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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시지프스의 바위

2018. 2. 16. by 현강

지난 두달 동안 제자들과 함께 쓰는 책을 마무리하느냐 무쩍 바뻤다. 아마 3월 중 나올 새 책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 (다산출판사)의 머리글을 아래에 옮긴다. 이 책이 나오기 까지의 역정이 그 안에 담겨있다.

 

 

                         머리글

 

  필자가 <다산출판사> 강희일 사장님과 이 책을 쓰기로 처음 계약을 한 게 1978년이었다. 그러니 이 책은 세상의 빛을 보는 데 만 40년 걸렸다. 비록 제때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나는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이 글빚을 하루도 잊지 않고 살았고, ‘좋은 책을 쓰고 싶은 열망을 조금도 식히지 않았다. 그 동안 책 제목도 <복지행정>에서 <사회복지정책>으로 그리고 마침내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으로 바뀌었고, 책의 구성과 내용도 당초의 구상과는 사뭇 달라졌다.  책의 분량도 두배 이상 증가했다. 무엇보다 크게 변한 것은 저자가 네 명으로 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나름대로 이 책 집필에 그리 소홀히 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책이 제법 진척이 되어 고비를 넘겼다 싶을 때면, 중요한 학교 보직을 맡거나 정부에 들어가게 되어 한동안 손을 놓게 되곤 하였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면, 미리 썼던 내용이 학문적 추세에 뒤떨어져 이미 낡은 것이 되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새로운 결의로 번번히 다시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주, 커다란 바위를 산 꼭데기로 밀어 올려 정상 근처에 이르면 그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떠 올렸다.

 

  힘겨워도 좋은 책을 써야겠다는 욕심 속에 숱한 고통과 몇 번의 좌절을 맛본 후, 나는 결국 몇 년전 연부역강(年富力強)한 제자 세 명과 공동집필을 하기로 작정했다. 고맙게도 정무권(연세대), 신동면(경희대), 양재진(연세대) 세 교수가 흔쾌하게 동의했다. 그들은 연세대 대학원 시절 내가 이 책의 집필 때문에 고심하는 모습을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제자들이다. 이들은 이미 복지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학계의 큰 별들로 성장했고 하나같이 청출어람(靑出於藍), 스승인 나를 뛰어넘은 지 오랜 학자들이다.

 

  네 명의 필자는 그간 학제적(學際的) 연구모임인 <사회정책연구회>에서 자주 만나 학문적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더욱이 네 사람은 늘 한국 사회에 최적화된 복지국가 모형이 무엇인가에 대해 심층적인 토론을 함께 해 왔다. 따라서 그러한 지적 교감이 아마도 이 책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을 것으로 확신한다.

 

  이 책은 아래에 구체적으로 밝혔듯이 네 명이 일단 절 별로 나누어 집필했다. 아울러 지난 1년 반에 걸쳐 네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각자의 원고를 함께 읽고 토론을 통해 합의 하에 첨삭,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완결된 원고를 다시 돌려 서로 콤멘트를 주고받고, 각자가 마지막으로 다듬었다. 이 과정에서는 사제 간, 선후배 간의 사적 관계는 완전히 배제되고, 모든 관계는 좋은 책만들기 위한 일의 관계로 환원되었다. 네 명이 합의했던 집필원칙은 글은 가능한 한 쉽게, 그러나 내용은 풍부하게하자는 것이었다.

 

  이 책은 복지국가를 논의의 중심축으로 하여, 사회복지 정책과정과 복지제도를 살펴보고, 이어 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집필과정에서 필자들의 사회복지학, 행정학, 정치학, 정책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지식이 학문의 벽을 넘어 총동원되었다. 따라서 책 자체도 어느 하나의 학문분과에 귀속되는 저서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대학교 고학년, 대학원 학생들을 위한 교재로는 물론, 이 방면에 관심이 큰 정치가, 전문행정관료, 복지정책 전문가 및 지성인 들에게도 두루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꽤나 외람된 말씀이지만, 필자들은 감히 이 책이 우리가 열망했던 좋은 책의 반열에 올랐다고 자부한다. 아울러 이 책은 어떤 복지국가냐의 논란 속에 있는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가장 절실하고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필자 네 명 중 막내인 양재진 교수가 간사 역할을 하며 책의 준비 및 출판과정에서 크게 수고했다. 책의  목차 구성에서부터 네 번의 워크숖 주선, 글 재촉, 출판사와의 조정작업에 이르기까지 온갖 궂은 일을 다 맡았다. 그의 당찬 추진력과 열성이 없었다면, 시지프스의 고통을 더 이어 갔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책의 출간을 가장 기뻐할 사람은 아마도 내가 아닐까 생각한다. 40년 이끼낀 묵은 약속을 지키게 된 것도 그렇거니와, 여든 문턱에서 50대의 옛 애제자들과 함께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더 없는 축복이 아닌가. 학자로서 어디 그 이상의 행복이 있을까.

 

  다산의 강희일 사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지난 40년간 그는 줄곧 내가 언젠가 책을 끝낼 것을 믿어 주셨다. 그러면서 한 번도 책 재촉을 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의 무한신뢰가 좋은 책을 써야겠다는 내 결의를 다지게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치밀하고 알뜰하게 편집 및 출판과정을 보살 펴 주신 양선영 편집부장께도 큰 고마움을 전한다.

 

           

                                       설악산 기슭 현강재에서

 

                                               집필자를 대표해서 안 병영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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