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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가을 여정(旅情)

2017. 10. 12. by 현강

                                         I.

  나이가 들수록 농사짓는 일이 힘겨워 무덥고 길었던 여름철이 지나자 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자주 아팠던 내 처도 그런대로 건강이 얼마간 회복되어 오랜만에 가을 여행 얘기를 꺼냈다. 그래서 합의한 것이 유럽여행이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결국 여행사 <투어>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다행히 천안 사돈 내외와 속초 K형 내외가 함께 가기로 해서 힘을 얻었다. 그래서 지난 9월 19일부터 30일까지의 11박 12일의 이른바 <동구 및 발칸 7개국 여행>을 다녀왔다.

 

  일행이 23명이었는데, 중, 장년 층 여성이 다수였고, 거기에 평균 나이 <78세+>의 6명의 우리 노인그룹이 끼었다. 여행은 강행군이었다. 불과 11일 동안에 7개국을 돌았으니, 정말 <주마간산>식, <번갯불에 콩 구어 먹는>식 여행이었다. 어떤 날은 국경을 세 번이나 넘나들며, 명소 중심으로 점을 찍듯 10여개 도시를 스쳤다. 무척 힘겨웠지만, 시종 얼마간 고무된 기분이었다. 우선 절기가 좋았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차창밖에 펼쳐지는 풍요한 들녘을 바라보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모처럼의 유럽여행을 만끽했다. 몸이 시원찮은 내 처는 어려운 코스는 미리 포기하며 컨디션을 조율했다. 그러나 80세 전후의 상노인들이 중. 장년층과 동일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별로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다녔다는 것도 나름 대견한 일이 아닌가.

 

  나와 내 처에게는 이번 여행은 가을 서정을 담은 추억여행이었다. 아스라한 옛날 (1965-1970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그곳에서 결혼하고 남매를 낳았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내게 20대 후반 청년기의 온갖 추억이 깃 들인 제2의 고향이다. 이후에도 이런 저런 일로 독일, 체코, 헝가리는 여러 번 들렸기 때문에 이번 여행지역은 비교적 익숙한 곳이다. 실제로 이번 방문지 중 진짜 초행길은 보스니아 한 곳이었다. 하지만 옛 추억을 더듬고 되새김하면서 불현듯 뇌리에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을 낙수(落穗) 줍듯 차곡차곡 가슴에 담는 재미도 쏠쏠했고, 과거에 그냥 지나 쳤던 문물과 풍정들을 이번 여행길에서 재음미,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가슴 벅찬 감흥을 느낀 것도 알찬 수확이었다.

 

  여정이 불과 12일이었는데, 그 사이에도 계절의 변화는 빠르고 섬세했다. 분명 초가을에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돌아 올 즈음에는 가을이 무르익어 곳곳에서 나뭇잎이 노랗고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짧은 기간 중에 운무(雲霧)에 싸인 알프스 기슭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아드리아 해변에 이르는 먼 길을 누비면서 가슴에 스며드는 가을의 정취와 갖가지 색깔의 이국적 풍정을 고르게 즐겼다.

 

 

                                     II.

  우리가 방문한 7개국은 인접해 있으나 나라마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지녔고 생활수준에서도 차이가 컸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전형적인 선진 서방 유럽국가인 데 비해, 체코, 헝가리와 발칸반도에 있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및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는 구(舊) 동구 공산권 국가였다. 체코와 헝가리는 민주화 이후 크게 발전을 해서 이미 구태를 일신, 모든 면에서 서방국가에 근접하고 있었다. 민주화 이후 몇 년 지난 후까지 도시 건물의 오래 찌든 때가 씻기지 않아 검회색 빛이 두드러졌던 프라하와 부다페스트는 이제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발칸반도에 있는 구(舊) 유고슬라비아 국가 간에도 차이가 컸다. 가톨릭문화권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서방화의 속도가 빠른데 비해, 무슬림과 정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1990년대 발칸내전의 피해가 컸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는 아직도 낙후되어 지난 시대를 머금고 있었다. 7개국을 돌며, 정치체제와 역사. 문화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번 여행지는 내게 전혀 낯선 곳이 아니었다. 빈과 뮌헨, 잘츠부르크는 내가 살았거나 옆집처럼 자주 방문했던 품안의 도시들이고 다른 곳들도 두어 곳을 제외하면 적어도 한, 두 차례 들렸던 곳들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눈앞에 보이는 것을 흥미 있게 <구경>하기보다는, 현상 속에 깊이 담겨져 있는 본체적인 것을 심안(心眼)에 비추어 바라보는 이른바 <정관(靜觀)적 접근>을 해 보려고 애를 썼다. 별로 성공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러한 노력이 이번 여행의 의미를 더 한 것은 사실이다.

 

  이번 유럽여행에서 크게 인상적이었던 것 이제 한국인들의 시간 및 공동체 관념이 무척 높아 졌다는 것이었다. 12일 짧지 않은 여행기간 중, 23명의 일행들 모두가 모든 약속시간을 칼날같이 지켰고, 각자가 자율적인 가운데 적절한 양보와 배려로 한 번도 눈살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는 일이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III.

  우리 6인방이 딴에 노익장을 자랑했지만, 무리한 여행의 뒤끝은 만만치 않았다. 팽팽한 긴장 속에 아슬아슬하게 여행을 마쳤으나, 귀국 후 내 처는 여독으로 몸져누었다. 열흘을 크게 앓다가 어제야 겨우 일어났다. 천안의 사부인도 며칠 고생하셨다는 소식이다.

 

 오늘 아침 내가 처에게 물었다.

  “역시 무리였지, 괜한 짓을 한 것 아냐”

그러자 내 처가 해쓱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냐. 좋았어. 정말 잘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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