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나는 꽤 오래전부터 성공적 국정운영의 진수(眞髓) 이어가기쌓아가기라고 주장해 왔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 궤도에 올라 정권교체가 일상화되면, 이념과 정책기조가 달라도 앞선 정권이 이룩한 긍정적 성과는 다음 정권이 승계하고, 그 위에 새로운 성과를 덧붙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역사가 쌓이고 나라가 발전한다.

물론 때때로 과거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누적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어갈 것과 버릴 것을 세심하고 공정하게 가려야 한다. 또한 그 변화의 수위가 체제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되고, 지난 정권이 이룩한 긍정적 성과까지 타기()하거나 뒤집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는 독일이 아닌가 한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정치사는 오랫동안 정파 간의 치열한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와 반인류적 나치 정권의 폭정도 그러한 역사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주요 정당 간 적정수준의 이념 및 정책 갈등을 통해 정치적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중도지향의 협치(協治)를 통하여 주요한 국가적 아젠다에 대해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된 데는, 서독의 첫 번째 정부인 아데나워(K. Adenauer) 정부가 자유시장경제와 사회적 개입주의 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일종의 중도노선인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한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후 독일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난 정권이 거둔 업적과 성과를 슬기롭게 승계, 축적하여, 역사적 단절이나 반전 없이 명실공히 오늘의 유럽 제1국이 되었다.

이러한 체제의 이어가기쌓아가기는 특히 국가가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거나 위기에 대응할 때 더욱 빛났다. ’라인강의 경제기적‘, 동서독 간의 화해와 통일,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독일은 이러한 자랑스런 역사를 통하여 첫 번째 총리였던 아데나워로부터 직전 총리인 콜(H. Kohl)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독일인의 마음속 명예의 전당에 성공적인 영웅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축출, 탄핵과 수감, 자살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역대 대통령상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지 않는가.

 

II.

이어가기쌓아가기가 특히 요구되는 정책분야는 거시적, 장기적 관점에 입각해야 할 외교.안보와 교육부문이 아닐까 한다. 그 대표적 성공사례가 독일의 통일정책이다. 주지하듯이 독일 통일정책의 기조는 1969년 브란트(W. Brandt)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표방했던 동방정책(Ostpolitik)‘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총리와 연정(聯政)의 파트너가 교체되어도 정책기조는 그대로 계승되었고, 다만 상황변화에 때라 얼마간의 조율과 보정(補正)이 있었을 뿐이다. 사민당(SPD) 출신의 브란트 총리가 단초를 연 동방정책은 1989년 기민/기사연합(CDU/CSU)의 (H. Kohl) 총리에 이르러 독일통일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성취하면서 그 위대한 결실을 거두었다.

브란트는 동방정책이라는 획기적인 정책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줄곧 서독 내 다른 정당들의 반향과 국민의 여론의 추이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과의 공감대를 확보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 아울러 서방 동맹국과의 신뢰와 지지 확보에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었고, 무엇보다 동방정책의 진척이 동서독 관계 개선을 넘어 유럽의 평화질서 구축에 크게 기여한다는 대의를 밝히고 명분을 쌓았다.

독일통일이라는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콜 총리는 통일로 향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17세 연장이자 한 때 정적이었던 브란트 전총리를 자주 만나 협의하고 자문을 구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 통일과정에서 큰 몫을 한 겐셔(H.-D. Genscher) 외교장관은 장장 18년간 장관직에 머물면서 통일의 꽃을 피우는데 크게 기여했는데, 그는 독일의 거대 정당인 기민당도 사민당도 아닌 연정 파트너인 소수당 자민당(FDP)소속이었다. 그런데 사민당의 슈미트(H. Schmidt) 총리나 기민당의 콜 총리도 겐셔리즘(Genscherism)’이란 용어까지 탄생시킨 그의 발군의 외교적 경륜과 협상능력이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불가결의 요소라는 것을 익히 알았고, 그 때문에 그를 계속 품에 안았다. 그 뿐이 아니다. 브란트 총리의 분신으로 알려진 에곤 바(E. Bahr)는 브란트를 도와 동방정책의 핵심 개념인 <접근을 통한 변화>를 창안하며 그 실행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는데, 그 또한 브란트가 물러난 뒤에도  뒤를 이은 슈미트 총리, 콜 총리 밑에서 통일을 위한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이렇듯  정권을 초월하여 독일 통일정책을 중단없이 추진함으로써, 1990년 독일통일의 대업을 이끌어내는데 큰 몫을 했다.

이렇게 볼 때, 독일통일은 정파와 이념을 넘어서 이들 모두가 함께 참여한 장엄한 합주(), ‘이어가기쌓아가기의 아름다운 결실인 것이다.

 

III.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정권이 바뀌면 새 정부는 으레 기존 정권이 추진하던 주요한 정책들을 어김없이 뒤집는다. 개별 부처 차원에서도 전직 장관이 작심하고 추진했던 핵심정책을 별다른 논의 없이 파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권이 바뀌기가 무섭게 느닷없이 등장한 새로운 경제정책이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주체들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고, 교육정책의 잦은 변화가 교사와 학부모, 학생 모두의 가슴에 응어리를 남긴다. 발전을 위해 쇄신과 정책변화는 필요하다. 다만 단기적 관점, 정제(精製)되지 않은 이념이나 혹은 인기영합적 관점에서 시도되는 설익은 정책변화들, 특히 정책의 단절, 불연속, 그리고 반전이 문제다. 이들은 국가자원의 엄청난 유실과 낭비, 민생의 혼란과 결손을 가져온다.

우리의 통일정책과 그 동전의 다른 면인 외교. 안보정책도 그간 자주 바뀌었고, 적지 않은 반전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책성과가 축적되지 못하고, 국론도 자주 분열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한 간의 화해. 협력 및 평화구축 노력은, 남북한 간 높은 수준의 긴장 속에서 강경일변도로 일관하면서 통일대박’‘만을 외쳤던 박근혜식 통일. 외교정책에 비해, 한결 진일보한 모습이었고, 분명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서둘렀고, 표피적 평화와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며 지나치게 북한의 눈치보기에 바빠 허둥대다 제 길을 잃었다. 그 결과 정작 우리 안보의 초미의 관심사인 북핵 및 미사일 문제나 북한 동포의 민생과 인권 문제, 그 어디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미로에서 헤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신 햇볕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보다 깊은 대화와 초당적 협력, 남남갈등의 최소화 및 국민의 공감대 형성, 그리고 미국 등 동맹국과의 빈틈 없는 공조와 국제적 다자협력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다 긴 호홉으로 국내외 정책환경의 최적화를 기하는데 최상의 본보기를 보여 준, 브란트의 동방정책 추진과정을 면밀히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지상명령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지난 두 보수정권에 대해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적폐청산 작업을 감행했다. 그 결과, 보수정권의 두 대통령과 사법부 수장을 비롯한 다수의 인사들이 영어의 몸이 되었고, 이들 정권이 시행했던 많은 정책과 사업, 그리고 그와 연루된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사법적, 행정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앞선 보수정부의 국정운영 과정에서 각종 국정논단과 적폐가 적지 않았고 그 청산은 필요하다는데 많은 이가 공감했다. 그러나 적폐척결 기간은 가능한 한 짧아야 했고,  수위는 적절한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그 목적과 용도는 나라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불쏘시개이어야 했다. 그런데 철퇴를 가하는 정도가 과도하고 장기화되면, 또 그것이 정권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면, 헌정체제를 구성하는 주요 제도와 기관, 그리고 정부 정책의 권위와 신뢰가 위협받게 되고, 이는 불가피하게 체제능력의 약화와 민심의 이반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어긋난 적폐청산의 깊은 수렁인 것이다. 현 문재인 정부가 앓고 있는 정치적 어려움의 큰 원인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적폐청산은 자칫 재생산되기 십상이다.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난 정권에 대한 과도한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 아닌가.

 

IV.

미래는 역사의 단절이나 과거의 부정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념적 독선이나 <All or Nothing>, <적과 동지>의 준별(峻別)은 바른 미래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에곤 바는 그의 책 <독일통일의 주역 빌리 브란트를 기억하다>에서 브란트의 세계관은 이것이냐 저것이냐(Entweder-oder)’식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이것과 마찬가지로 저것도 또한(Sowohl-auch)’에 상응했다고 술회한다. 그 때문에 브란트는 종종 정치적 야유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중도주의적 세계관은 국정운영의 이어가기’, ‘쌓아가기의 바탕이며, 독일 통일정책을 성공으로 이끈 추동력이었다.

 

거듭 말하거니와 역사는 생산적 승계와 축적의 산물이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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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보령 2021.06.12 15:3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독일의 현대사를 논거로 국정운영의 `이어가기`, `쌓아가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주신 값진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몇몇 카페와 카톡으로 지인들과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