV는 사랑을 실고’가 종영된 것 같아 마음이 무척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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