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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인생삼모작> 질의. 응답

2021. 10. 15. by 현강

인터넷서점(교보)에서 출판사 <21세기북스>를 통해 내 새책 <인생삼모작>에 대한 질문서를 보내왔다. 

아래 내용은 그에 대한 나의 답신이다.

 

 

인터넷서점 [이슈 도서] 체크포인트

인생 삼모작

안병영 / 21세기북스

 

 

Q. 한국의 대표적 사회과학자이시고, 김영삼, 노무현 두 정부에서

교육부 수장으로 지내셨는데, 대학 정년을 앞두고

갑자기 강원도 고성으로 귀촌을 하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울러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A. 서울태생인 저는 젊은 시절부터  노후에는 시골에 가서 ‘다른 삶’을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번잡하고 세속적인 ‘관계의 망’ 속에 얽혀있는 대도시에서 벗어나서, 내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컸고, 내 노후를 따스하게  안아 줄 수 있는 자연의 품이 그리웠습니다.

 

한여름에는 농사짓고, 겨울에는 글 쓰며, 남들이 다니는 큰 길가에서 비켜서서 한적하게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평생 책상머리나 지키던 내가, 땀 흘려 노동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일상에서 배우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늑한 자연에 파묻혀 바깥세상을 멀리 조망하며 사색하는다는 것은 내겐 너무 신선한, 그리고 얼마간 경이로운 삶의 체험입니다. 자연은 특히 지적, 예술적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께서 쓰신 55편의 에세이 속에는 삶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난 가벼운 이야기도 있고, 정치와 사회를 주제로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어떤 점을 주목하면 좋을까요?

 

A. 이 책 속에는 격동의 연속이었던 지난 80년간의 제 삶의 여정과 그간에 내가 품었던 생각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따라서 글 전체가 얼마간 자전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 안에 저 나름의 세상을 보는 눈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어떤 주제는 가볍고, 어떤 주제는 무거워 보이나, 모든 글이 제 영혼과 인격을 담보로 한 시대의 증언이자 삶의 고백입니다. 독자들께서는 제 마음 속에 들어와서 글을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책의 제목이 인생 삼모작인데, 교수님의 삶을 삼모작으로 구분해 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설명을 부탁드리고 스스로 평가를 해주신다면요?

 

A. 제가 말하는 <인생삼모작>에 따르면, 첫 번째 일터에서 한 30년 열심히 일하고, 50대 중반에 이르면 못자리를 옮겨 자신이 평소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 혹은 진심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다음 60대 중반이 되면, 못자리를 아예 시골로 옮겨 ‘자연회귀’, ‘자아찾기’로 여생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제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면, 세 번째 못자리로 자연의 품에 귀의한 것은 위의 처방 그대로이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못자리의 구분이나 성격 규정에는 조금 애매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만 65세에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늘 교수직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오면서, 그 일을 가장 좋아했고, 또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별다른 재주가 없는 저로써는 그 일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따라서 퇴직할 때까지 제 주된 못자리는 교수직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그 후반부에 수행했던 두 번의 장관직은 제 삶의 주된 궤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뿐더러, 그것이 제가 본래 하고 싶었던 일도 아니었고, 학자 생활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겼던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에도 대체로 50대 중반을 변곡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 삶의 과정에서 차이가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즉 50대 중반까지는 주로 학문 및  <이론>연구에 큰 역점을 두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언론에 정치평론을 하는 등 얼마간 <이론>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을 곁들였습니다만, 제 주된 관심은 학문연구였고, 제 삶의 주된 터도 오로지 <연구실 >이었습니다.

그런데 50대 중반에 이르러, 제가 교육부 장관직을 맡으면서 제 관심은 <실천> 쪽으로 크게 선회했고, 제 일의 내용과 일터도 바뀌었습니다. 이후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으나, 60대 초에 이르러 한번 더 교육부 수장직을 맡으면서 다시 제 삶이 <실천>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처럼 제 삶의 궤적은 50대 중반 이후 두 번의 국정참여를 통해 <이론 중심>에서 <이론과 실천의 접목>내지 <실천을 통한 이론 검증> 쪽으로 크게 전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를 제 두 번째 못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의 국정참여는 무척 힘겹고 고뇌에 찬 시간이었으나, 정치학과 행정학, 다시 말해 <국가학>을 을 전공한 저에게는 귀중한 경험이었고, 나라에 봉사할 모처럼의 기회였습니다.

 

 

Q. 내용을 살펴보면 책의 주제나 핵심은 중도주의적 삶의 철학으로 보입니다.

동의하시는지 궁금하고, 과연 그 삶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A. 저는 늘 <개혁적 중도주의자>라고 자처해 왔습니다. 이념적으로 말하자면, 자유와 평등, 어느 쪽에 크게 편중되지 않고 양자를 조화롭게 가꾸자는 입장입니다. 이는 기하학적으로 양극의 중간 점이 아니라, 양극을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지양(止揚, aufheben)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개혁을 품은 역동적 과정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관점은 이념적 지향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과정 속에서도 그대로 용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극단적 사고, 진리독점, <적과 동지>의 구분을 배격하고, 균형적 사고, 점진개혁,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고 <함께 사는 삶>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중도주의적 삶의 철학입니다.

 

Q. 젊은 세대에게는 생경하겠지만, 옛 어른들은 아호를 통해 훨씬 부드럽고

격조 있는 대인관계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의 아호는 현강이라고 들었는데, 그 뜻은 무엇이고 아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A. 그냥 글자 풀이를 하자면, 현강(玄岡)은  ‘아득히 보이는 작은 산’입니다. 그런데 첫 글자 ‘현(玄)’이 노자, 장자의 도(道)와 통하는 개념입니다. 더욱이 내 아호를 지어주신 청남 선생님 자신이 ‘자연그대로의 삶’을 지향하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의 대가이기에, 저는 그가 내 말년의 삶을 미리 꿰뚫어 보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다 할 에피소드는 생각이 나지 않네요. 다만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는 내 아호를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외국에 사는 옛 친구들이 내게 글을 쓸 때는 하나 같이 제 아호를 앞세우네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고풍스런 옛 정서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 가 싶어 가슴이 뭉클하곤 합니다.

 

Q. 교수님의 이번 에세이집은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수필의 새로운 전범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문체는 부드럽고, 글의 내용은 일상의 미세한 감정부터 전 세계적 사고의 분석까지

거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저 나름의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글을 쓸 때 늘 명심하는 점 몇 가지 점을 보편적인 권고 사항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글은 진솔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따라서 글은 마땅히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써야 합니다. 따라서 글을 쓰자면, 늘 자신의 내면의 움림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글에 거짓이 깃들어서는 안 될뿐더러, 글 속에 지나친 과장이나, 미화, 혹은 필요 이상의 현학적 표현이나 시니시즘은 피해야 합니다.

둘째, 글은 쓰고 싶을 때 써야 하고, 글 속에는 얼마간 고뇌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마지못해 쓰는 글, 억지로 쓰는 글은 피해야 하고, 뻔한 얘기, 누구나 하는 얘기, 정석적 글은 아예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셋째, 글을 쓸 때, 필자는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이나 권력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대중에게 영합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사적 동기가 앞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넷째로, 가능하면 사회통합적인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 필요한 비판은 마땅히 해야 하며, 글을 쓰는 데 따르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념적이거나, 편향된 글보다는 서로의 이해와 치유를 돕고, 연대를 강화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사회통합적인 글이 바람직합니다.

 

 

Q.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중도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밝혀주세요.

 

A. 요즈음 젊은이들은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제4차 산업혁명의 여울과 국제정세, 그리고 불안정한 국내의 정치경제적 환경과 코로나 19 팬데믹의 압박 속에서 극히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격변하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는 좌와 우의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포퓰리즘이 만연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이럴 때 수록, 젊은 세대는 비판적 지성과 용기를 바탕으로 자기 중심과 균형을 잡고 편향된 이념과 정치선동에 쉽게 휩쓸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황야에 홀로 섰다는 외로운 느낌이 있더라도, 굳건히 자신을 세우고 좌, 우 이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학습능력의 배양>,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확신>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여러분은 현재의 큰 위기를 엄청난 기회로 전환하여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빛나는 세대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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