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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지애학교' 학부모의 눈물

2015. 1. 30. by 현강

                             I.

  서울시 교육청은 이미 1995년 2월부터 특수교육 환경개선을 위해 3만 2천여평 경기고등학교 안 공터 2천 4백여평에 정신지체 장애아를 위한 ‘지애학교(후에 정애학교) 건립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남구청이 삼성동 일대의 주민들의 반대와 환경훼손을 이유로 서울시 교육청과의 사업시행계획협의 요청에 계속 불응하는 바람에, 공사 시작의 삽도 들지 못한 채 갈등은 첨예화, 장기화되고 장애아 부모들의 가슴은 타들어갔다.

  1997년 6월 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 나는 고심 끝에  K 강남구청장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K 구청장은 나의 경기고등학교 후배였다.

        

         

             K 구청장님

 

  그간 안녕하십니까. 무척 바쁘시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번 전화통화 이후 소식을 기다리다가 몇 자 글월을 보냅니다.

경기고등학교 부지 내 서울지애학교 설립계획과 연관하여 구청장님께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으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서울의 경우 특수학교의 절대부족으로 많은 장애아들이 하루 2-3시간을 통학에 시달리고 있고, 특히 정신지체 장애아의 경우 형편이 더욱 어려워 한마디로 그 정황이 목불인견(目不忍見)입니다. 이런 딱한 사정 때문에 다시 한 번 긍정적인 결정을 하여 주실 것을 간곡히 청합니다.

 

  이미 지난 얘기입니다만 경기고등학교 동창회에서도 몇 차례 특수학교설립에 대해 재고 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도 제가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당장은 학교부지 내에 특수학교가 설립되면 얼마간 번거롭고 약간의 녹지훼손이 된다는 불리점이 있으나, 강남에 자리 잡은 명문학교 부지 내에 소외된 아동들의 보금자리가 마련된다는 일은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고, 더욱이 그것이 지닌 상징성 때문에 엄청난 교육적 합의(含意)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역시 경기출신인 지역구 S 의원께도 모교 및 동창회를 함께 찾아가 지애학교 설립을 설득하자고 청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경기출신이 우리 사회의 각 부문에서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나, 우리 사회가 경기고등학교에게 베푼 엄청난 사랑과 기대, 그리고 그 학교 출신들이 누리는 보이지 않는 프리미엄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경기출신은 평생 동안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심경으로 이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간 동창회에서 지애학교 설립을 반대했던 행동은 제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동창회에서 지애학교 설립을 양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고맙고 기뻤습니다.

 

  그간 있었던 삼성동 지역주민의 특수학교설립 반대 및 항의방문 등 민원제기는 제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반대는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꾸준한 토론과 설득, 또 유인 제공 등을 계속하는 경우, 주민들의 반대는 상당히 완화되곤 해 왔습니다. 서울정민학교와 밀알학교가 오랜 갈등과 진통 끝에 좋은 결론을 얻은 것도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서울지애학교의 경우 사업시행협의를 강남구청에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초에 저는 비교적 낙관을 했습니다. 동창회의 양해도 얻었고, 주민들의 조직적인 민원제기도 많이 수그러졌기 때문에, 구청장님의 긍정적인 결심만 있으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협의요청 후 반년이 가깝도록 아직 이 문제가 풀렸다는 소식이 없고, 들리는 말로는 타 지역에 학교 부지 제공 등 다른 조건제시가 있다는 얘기고 보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물론 구청장님께서 제가 자세히 모르는 구체적 어려움이 많으실 줄 믿고, 직접 이 문제와 더불어 저 보다 더 많은 고민을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핵심을 피해가며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수학교가 강남구라는 부촌을 피하고 경기라는 명문을 피해 다른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면, 앞으로도 특수학교 설립문제는 우리사회에서 영원히 풀릴 수 없는 사회문제로 남습니다.

 

  제가 장관이 된 후 몇 가지 역점 사업을 벌리고 있는데, 특수교육진흥은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 국민이 장애인을 가슴의 한 가운데 안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해도 우리는 후진국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같은 맥락

에서 강남구민들께도 서울지애학교를 기쁨으로 받아들이시기를 청합니다. 어렵겠지만 구청장님께서도 구민들에게 이해를 간곡히 구하고, 바로 우리들 자제이기도 한 이들 장애아들이 명실상부한 서울 1번지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청을 드려 미안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경기고등학교 출신이자, 강남구청장이신 청장님께서 용기를 가지고 푸셔야 하는 문제입니다.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不備禮

                                             1997. 6. 30

                                                                  교육부장관 안병영 드림

 

 

                                    III.

  그러나 이후에도 강남구의 협의 불이행이 계속되자, 서울 교육청은 기다리다 못해 그해 10월 사업승인과 업자선정을 마치고 11월 공사를 강행하게 된다. 다음은 1997년 11월 11일(화)일자 국민일보에 게재된 “ ‘지애학교’ 부모의 눈물”이라는 기사내용이다.

 

“ 1997년 11월 10일 오후 11시 정신지체 장애아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지애학교’가 들어설 예정인 서울 삼성동 경기고등학교 후문 부근에서는 300여명의 장애아 학부모들이 주민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공사를 기다리는 대형 포클레인이 올라타거나 그 앞에 드러누운 채 저항하는 주민들과 장애아들이 다닐 학교 건립을 고대하면서 주민들을 끌어내리는 학부모들의 공방은 1시간여 동안 계속됐고 전경들이 끈질기게 저항하는 주민들은 1명씩 끌어낸 뒤 대형 포클레인이 경기고 담을 부스면서 공사가 시작되자 환호와 욕설이 엇갈려 터져 나왔다.”

 

이러한 역경을 거쳐 2000년 1월 15일 지애학교는 서울정애학교라는 바뀐 이름으로 설립인가를 받아, 같은 해 3월 3일, 23학급 133명의 학생이 시업식과 입학식을 연다. 그리고 5월 17일 개교식을 가졌다.  그날 정애학교 학부모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IV.

  장애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특수학교의 설립과정에서 거의 예외 없이 위와 유사한 고난의 역정을 겪는다. 구청장에게 보낸 내 편지에서 잠시 언급한 역시 강남구 일원동의 ‘밀알학교’ 역시 주민들의 반대로 건립이 중단되었다가 법정소송까지 가서 가까스로 건립이 이루어져 1997년 3월 개교했다. 개교 후에도 인접도로가 있고 전철역도 가까운 후문을 만들어 놓고도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후문을 사용 못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비단 장애아 학교뿐이 아니었다. 내가 1997년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안학교 설립을 추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랑머리의 문제아들이 대부분이었던 ‘꼴통학교’인 초기 대안학교를 건립하자면 ‘결사반대’를 외치는 지역주민들과 끈질긴 싸움을 벌려야 했고, 몇 번 퇴짜를 맞아 터를 옮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모진 고난과 역경을 거쳐 1998년 충북 청원군에 어렵사리 개교한 ‘양업고등학교’는 이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교육 롤모델’로 자리 잡아 2013년 전 세계에서 22번째, 아시아 국가 중 첫 번째로 WGI( William Classer International)의 ‘좋은 학교’(Quality School)의 인증을 받았다(조선일보 2015/1/27 참조).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는 통일부와 힘을 합해 탈북자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정규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 ‘한겨레 고등학교’의 설립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도 주민들의 반대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가시밭길을 헤쳐야 했다. 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주도로 2006년에 개교한 한겨레 학교는 이후 비약적 발전을 거쳐 이제 양질의 교육을 펼치는 모범적 새터민 교육기관으로 우뚝 솟았다. 나는 가끔 “그마져 없었으면, 우리가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새터민들에게 어떻게 얼굴을 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신기하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간 건립된 수많은 장애인 학교, 대안학교, 특성화학교 등이 시간과 더불어 지역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서로를 아끼며 잘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점차 그 지역의 명소이자 자랑거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부대끼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착한 천성, 감정이입 능력이 마치 봄의 숨결처럼 제 힘을 발휘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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