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TEGORY600

한 이발사와의 추억 나는 1980년대 초, 중반에 몇 년간 서울 여의도에 살았다. 당시에도 머리는 동네 목욕탕에서 깎았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같은 이가 머리를 만졌는데, 내 나이 또래의 이발사는 매우 유식하고 세상물정에 밝은 이였다. 또 대단한 이야기꾼이어서 조발을 하면서 끊임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재미있게 엮어갔다. 특히 정치얘기를 많이 했는데, 언제나 정보가 풍성했고 관점도 날카로웠다. 나는 그의 열정적인 얘기에 자주 빨려 들어가곤 했다. 시간과 더불어 그는 점차 얘기하는 쪽이 되었고 나는 대체로 열심히 경청하는 쪽이 되었다. 그는 얘기 도중 가끔 “아시겠어요” 라고 되물어서,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나는 황급히 “아, 그럼요” 라고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다. 내 쪽에서 말수가 .. 2010. 9. 5.
학자의 서가에 오래 남는 책들 교수직에 오래 있다 보면 느느니 책이다. 대학 연구실에 서가는 이미 책과 각종 자료 등속으로 빽빽이 들어차고 아예 연구실 바닥까지 책들이 수북이 쌓인다. 대체로 집안 형편은 더 심각하다. 서재에 책이 넘쳐, 마치 거친 물결 같은 기세로 안방, 거실, 심지어는 다용도실 까지 들어찬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 불평도 만만치 않다. 서재가 필수적이니 적어도 방하나는 더 있어야 하고, 집 전체가 고서방 처럼 변모하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더욱이 이사 갈 때 그 많은 책 꾸러미 때문에 온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필설로 다하기 어렵다. 단독 주택에 살았던 내 경우는 그래도 형편이 훨씬 낳았다. 그러나 내 처도 “보지도 않는 책들을 왜 그리 쌓아 두느냐”고 볼멘소리를 자주 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책은 일 년 가야 한번.. 2010. 9. 5.
자리, 권력화와 인간화 2008.11.5 대부분의 공, 사조직에는 일의 분업체계가 있고, 그에 따라 자리와 직책이 있다. 대통령이나 대학총장, 큰 회사 사장이나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의 대표 등은 중요한 자리이고 그에 따른 책임도 막중하다. 그런가 하면 정보기관이나 검찰, 경찰 등 이른바 권력기관의 장은 그 직책 때문에 위협적 느낌을 던져주고, 교육, 봉사기관이나 종교단체의 장은 보다 친근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우리 주변의 많은 자리는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에 따라 그 실제의 역할체계 이상으로‘권력화’되기도 하고, ‘인간화’되기도 한다. 같은 왕의 자리라도 연산군 같이 희대의 폭군으로 역사에 남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세종처럼 인간적 향기가 넘치는 성군(聖君)도 있다. 종교지도자나 학교장.. 2010. 9. 5.
나도 모르게 한 배를 탔던 많은 이들 I. 1995년 말 내가 교육부장관으로 발령이 났을 때, 무척 당황하고 아득한 심경이었다. 전혀 예상치도, 아니 꿈꾸지도 않았던 상황이었다. 개각 발표 1시간 10분 전 쯤, 김영삼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제가 저를 잘 압니다. 전혀 그 직책에 합당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누누이 말씀을 드렸다. 그냥 인사치레로 한 게 아니라, 진심을 토로한 말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궁지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그날 늦은 오후 시간에 얼마 전 까지 정부 고위직에 있었던 가까운 친구 한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내일 임명장을 받으려면 검거나 짙은 곤색의 정장이 필요한 데 그런 양복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내 옷은 모두가 밝은 계통의 옷뿐이라고 답하니, 그는 “그럴 줄 알았다”.. 2010. 9. 5.
학자로 산 지난 40년 * 이 글은 2009년 12월 5일 에서 발표한 내용의 요약본이다. 학자로 산 내 생애 40년을 성찰적으로 되 돌아 보았다.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그리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하나로 겹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글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워낙 다른 재주가 없어 그 나마 공부 잘하는 것이 내 딴에는 장기였다. 또 학자로 산다는 것에 항상 의미를 부여했고 자부심을 느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학자, 특히 사회과학자는 자신의 생활철학이 어쩔 수 없이 공부 속에 녹아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 기본적 생각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난 40년간 격동의 생활 속에서 학.. 2010. 9. 3.
학자로 가는 길목 (2009년 3월)에 수록된 글이다. 2010. 9. 3.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사람' 장기려 박사 . 2000년 12월 2일 서울대학교 병원교회에서 열린 성산 장기려 선생 5주기 추모예배에서 행한 추모강연 전문이다. 2010.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