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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하늘색 도자기 항아리의 추억

2015. 10. 3. by 현강

                                                I.

1980년대 10년은 내 나이 40대였다. 한창 바쁘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경제적으로는 항상 쪼들렸다. 80년대 중반은 슬하의 남매가 각각 고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였다. 그런데 아파트를 조금 늘리려고 은행 융자를 받았는데, 그게 힘에 부쳐 매달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다. 생활비를 줄여 보려고 애를 썼지만 적자행진은 그치질 않았다. 궁리 끝에 나는 생활비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고안했다. 일종의 가족 전체가 참여하는 강제 긴축 방안이었는데, 내용인 즉, 거실에 있는 아가리가 조금 큰 항아리 안에 내 월급에서 매달 지불해야 할 공과금, 학자금, 대출상환금, 이자 등을 미리 차감한 나머지 잔액을 넣어두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게 가족 생계비의 흐름을 고려하면서 각자 알아서 (양심껏) 꺼내 가라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거실 구석에서 은은한 아름다움을 뽐내던 하늘색 도자기 항아리가 자발적 긴축을 강요하는 차디찬 요물단지로 변신했다.

 

                                                   II.

매달 월급날이면 하늘색 도자기 항아리 안에 오천 원 권부터 동전까지 돈 크기별로 나누어 가지런히 배열된다. 월래 월급액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그렇게 펼쳐 놓으면 처음 얼핏 보기에는 그런대로 제법 푼푼해 보인다. 그러다보니 처음 한, 두 달은 시행착오가 계속되었다. 식구마다 별 생각 없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돈을 꺼내 썼고, 그러자 반달이 지나기가 무섭게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해서 다음 월급날 까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 불가피 했다. 이렇게 몇 달이 지나자, 식구들은 심기일전(心機一轉), 저마다 쓰임새를 크게 줄이는 방향으로 소비행태를 대폭 바꿨다. 너나없이 가급적 항아리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를 줄였고, 거기에 손이 가더라도 항아리 안의 재정 상태를 고려해서 '생각하며‘ 돈을 꺼내가게 되었다.

 

이러한 항아리 긴축방식의 성과는 놀라웠다.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지출의 대폭 감축을 통해 가계 재정은 안정되고 적자행진도 그쳤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가족 구성원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두 자신들의 자발적 참여와 소비행태의 변화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고, 스스로 얼마간 대견하게 느끼는 듯 했다.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도 오히려 강화되는 듯싶었다.

항아리 긴축방식은 은행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여러 해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가족 모두가 나름대로 ‘항아리 사용법’을 새롭게 터득했다. 항아리 속에 눈이 가면 일일이 세어 보지 않아도 한 눈에 잔액의 크기를 대충 파악하게 되었고, 다음 월급날짜까지의 잔여기간과 그때까지의 돈의 흐름, 그리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소비패턴 등을 두루 고려하면서, 일정 액수의 돈을 꺼내갔다. 처음에는 각자가 돈을 빼낼 때 얼마간 머뭇거리며 얼마를 꺼내 가야할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고려요소들을 순식간에 복합적으로 계산해서 별로 지체하지 않고 스스로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적정 액수를 뽑아냈다. 그 과정에서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배려가 늘 함께 했다. 내가 조금 줄이면 다른 가족이 그만틈 더 여유로워진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한 달 간의 돈의 흐름이 점차 안정되고 균형을 이루게 되어, 월급날 이전에 돈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 한 번도 없게 되었다.

 

                                             III.

수년간 항아리 긴축방식을 시행하는 동안 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온 식구가 허리띠를 졸라 매야 되기 때문에 우선 내가 모범을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 합리적 소비행태를 통하여 크지 않은 금액으로도 초라하고 궁색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아이들도 많이 배운 것 같았다. 훗날 아들이 제 엄마에게 그 때 얘기를 하면서, 천원을 꺼내려 항아리 아가리에 손을 넣다가 결국 오백 원을 꺼내 곤 했는데, 그런 생활습관을 통하여 다른 가족 구성원에 대한 배려와 검약하는 생활습관을 익혔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 시절 나는 한창 스웨덴의 정치와 문화에 몰두하고 있었다. 항아리 긴축방식을 고안할 당시 내 머리에 떠 올렸던 것도 실은 어느 책에서 보았던 스웨덴 얘기였다. 스웨덴 젊은이들은 무리로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 하는데, 그럴 때면 으레 엄청나게 큰 술잔에 술을 한껏 붓고 전원이 한 명 한 명 차례로 돌아가며 마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 명이 마시든 처음 마시기 시작한 친구의 술의 양과 마지막 친구의 술의 양이 대체로 똑같이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상호 배려하는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 책에서는 이를 ‘참여’와 '배려‘, ’유대‘를 중시하는 그들 문화적 특성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적자 가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현실적 필요 못지않게, 항아리 방식을 통해 온 가족이 참여를 통한 위기극복의 정신과 근검절약의 생활습관, 그리고 상호배려의 덕성이 함양하기를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희망은 하늘색 도자기 항아리를 매개로 기대 이상 충족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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