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지난달 12, 서울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에서 개막된 한국의 대표적 성상(聖像) 조각가인 최종태 선생의 초대전 ‘9순을 사는 이야기를 다녀왔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 42점을 비롯해 테라코타, 청동, 나무 등을 소재로 한 작품 77점이 출품됐는데, 놀랍게도 그 중 많은 것이 최근작이었다. 작품 마다 노 작가의 연륜과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예술혼이 빛났다. 무엇보다 나는 오랜만에 선생님을 직접 뵙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척 좋았다. 그 날도 작품 감상과 대화를 통하여 경건한 구도자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작가의 삶의 궤적과 예술적 통찰력에 크게 감복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II.

최종태 작가는 그의 미술수련 과정에서 서울대 은사인 고 김종영 조각가와 고 장욱진 화백, 그리고 프랑스의 종교화가 조르주 루오 등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각고탁마(刻苦琢磨), 마침내 자기의 고유한 예술 세계를 열고, 한국의 대표적 교회예술가가 되었다.

그의 가장 큰 기여는 한국 종교예술의 토착화다. 그의 작품세계에는 동양과 한국의 전통적 미감(美感)이 자신의 심오한 종교적 지향과 깊이 융합되어 본질추구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깊고 그윽한 동양적 정신세계가 깃들어 있다. 따라서 동시대 서양미술의 흐름이나 유행 보다는 한국의 전통적 미적 전통들, 즉 삼국시대의 불교 조각과 고려 불화들로부터 더 많은 영감을 얻었다. 그가 자신의 심혼을 통째로 흔들어 놓은 작품으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을 꼽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창작의 대부분을 성모상’, ‘소녀상을 비롯하여 기도하는 여인상을 깎고 빚고, 그리는데 바쳤는데, 그의 작품속의 다소곳이 기도하는 여인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순결한 티 없이 맑은 모습으로, 원형적, 본질적 아름다움과 구원(久遠)과 맞닿는 절정의 평화를 표상한다. 20년전 법정스님의 부탁으로 길상사에 세운 관음상이 성모상을 닮은 것도, 양자가 지닌 모성(母性)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종교와 예술은 한 뿌리라는 그의 오랜 생각과 한국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의 작업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최종태 작가의 작품세계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거기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형식에 매달리지 않으며, 토착화가 세계적 보편성과 자연스레 만난다. 그런가 하면, ‘순수’, ‘영원’, ‘평화’, 그리고 참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작가 특유의 조형언어를 통하여 땅과 하늘, 세속과 천상이 서로를 얼싸 안는다.

 

 

III.

자신의 고유한 예술세계를 탐색하기 위한 최 작가의 여정은 오랜 고뇌와 거듭되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가 은사인 김종영과 장욱진의 그늘에서 빠져나오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스승들과 피카소, 마티스 등 세계미술사의 거장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작가로서 참된 자유를 찾은 것은 불과 얼마 전 미수(米壽, 88)에 이르면서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작가의 머리가 자유로워지고,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지 않아도 손이 알아서 흙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곧장 작업에 몰입될 수 있게 된 것도 그 때 부터라고 한다. 말하자면 바야흐로 득도 (得度) 내지 점수(漸修)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최 작가는 이를 머리를 비우니, 그 자리에 하느님이 들어오신다고 종교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10년 만에 뵙는 최 작가의 모습은 전보다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이제 연세가 9,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최 작가는 아직도 젊은 이처럼 열정적으로 일한다. 새벽 4시쯤 깨면 조금 뒤 작업실로 가서 일을 시작해 식사시간 외에는 작업을 계속한다. 일을 많이 하는 날에는 10시간 작업에 몰두한다니 놀랄 일이다. .

 

III.

나는 재작년 고성 산불로 내 집 <현강재> 거실에 걸려있던 최 작가의 판화 두 점(이 글 아래 포토겔러리 참조)을 잃었다. 그러나 이날 전시회에서 나는 최종태 선생님의 작품들과 그가 사시는 모습에 접하며서 실로 많은 깨달음과 영감을 얻었다.

자유를 느끼면서 작업에 푹 빠져 아직도 일할 때면 스스로 청년처럼 느껴진다는 그가 무척이나 부럽고 진정으로 닮고 싶다.

 

 

 

 

 
글쓴이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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