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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586 운동권과 한국정치

2021. 7. 19. by 현강

I.

얼마 전 옛 제자 J가 찾아왔다. 그는 86학번으로 당시 내가 개설한 5개 과목을 모두 수강했던 자칭 내 열성팬인데, 그와 지난 얘기를 주고받다가 대화는 1980년대로 돌아갔다. 그는 내 정치적 관점과 관련해서 아래의 질문을 던졌다. 나는 허심탄회하게 그에게 답했다. 그 대화 내용을 가감 없이 여기에 담는다.

 

II.

J: 1980년대는 질풍노도의 시대였습니다. 특히 80년대 중후반 대학에는 급진적 변혁 사상이 풍미하고 있었지요. 저는 86년에 학교에 들어 왔는데, 마음속으로는 사회주의 이상에 끌렸지만, 현실 사회주의는 물음표였습니다. 북한 사회주의는 물론 동구 공산주의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의 동구공산권체제변동강의를 들으며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죠. 그런데, 그때 다른 많은 친구들은 변혁이란 이름하에 꽤나 급진화되었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전두환 정권에 대항해 교수 서명을 주도하며 체제 민주화에 앞장 스셨지만, 학생 운동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선생님은 양쪽에서 배척받으셨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떠셨어요?

 

: 그때 얘기를 하자면 할 말이 많네. 말이 조금 길어지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당시 흐름을 주도했던 학생집단들이 훗날 386 운동권으로 불렸는데, 이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속도로 급진화되면서 민중민주파(PD)와 민족해방파(NL)로 나뉘어 각축하다가, 급기야 NL계의 주사파가 크게 부상하기에 이르렀지. 나는 80년대 학생 운동권이 그 폭발적 기세와 충격으로 한국의 체제 민주화에 기여한 점은 십분 인정하면서도, 이제 그들이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다고 직감했지. 그래서 고심 끝에 1987년에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변론>(전예원)을 펴냈네. 그 시대에 대학가의 금기어인 <자유><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운 내 책에 대한 운동권의 분노는 대단했지. 늘 체제 비판적이었던 내가 자기들 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들의 적이었다는 배신감 같은 게 폭발한 거지.

나는 곧장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꼭대기 대형 종합강의실로 소환되어 수 백명 학생들과 1시간 여 동안 격론을 벌렸네. 처음에는 심문에 가까웠지. 그때 나는 학생들에게 자네들이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라는 파랑새를 쫓다가 권위주의체제의 질곡 아래서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제 그에게 모질게 돌팔매를 하고 있다네. ‘자유를 뺀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고, 그것은 끝내 전체주의로 전락한다는 점을 명심하게나고 엄중 경고했지. 적지 않은 학생들이 내 입장에 큰 소리로 항의하며 자리를 떴지만, 반 이상이 끝까지 남아 내 얘기를 경청하고 끝내는 박수를 쳐 주며 공감을 피력했네. 그때 내가 절감한 것은, 많은 학생들이 운동권의 변혁논리와 급진 처방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이 아직 여물지 못해 머뭇머뭇 그에 추종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바른 소리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네. 이후 나는 강의시간에 운동권 학생들을 향해 자주 아래와 같은 얘기를 했네.

생각해 보게나. 자네들은 지금 세계의 시계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네. 세계 곳곳에서 현실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굉음이 들리지 않나.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체제개혁의 신호탄을 올렸고, 대부분의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도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네. 그런데 자네들은 역사상 가장 일탈적인 북한 공산주의체제와 그 주체사상에 빠져 그 잘못된 길을 우리의 살길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될 법한 일인가.”

세상에는 인류가 만들어낸 명품 국가들이 많이 있네. 스웨덴을 보게나. 그 나라는 자유와 평등, 복지 모든 면에서 세계의 최 일류국가이네. 그런 체제 모형은 자네들 눈에 보이지 않나? 그런데 북한은 어떤가. 자유, 평등, 복지 그 모두에서 세계 최악의 상황이고, 백성들은 바깥 세상과 절연된 채로 무소불위의 독재권력 아래서 신음하고 있네. 그런데 왜, 어째서 그 열악한 체제와 그 거짓 이념이 자네들의 희망의 푯대가 되어야 하나

내가 그렇게 말하면, 몇몇 학생은 항의의 표시로 자리를 떴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고, 그들의 눈빛에서 공감의 물결을 느꼈네.

내가 이미 1970년대에 북한에 대한 개척적 연구에 앞장을 섰고, 1980년대에 들어 비교공산주의 연구에 집중하면서 1982<현대공산주의연구>(한길사)를 펴냈으므로, 감히 나와의 이론적 논쟁을 꾀하는 운동권 학생들은 없었네.

나는 많은 궁리 끝에 학생들에게 시대적 진실을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1988년에 전교생 대상으로 동구공산권체제변동이라는 강의를 개설했네. 이 강의를 통해, 소련 및 동구권은 이미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고, 현실사회주의(공산주의)는 끝내 역사적 대실패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기회 있는 데로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추악한 실체와 주체사상의 허구성을 파 해쳤네. 학생들이 종합관 대형 강의실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교무처장을 맡고 있어서 무척 바쁘고 쫓겼지만, 이 강의 때는 늘 힘이 솟았지. 물론 한 번도 휴강을 하지 않았네.

 

J: 저는 교수님이 학생들과 논쟁을 하실 때 종합강의실에 없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거기 있었으면 끝까지 자리 지킨 학생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무척 궁금한 것은 이들 운동권 세력은 이후 사회 곳곳으로 펴졌고, 민주화 이후, 정치에 대거 참여해서 특히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이들은 아직도 그들의 옛 사상에 집착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사람은 안 바뀌는 것일까요? 아니면 바뀌지만 이미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배척된 것일까요?

 

: 그거야 어디 한마디로 답할 수 있는 얘긴가. 개인차도 워낙 클 터이니까. 그러나 그들도 자신들이 한 때 세계의 시계에 역주행 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겠나. 한국적 특수성을 십분 고려한다고 해도 당시 그들은 분명 우물 안 개구리였네.

그러나 그들은 비록 길을 잘못 들었지만, 당시 그들이 추구했던 체제 민주화와 민족 통일에 대한 열정과 집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 중 얼마는 아직도 당시 그들이 천착했던 반미’, ‘친북의 정치적 성향은 물론, ‘민중민주주의’, ‘민족해방등의 중심 개념에 대해 얼마간 미련을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나름대로 그간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고 보여지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역할이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이들이 정치행태를 면밀히 관찰해서. 그들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 가차 없이 단죄하고, 바른 길을 찾아 갈 때 그들을 격의 없이 응원하는 것이네. 한 때 운동권이었다는 팻말만 보고, 손뼉치거나 배격해서는 안된다고 보내.

 

J: 교수님은 한때 노무현 정권에서 장관으로 일하셨잖아요. 그 때 청와대에 있던 386 운동권들은 어떠했나요?

 

: 당시 386 운동권들이 수적으로 적지 않았고, 그들의 관여의 폭이 넓었던 것이 사실이지. 그런데 나는 그들을 일일이 의식하고 일을 하지 않았네. 그래서 가끔 부딪혔고, 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지. 그런데 다행스러웠던 것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그들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네.

 

J: 그렇다면, 이미 586으로 불리는 운동권과의 관계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 글쎄, 이건 얼마간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간의 가장 큰 차이는 학습능력의 차이라고 보내. 내가 본 노무현 대통령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정치가였네. 노무현 정부의 초기와 후기, 특히 말기에 정책지향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지. 노무현 정부는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이념성이 강했고, 경직된 정책지향을 보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실용주의적이며 유연한 방향으로 바뀌었네. 그 때 나는 혼자 저 양반, 외국에 한번 나갔다 올 때마다, 생각이 열리는군이라고 생각했지. 그는 주위에 운동권을 많이 거느렸지만, 그들에게 포획되지 않았고, 그들을 적절히 제어했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 차이가 드러나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지향을 보면, 대단히 이념적이고, 경직적이네. 그리고 한번 집착하면 바꿀 줄 모르네.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의 대부분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네. 정책 중 많은 것이 때 지난, 정제(精製)되지 않은 이념에서 비롯되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586의 운동권의 강한 입김을 의식할 때가 많네. 실제로 많은 이가 궁금해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행태가 (우리가 몰랐던) 그의 본래의 모습인지, 아니면 그가 586 운동권의 포획되어 그들에게 끌려가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네. 만약 그것이 주로 운동권의 영향력 때문이라면, 1980년대에 시작한 급진 학생운동권의 철지난 세계관이 아직도 한국 정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게 아닌지.

 

J: 조국 전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였던가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더군요. 누구나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사상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국가 경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동경한다는 것은 역시 큰 문제라고 봅니다. 게다가 NL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서요. 친북, 친중, 시장 배척 국가주의, 반일 민족주의 같은 정서가 외교와 경제정책에 은연중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돌이켜 보면, 후반기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경향과 단절하였고 좌파로부터 좌측 깜박이 켜고 우측으로 간다고엄청 비판을 받았고 지지기반이 붕괴되었었지요. 문정부는 좌파로부터 비판받는 일은 없게 하다 보니 지지율은 유지되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기가 흔들리는 거 같아요.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 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폭넓게 이해되어야 하고, 유럽의 사민주의도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그런데 한국의 진보세력들 중 많은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소아병적으로  거부하면서 이를 적대시하는데, 이는 무지의 소치이네. 현대의 다원적 민주주의는 자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이를 부정하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네. 우리가 마땅히 자유와 더불어 추구해야 할 평등도 국가의 힘을 바탕으로 강제되어서는 안되고, 당연히 자유의 너른 품안에서 싹터야 제 빛을 발할 수 있네.

시장경제의 개념도 마찬가지네. 현대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정부가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일정부분 경제에 관여하는 혼합경제체제(mixed economic system). 현대 복지국가도 바로 그 틀 속에서 이룩된 것이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을 시장경제를 보다 공정하게 가꾸는데 쏟아야지시장경제 개념 자체를 적대시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관점이네. 세계화 시대에 시장경제와 척을 지면서 어떻게 국가를 경영한다는 얘긴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위정자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개념과 그 현대적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J: 문재인 정부 초기 헌법개정안 만들면서, 헌법 전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빼고 그냥 민주주의만 넣고서는, 그 이유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도 포괄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한 게 기억납니다. 문 정부 사람들의 편협함과 무지함에 놀랐었습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평등과 함께 부르조아 민주주의라고 비아냥 받았던 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혁명적 공산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싸운 역사는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전통 사회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하에 복지국가 건설에 나섰는데, 교수님은 우리나라에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세요. 특히 제3의 길 같이 현대화된 사민주의가 가능할까요?

 

. 내가 1980년대에 강의시간에 자주 유럽의 사민주의를 소개했던 것을 기억하나. 브란트, 크라이스키, 팔메가 주도했던 1970년대 유럽의 사민주의는 내게 하나의 경이였네. 그들의 건강하고 미래지향적 진보주의가 바로 유럽을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나 현대 복지국가로 전진하게 만든 추동력이었네.

나는 늘 한국의 진보세력이 보다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네. 그런데 한국의 집권세력이 아직도 레트로의 수렁에 빠져 <해방공간>의 좌우대결에서 패배했던 한을 되씹으며, 기회있을 때 마다 한국 현대사를 고쳐 쓰는 데 집착하는 것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그들 자신도 함께 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기반이 약화된다면, 거기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한국의 현대사, 즉 경이적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는 피땀 흘려 좌, 우가 함께 이룩한 보람찬 역사이고, 굳이 따지자면, 산업화에는 보수정권의 기여가 훨씬 더 컸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대우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나는 유럽의 진보세력인 사민주의가 추구하는 좌. 우의 이념을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중도좌파노선, 이른바 3의 길은 바로 우리 진보세력이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네.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시절(2003) ‘아젠다 2010’으로 불리는 노동개혁을 포함한 총체적 국가개혁을 추진하여, 통일후유증으로 경제부진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을 배워야 하네. 그의 개혁정치가 소속당인 사민당과 자신의 견고한 지지기반인 노동계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루어진 것이기에 더 값진 게 아니었나. 슈뢰더는 그 여파로 2005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네. 한국의 전직 총리가, 인기와 거리가 멀지만 꼭 필요한 국가개혁과제들을 외면한 채, 거침없이 <20년 집권>을 공언하며, 권력의 영속화를 겨냥했던 것과 얼마나 큰 차이인가

자네도 알다시피, 그간 줄기차게 자기 쇄신노력을 했던 유럽의 사민주의도 요즈음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나. 그런데 아직도 '레트로'의 폐쇄회로에 갇혀 보수격파에만 온 힘을 쏟는다면, 그들은 이미 미래세력이 아니네.  

나는 이른바 586 운동권이 그들이 젊은 시절 지녔던 보다 나은 세상을 겨냥한 변화에 대한 의지와 열정, 그 순수한 '원형질'을 바탕으로 더 건강하고, 미래지향적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기대하네. 그들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시대에 뒤진 <꼰대>, 패거리 싸움과 권력영속화에만 집착한다면, 한국의 진보세력의 장래는 암울하다고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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