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얼마 전 아파트 난방비리와 연관해서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일약 ‘난방투사’로 만인의 입에 회자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35년 전 강남 M 아파트에서 내가 몸소 아프게 겪었던 아파트 관리비리 사건이 떠올랐다. 내가 한창 30대말에서 40세 고개를 넘어가던 시점에서 1년 가까이 치열하게 몸으로 부딪히며 악전고투했던 일이라 아직도 기억이 비교적 생생하다. ‘아파트 관리 문제’는 우리나라 전 국민의 약 2/3가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생활사(生活事)이기에 아무도 남의 일처럼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처음부터 아파트 난방비리를 세차게 고발했던  ‘김부선’ 씨의 용기에 박수를 치는 입장이었다.

 

 

                               II.

  1979년 초 우리 가족은 서울 강남에 신축한 M 아파트에 입주했다. 처음부터 아파트에 문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부실공사로 논란이 잦았고, 그 때문에 입주 초기에는 집집마다 하자보수로 정신이 없었다. 입주한 후, 반년이 넘자 인근 다른 아파트에 비해 우리 아파트 관리비가 어처구니없이 많이 나온다는 불평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감독하는 주민 대표기구인 운영위원회가 난방, 쓰레기 수거, 경비 등에 일일이 관여하면서 전횡을 일삼고 이권을 챙겨, 비리, 부정이 많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말만 무성했지 정작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하루하루 살기에 바빴고, 당시 까지만 해도 아직 아파트가 도시의 전형적 주거형태로 자리 잡기 전이라, 주민들도 아파트 관리에 별로 아는 바가 없없었고, 더욱이 누구도 관리 비리에 대처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당시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 ‘조직내 민주주의’ 등 주민자치와 연관된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 기회에 아파트 주민자치의 실상을 알아보고, 혹 관리 비리가 있다면 그 실체를 파헤쳐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우선 아파트 주민대표 체계를 살펴보았다. 전체가 9개 동인데, 동마다 라인에 따라 5명의 대표가 선출되어 전체 45명이 모이는 대의원 회의가 있고, 그들이 9명의 운영위원을 호선하게 되는데, 이렇게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아파트관리사무소를 관리. 감독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아보니 주민대표기구인 대의원회의는 거의 소집되지 않아 유명무실했고, 실제로 운영위원회가 전권을 행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운영위원회 모임 날짜를 알아보고 그날 시간에 맞춰 회합장소로 나갔다. 왁자지껄 떠들어 대던 대, 여섯 명의 운영위원들은 의외의 방문객에 아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누구냐고 묻기에, “주민의 한 사람인데, 아파트 문제에 관심이 있어 방청하러 왔으니, 개의치 마시고 회의 진행하시라”고 말했다.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참관인 한 명 앞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아파트 관리규정을 개정하는 안건이었는데, 가뜩이나 유명무실한 아파트 대의원회의를 더 무력화하고 운영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의견 개진을 청했다. 그들은 논란 끝에 내게 말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이 의안은 아파트 대의원회의에 논의할 얘기지, 운영위원회에서 자의적으로 의결할 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며, 주민의 입장에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급기야 고성이 오갔고, 끝내 나는 그들에게 회의장에서 밀려 나왔다. 그 때 나는 저들이 ‘나쁜 사람들’이라는 심증을 굳혔고,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당시 M 아파트의 주민의 구성을 보면, 대체로 40대 도시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고도 성장기 한국 사회의 여러 부문에서 상향이동을 하기에 바쁜 한창 나이의 중년들로, 개중에는 공직자, 대기업종사자, 교수/교사, 언론인 등 지식인 계층이 많았다. 그들은 이른 아침 시간에 택시합승으로 한강을 넘어 서울 도심으로 출근을 하고, 밤늦게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피곤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파트 비리 소문이 아무리 무성해도, 실제로 그들이 이 문제로 신경을 쓸 형편이 못되었다. 그렇다고, 당시 집에  아낙들이 오늘 ‘이부선’ 씨처럼 이런 문제로 앞장을 서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였다. 이런 빈틈을 타서 아파트 관리비리가 독버섯처럼 크게 만연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보니, 운영위원회의 주축이 되는 ‘3인방’이 있는데, 모두 50세 전후의 나이로 비리경력이 있는 전직 관료, 경찰서 간부, 그리고 가짜 의사라는 것이다. 백수인 이들은 하루 종일 관리사무소 근처에서 맴돌며 크고 작은 아파트 연관 각종 이권에 깊이 관여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평판이 무척 나빴지만, 모두 그들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저들을 몰아내자면, 석 달 후에 있을 아파트 대의원선거에서 깨어있는 사람들이 많이 진출해서 운영위원회를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M 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 내가 알 만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다행이 같은 성당에 다니는 교우들이 제법 되었고, 학교 선후배, 한다리 건너 알 만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는 이들을 이른 아침에 한 사람, 한 사람 찾아 가서, 각동의 라인 대표, 말하자면 줄반장으로 나서달라고 종용했다. 그러면서 “깨어있는 주민만이 아파트를 지킵니다”라고 호소했다. 공감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개 중에는 괜한 짓을 한다고 비아냥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당시 그 아파트에는 훗날 국회의원, 장관, 대기업 사장이 된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나에게 ‘쓸데없는 일’ 그만 하라고 말렸다. 어떤 이는 아예, “교수가 한가한 직업인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나서는 저의가 무엇입니까?”라고 내가 무슨 속셈이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석 달을 혼자 강행군을 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우군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앞장을 서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나서는 분이 계시니 열심히 돕겠습니다”라며 공감과 격려를 보냈다. 이들은 대체로 중학교 교사, 자영업자, 인근 가게 주인 등 소박한 이웃들이었다. ' 안교수'가  단기로 바삐 움직이자, 운영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예의 ‘3인방’도 불철주야 열심히 뛴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III.

  대의원 선거는 우리 편의 압승으로 끝났다. 기억이 확실치 않으나 우리 쪽이 30여명, 그리고 저편이 10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이제 M 아파트에 새 아침이 밝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대의원 호선으로 진행되는 운영위원회 선거에서 고정표를 가진 저편 3인방은 모조리 운영위원으로 당선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를 포함하는 우리 편 대의원 6명과 대치하게 되었다. ‘3인방 배제’의 목표는 처음부터 어긋난 것이다. 그나마 운영위원장은 중량감 있는 공직 인사 한분을 어렵게 모셨다. 운영위원회 구성만을 보면, 위원장이 아군이고, 머리수로는 6;3 으로 우리 편이 크게 우세했지만, 실제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우리 편 인사들은 모두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이고 아파트 문제에 대한 관심은 부수적인데 비해, 저편 인사들은 대부분 백수들이 었고 아파트 문제는 바로 그들의 ‘생존’ 문제였다. 저들은  매사에 온 몸을 던져 저돌적으로 임했다.  정보력이 뛰어 났고, 지역사회의 공사기관 관계자들과 한 통속이었다. 또 하나같이 현하(懸河)의 웅변가들이었고, 밀어붙이기와 모함과 협박에 명수였다. 저들은 운영위원과 대의원들 한명, 한명에게 접근하여 설복, 회유, 협박을 일삼았다. 그러다 보니, 대의원회의나 운영위원회를 열어도 우리 편 인사들의 참석률은 극히 저조한데 비해, 저편 사람들은 전원 참석해서 분위기를 몰아갔다. 시간이 감에 따라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저들 편으로 회귀했고, 유명인사인  운영위원장 K씨의 말발도 잘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새 운영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난방, 청소, 경비, 관리비회계 등 제 문제를 공적 토론의 마당으로 끌어 들여 과거에 일상화되었던 비리와 부정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권과 연관해서 저들의 몫이 사라지자, 문제의 ‘3인방’은 상황의 반전을 위해 강수를 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와 운영위원장을 정조준하고 갖가지 치졸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비방과 모함을 하기 시작 했다. 안 교수는 여자문제가 매우 복잡하다며 그럴듯한 스토리까지 만들어 소문을 내는가 하면, 운영위원장 K씨는 불법 토지매입으로 문제가 있다고 언론에 투서까지 했다. 나는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고, 내 처는 " '여자관계계’라니 사람을 과대평가해도 유분수지!" 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공직자인 K씨는 매우 힘들어했다. 급기야 우리 집에 테러위협 전화가 빈번하게 걸려 왔다.

 

   그러던 중, 하루는 운영위원장 K씨가 나를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 안 교수님, 어쩔 수 없습니다. 저들과 타협을 합시다. 몇가지 이권 중 일부라도 저들에게 내 줍시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가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라는 게 아닌가. 나는 펄쩍 뛰면서, “안됩니다. 저들은 ‘절대악’입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물러나다니요. 절대 그럴 수는 없읍니다.조금만 더 참으시면 우리가 분명 이깁니다”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그 분은 나를 물끄러미 처다 보더니, “안 교수님, 여기서 명예혁명을 하자는 겁니까. 가능한 일을 시도하십시오. 이제 우리 편이 몇 명 남지 않았습니다. 안 교수님이 계속 이러시면, 미안하지만, 저는 더 이상 이 직책을 맡을 수는 없습니다”며 사의를 표했다. 그 때 그가 왜 '명예혁명' 운운 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를 현실을 모르는 강경론자로 치부했다. 훗날 그는 정계입문,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K 운영위원장의 사퇴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위원장이 공석인 가운데, 대의원회의나,운영위원회를 열어도 저들이 더 많이 참석했다. 실질적으로 주도권이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심한 스트레스로 시달리면서 나는 위통으로 매일 배를 안고 다녔고, 골치가 뻐개지는 듯 아파 생전처음 신경정신과 병원을 찾기 까지 했다. 무엇보다, 이제 ‘혼자 남았다’라는 절대고독감이 무섭게 엄습했다.

 

  나는 마침내 ‘풀뿌리’에게 매달려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상황을 바르게 알리고 힘을 뫃아 아파트를 지키자는 마지막 호소를 하기 위해, M 아파트 역사상 처음으로 주민총회를 소집했다. 큰 강당에 나는 일찍 나가 마이크를 확보했다. 그리고 우리 편 몇 사람이 나를 에워쌌다. 시간이 가까워지자 주민들이 한명한명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참가자 대부분이 아파트 부인네들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너나없이 아파트 문제에 관심은 지대한데, 워낙 복잡하고 시끄러우니 걱정이 되어 남편은 집에 아껴두고 부인들 스스로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한발 뒤늦게 저편 사람들이 나타났다. 십 여명이 바삐 우리 편 주위로 몰려와 씩씩거리며 마이크에 접근하려고 거칠게 우리 쪽 사람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나는 예정시간이 되자마자, 마이크를 잡고 그간의 진행사항을 빠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빠르게 말한다고 했지만, 내 말투가 워낙 느려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저편 사람들이 거센 파도처럼 내 가까이 밀어 닥쳤다. 나는 마이크를 든 채 몸을 조금씩 이동해 그들과 거리를 만들어 가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태가 워낙 다급하니 내 말도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격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편 사람들이 “저놈, 죽여라” 외치며 일제히 총공세를 취하며 거칠게 몰려들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이었다. 삽시간에 나를 에워쌌던 몇 명 안 되는 우리 편 사람들의 인간사슬이 무너졌다. 나는 황급히 그들의 벌거벗은 폭력을 피해 강당 한가운데로 몸을 피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저편 사람들이 나를 잡아채기 직전에 강당에 모여 있던 수많은 부인들이 몇 겹으로 나를 에워싸는 게 아닌가. 삽시간에 연약한 부인네들로 새로운 인간사슬이 형성되자, 저들도 망연자실,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아수라장에서 그들은 마이크를 손에 넣었으나, 만천하에 정당성을 잃은 그들에게 마이크는 이제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이었다.

 

  뒤에 들리는 얘기로, 동네 부인들은 그냥 놓아두었다가는 ‘착한(?)’ 안교수가 악인들에게 그냥 맞아 죽을 것 같아 부지불식간에 나를 에워쌌다는 것이다.

 

 

                                  IV.

  그 며칠 후, 나는 일본에 무슨 회의가 있어 2박 3일로 일본을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 와보니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저녁을 마친 후, 내 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따져 물었다. 그랬더니 내 처가 그 사이에 “아파트를 팔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그쳤더니, “하도 힘들어서 부모님께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아버님이 오셔서 파격적으로 싼값으로 아파트를 내놓으셨고, 아파트는 그날로 팔렸다”는 것이다. 나는 펄쩍 펄쩍 뛰며, “아파트가 이 지경인데 내가 어디를 가. 이제 사람들이 내가 겁이 나서 도망을 간다고 할 것 아니야”며 야단법석을 했다. 그랬더니, 내 처가, “동네 부인들이 다 나 보고 잘했다고 해. 그냥 놔두면 안 교수 제 명에 죽지 못한 데” “당신 탓 할 사람 한명도 없어. 다 미안해 해.”라고 말했다.

 

  나는 내처가 나 몰래 아파트를 판 데 대해, 화가 치밀었지만, 마음의 다른 구석에서는 “이제 살았구나”라는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그러면서 지난 10개월 동안의 갖가지 사건이 주마등처럼 뇌리에 스쳤다. 그날 밤 나는 실로 오랜만에 푸근하고 긴 잠을 잤다.

 

   우리가 이사 가기 전 날 밤, 30여 평짜리 우리 집 거실에 발 디딜 틈도 없게 많은 주민들이 우리를 찾아와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제대로 돕지 못해 미안하다며 떠나는 우리를 위로했다. 한편 그 날 밤, <3인방>을 비롯한 저편 무리들은 관리사무소를 빌려 밤새 술 파티를 벌리며, 자신들의 무혈입성을 자축했다는 후문이다.

 

 

                                     V.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일이 있은 후, 1년 뒤 도하 신문에는 강남의 M 아파트에서 “1억이 넘는 아파트 사상 최대, 최악의 부정사기 사건”이 터졌다고 크게 보도되었다.

 

  나는 그 때 “안 형! 속는 셈치고 아파트 관리비 몇 푼 더 내지. 그거 바로 잡겠다고 그 고생을 해”라며, 내 걱정을 했던 아파트 지인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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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용석 2015.01.04 22:3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버님, 김부선이에요.

  2. 양재진 2015.01.31 00:37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2003~5년에 비슷한 경험을 했네요. 지금 사는 700세대 아파트의 초대 입주민대표를 했었는데, 주상복합인지라 상가분들과 운영위원회를 함께 꾸려야 했지요. 그런데 상가협의회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애들 교육을 우선시하고 삶의 터전을 만들고자하는 아파트주민들과 임대로 들어와 수익을 내야하는 상가분들과는 이해상충이 많았어요. 저희 입주민 대표들을 골탕먹이려고 횡령인가 배임인가 뭐했다고 형사고발도 하고, 그 덕에 조사받으러 경찰서도 다녀오고 그랬었지요. 너무나도 상식적인 대화도 안통했고, 우리사회에서는 눈에는 눈으로 맞대응하고 소위 지랄을 떨어야 뭔가 먹히는 것을 깨닫기도 했지요. 결국에 상가 리더들이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바다이야기'라는 빠징코같은 불법오락장을 들여 오려고 하다가, 주민들 (여기서도 주력은 아줌마 부대였지요)이 데모하고 실력행사를 해서 쫒아낸 경험이 있습니다. 문제가 된 상가리더들이 나가고 후임 입주민대표들이 노력하니 조금 상식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정부로부터 깨끗한 아파트로 모범표창까지 받고 그럽니다. 다시 돌아가서 입주자대표 할 거냐 그러면, No입니다. 너무 힘들었었어요. 그래도 한가지 좋은 건, 그 때 같이 고생했던 이웃들하고 동지애를 느끼는 친구들이 되어 편히 술한잔하고 여행도 같이 가는 사이가 된 점입니다. 70년대보다는 세상이 나아지긴 했나 봅니다.

  3. 현강 2015.01.31 11:08 Address Modify/Delete Reply

    양박사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전혀 몰랐네.
    나도 왠만해서는 이런 저런 일에 끼어 들지 않는데, 살다보면 본의아니게 관여하게 되고
    그러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루게 되네. 우리 사회가 너무 눈앞에 이익에 집착하고, 공동선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박약한게 문젤세. 작년에 우리 동네 '산립훼손'의 경우도, 훼손반대 서명을
    했던 대다수의 동네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훼손 지지로 돌아 갈 때는 인간성에 대한 회의를
    느낄 수 밖에 없었네. "아니, 세상에 어떻게 그럴수가"라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니
    아예 이곣을 뜨고 싶은 심경 뿐이었네.
    서울이 지겨워서 '모두 잊고 살자'고 이곳에 왔는데, 불의가 눈앞에 보이니 그럴 수도 없어,
    또 관여하게 되니...언제까지 이래야 할지. 걱정이네

  4. 양재진 2015.02.03 15:59 Address Modify/Delete Reply

    교수님, 그래도 결과들은 다 나쁘지만은 않으니, 다행이에요. 건강한 숲속에서 사모님하고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