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연세대 백양로를 따라 걷다 보면, 본관 가까이 왼편에 나지막한 언덕이 나온다. ‘시인의 언덕’이라 불리는 이 언덕 위에 윤동주 시비(1968년 건립) 있고 그 뒤편에는 2층 규모의 고색창연한 작은 석조건물이 하나 있다. 당시 <연세춘추>가 이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건물은 일년 사계절을 늘 아름답게 품에 안았고, 돌집이라 특히 여름에는 시원했다.

‘핀슨홀(현 윤동주 기념관)’로 불리는 이 건물은 1922년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로 지어졌는데, 윤동주 시인이 1940년 후배 정병욱(훗날 서울대 국문과 교수)과 함께 하숙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까지 2년여를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연세대 캠퍼스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이 건물은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며 다락층도 있어 실제로는 3층인 셈이다. 핀슨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바로 3층 다락방인데, 뻐기창이라 불리는 지붕 밖으로 튀어나온 머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아늑한 곳이다. 윤동주 시인이 신입생 시절 바로 여기 머물렀다. 젊은 동주가 도머창을 통해 멀리 청송대 너머로 별과 달, 하늘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바로 그 역사적 공간이다. 나는 윤동주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이 건물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II.

내가 주간으로 있을 때, <연세춘추>는 대체로 열 댓명, 그리고 영자신문 Annals는 대여섯명의 학생기자가 있었다. 춘추는 매주, 그리고 Annals는 한 달에 한번 발간이 되었다. 춘추사 기자들과 Annals 기자들은 분위기와 색깔이 달랐다. 춘추사 기자들은 대체로 외모에 별로 관심이 없고, 떠들썩하고 열띤 분위기에 시국문제에 예민하게 반응을 했는데 비해, Annals기자들은 보다 단정하고, 조용하며, 매사에 비교적 쿨(cool)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같은 날 춘추와 Annals의 편집회의를 해 보면, 그 차이가 더 확연했다. 그러나 두 기자 그룹 간의 사이는 무척 좋았고 서로 아꼈다.

재미있는 일은, 한 번 Annals에 정치적으로 위험수위를 넘는 기사가 나왔다. <연세춘추>였다면 적어도 배포중지가 되었을 터인데,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 하나의 가능성은 기관원들의 영어가 모자랐거나, 못 보았거나, 아니면 영자로 나오는 신문이라 그 영향력과 파장을 다소 낮게 평가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여하튼 주간인 나는 아슬아슬한 심경으로 그 한 주를 넘겼다.

춘추나 Annals 모두 일 중심의 집단이라기보다 확대된 가족 같은 공동체 분위기가 두드러졌다. 내적 결속과 선. 후배간의 유대가 무척 강했다. 그래서 한, 두해, 어떤 때는 몇 년 전 퇴사한 선배들도 고향처럼 신문사에 내왕하며 후배들을 격려하고,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주간인 나도 그 모두를 한 식구처럼 대하고 스스럼없이 교유했다. 그래서 얼마 전 퇴사한 춘추의 김수길(전 JTBC 대표이사/중앙일보주필)군이나 Annals의 강경화(전 외교부장관)양도 자주 얼굴을 비쳤다. 내가 <연세춘추>를 낭만적으로 추억하는 큰 이유가 아마 이러한 <연세춘추> 특유의 정겹고 도타운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III.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 때 춘추와 Annals 기자들은 한결같이 우수하고 성실했다. 그래서 그 후 40여년의 세월 속에 많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그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걸출한 인재로 우뚝 섰다. 짧은 기간 동안 이 처럼 제제다사(濟濟多士)가 집중적으로 모인 경우는 연세춘추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정말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우선 편집국장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내가 주간일 때, 첫 번째 편집국장이었던 박성학(신방과)군은 언론인으로 뛰어난 자질을 갖춘 좋은 재목이었는데, 일찍 도미하여 미국에서 사업을 했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영화 등에 관한 저서를 발간하고 현재는 오지에서 규모 있는 개척사업을 하는 환경운동가가 되었다. 두 번째 편집국장인 서병훈(정외과)군은 숭실대(정치학)교수로 자유주의 사상 특히 J. S. Mill 연구의 대가로 정치사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며 칼럼니스트로도 이름을 날렸는데, 지난 2월 정년퇴임을 했다. 내가 주간 직을 그만 둔 직후, 편집장을 맡았던 이용주(신방과)군은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 중 젊은 나이로 아깝게 일찍 세상을 등졌고, 그에 뒤를 이은 편집국장 강상현(신방과)군은 얼마 전 까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모두가 글 솜씨가 출중했는데, 박성학은 특히 편집능력이 뛰어낫고, 서병훈은 리더십과 정치감각이, 그리고 강상현은 통합능력과 인품이 훌륭했다. 모두 발군의 인재들로 일당백(一當百)이었다.

 

내가 주간으로 일할 때, <연세춘추>를 거쳐 간 학생기자들이 20여명이 되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진출한 분야가 학계이고, 언론계, 관계가 그 뒤를 이었다. 또 이선효(경영학과,전 라코스테대표/현 네파대표)군 등 몇몇 친구들은 다양한 비즈니스 분야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학계를 보면, 위에서 언급한 서병훈, 강상현 외에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사회학), 정연구(한림대, 미디어스쿨), 안인자(동원대, 도서관학), 김복순(명지대, 국문학), 허철(연세대 원주의대, 의학) 등이 있다. 연세의대 정신과에 재직하다 독립한 이성훈(정신의학)박사는 탁월한 수면 및 뇌 과학 연구가로 인문, 사회 융합분야에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한국 정신의학계의 이색적인 존재다. 재학 중 연세문화상(학술부문)을 수상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밖에 내가 주간을 그만 둔 후 같은 해 입사했던 서영조(편집국장, 동의대, 정치학), 이호근(전북대 로스클, 사회법) 교수도 학계의 주목받는 탁월한 연구자들이다

언론계에도 여러 명이 진출했는데, 위에서 언급한 김수길, 이용주 외에 유명 가수 알리의 아버지 조명식(전 디지털 타임즈 대표이사)이 있다.

외무고시에 김종훈(법학과, 전 알제리 대사), 정만영(정외과, 전북 국제관계대사) 두 명이 합격했는데, 두 명 모두 춘추사의 튼실한 대들보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최대용(행정학과, 전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 위원회 사업단장) 박사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부에서 정년퇴임 후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이밖에 정계에 진출한 2선 의원인 이원복(신학과, 인천 남동구출신)군과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을 역임한 김거성(신학과)군도 그 시절 연세춘추에서 활동했던 빼어난 재목들이다.

 

같이 학생기자로 활동했던 김종훈-송혜진 커플은 연세춘추를 매개로 백년가약을 맺었고, 나는 김창회, 최대용, 서영조의 주례를 섰다. 그런가 하면 강상현은 내 천주교 대자인데, 현재는 잠실 7동 성당 총회장으로 나이롱 신자인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심이 두텁다.

내가 주간을 하던 당시, 그리고 그 전후 시기의 연세춘추 기자들 중 다수와는 아직도 자주, 그리고 밀도 있게 교류하고 있다. 이제 60대 중반에 이른 그들과 나 사이는 사제지간이라기보다 스스럼없는 친구에 가깝다. 서병훈, 강상현 교수가 주로 그 중계역을 맡고 있다.

주요 분야별로 이야기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생활 영역에서 보람된 삶을 개척한 다수, 특히 여기자들의 이름을 거명하지 못했다.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들 한 명, 한 명을 나는 아직 모두 뚜렷이 기억하고 있고 가깝게 느끼고 있다. 이 기회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간곡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IV.

Annals 이야기도 여기서 빼어 놀 수 없다. 소수 정예였던 Annals 출신들도 언론계, 학계, 그리고 특히 외교계에 성공적으로 사회진출을 했다. 내가 주간할 당시 Annals의 편집장은 김창회(신방과) 군이었는데, 그는 언론계로 진출하여 연합통신 전무로 은퇴했다. 그에 뒤를 이은 장성준 (행정과) 군은 미국에서 사회학 교수(Baylor 대학)로 재직 중이고, 다음 편집장 배득종(행정과)군은 현재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한국 행정학계의 거목이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의 명문 UBC 정치학과의 박경애(정외과)박사는 한때 북미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북미의 대표적 북한 전문가다.

 

얼마 전에 사임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Annals 출신이다. 당시에도 그녀는 유능함과 지성미로 많은 이에게 회자되었다. 그런가 하면 외교부 차관을 역임하고 현재 유엔대사로 재직 중인 조현대사도 그 때 Annals 기자로 활약했다. 인도대사로 재직 중 ‘대사의 인도 리포트’라는 책을 출간해 공부하는 대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에 덧붙여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의 전 대통령 트럼프가 김정은과 북미 정상회담을 할 때, 트럼프의 통역을 맡았던 이연향(종교음악과)도 Annals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중년을 넘겨 중후한 모습이지만 당시에는 소녀같은 가냘픈 용모의 대학 초년생이었다. 함께 Annals 기자를 했던 강경화, 조현, 이연향 세 사람이 같은 시기에 국제무대에서 각광을 받았으니, 이들을 멀리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V.

촌음을 아껴 써야 하는 학창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연세춘추>/Annals와 씨름을 하면서 힘겨운 세월을 보냈던 그들이 사회에 나가 이렇게 큰 결실을 거둔 일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 각각의 인생 여정에서 이들이 펼쳤던 각고의 노력과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한때 나마 스승으로서 이들을 품에 안았던 나로서는 너무나 벅차고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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