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나는 학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유학을 가서 정치학과 행정학을 함께 했다. 평생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지만, 연구 내용으로 따지면, <정치학 바탕의 행정학> 내지 <행정학과 함께하는 정치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정치학과 행정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많은 경우 양자를 연계융합해서 공부하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고집스럽게 정치학이나 행정학 중 한 영역을 고수하려고 필요이상 애쓰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정치학은 보다 본질학문에 가깝고 이론적 성격이 강하다. 반면 행정학은 보다 실용학문의 속성이 뚜렷하며 실천적 측면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치학과 행정학은 학문체계상 분류이지, 살아있는 정치와 행정의 세계는 서로 이어지며, 상호교호하며 보완한다. 따라서 행정을 외면한 정치나, 정치와 무관한 행정은 생각하기 어렵듯이, 학문의 세계에서도 정치학과 행정학의 통섭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어느 쪽에 치중하느냐에 따라 이론과 실천 사이를 오가게 된다. 내 경우, 이론에 크게 기울어지면 실천 쪽이 허전하고, 실천에 역점을 두면 이론 쪽이 아쉬워서 일생 양쪽을 오갔다. 그러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II.

나는 학부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전공을 잘 선택했다고 느꼈으나, 그것이 지나치게 이론적이어서 구름 잡는 얘기가 많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따라서 실용성, 실천성에 대한 갈구가 있었다. 내가 석사과정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런데 행정학 공부를 하다 보니 처음에는 그 실천적, 문제해결적 접근에 신선미를 느꼈으나, 점차 그 철학적, 이론적 빈곤에 대한 아쉬움이 싹텄고 그것이 불만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다시 내 내면세계에서 정치이론에 대한 갈망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유학지로 유럽을 선택한 것도 그곳에서 정치사상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도착해 보니 정치사상을 공부하려면 철학부에서 형이상학 위주의 공부를 더 많이, 또 깊게 해야 하고,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학위과정의 전제였다. 과정 자체도 벅차거니와 무엇보다 너무 관념에 치우쳐 실천과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이 마음에 크게 걸렸다. 망설이다가 사회과학으로 다시 선회, 국가학(Staatswissenschft(en))을 전공했다. 내가 유럽에서 공부하던 1960년대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의 많은 고전적 대학에서 국가학의 이름으로 정치학을 가르쳤는데, 내용은 국가와 연관된 인접 사회과학들을 연계하여 공부하는 체계였다. 나는 그 학문의 틀 안에서 가능한 한 이론과 실천, 어느 쪽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공부를 끝내고 돌아와,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니 내게 모두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정치학도 했고, 행정학도 했고 .. ”식의 어설프고 애매한 대답을 했다. 스스로도 딱히 어떤 것이 내 전공이라고 못 박아 얘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명확한 것을 선호하는 이 땅에서는 “전공이 분명치 못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자리를 잡는 과정도 그리 쉽지 않았다.

결국 행정학과에 둥지를 틀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학자들이 가능하면 ‘밥 먹는 체계’에 맞춰 공부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다. 말하자면 행정학과 교수면 행정학이나 착실히 연구하고, 인접 동네는 넘보지 말라는 요구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애초부터 스스로를 그 장벽 안에 가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행정학회 못지않게 정치학회에서 활동했고, 내 글의 많은 것이 내용상 정치와 행정을 잇고, 함께 엮어서 형상화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1970, 80년대 권위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많은 행정학자들이 행정학을 <관리기술학>으로 협의로 정의하고 그곳에 피난하면서, 정치세계와는 무관하게 구체적 실천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공부 방식은 자칫 행정학을 권위주의 정치의 시녀로 만드는 것임을 강조하고, 시종일관 정치적 민주주의 없는 민주행정, 공정행정, 좋은 행정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시기 내 글의 대부분은 체제비판의 관점에서 정치. 행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 비판적 논조의 정치평론을 많이 썼다.

 

1980년대 말 부터 정책학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행정관리 쪽에 치중했던 행정학의 내용과 외연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정책을 매개로 정치와 행정의 가교가 마련되었다. 정책과정의 분석이나 분야별 정책연구를 하다보면, 자연 나라의 정치체제, 정치이념, 거시적 정책지향을 논의해야 하고, 아울러 구체적 정책의 설계, 관리, 집행 문제도 함께 따져 보아야 하므로, 정치와 행정은 자연 한 흐름 속에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내 공부방식이 예전에 비해 한결 수월하게 수용되었다.

 

                                 

                                III.

나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두 번 교육부장관직을 수행했다. 첫 번째는 문민정부 때이고, 두 번째는 참여정부 때였다. 한 부처 장관을 두 번 하는 것도 드문 일이거기와, 한 사람이 이념적 지향이 다른 정부에서 장관직을 맡는 일 또한 흔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 방면 연구학자로서 매우 풍성하고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평생 정치 근처에도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학자가 어떻게, 또 왜 장관직을 맡았느냐는 질문을 아직도 받고 있다. 나는 실제로 장관 임명 전에 김영삼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었다. 따라서 내가 어떻게 장관직에 임용되었는지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 그러나 왜 그 일을 맡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이 가능하다.

 

우선 문민정부나 참여정부가 다 국민이 뽑은 민주정부라는 점이다. 만약 그들 정부가 유신체제나 5, 6 공이었다면- 물론 그들 정부가 나를 그들 정부가 선택했을 리가 없지만- 나는 분명 거부했을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자리가 중차대한 나라 일을 수행하는 추요직 (樞要職)이었기 때문이다. 국정에 참여하여 국리민복에 기여, 헌신하는 일은 매우 값진 일이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 직책은 한번 몸을 바쳐 일할 만한, 또 그러기에 한마디로 거부할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나는 장관직은 ‘엄청난 멍에이자, 축복’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나를 크게 움직였던 것은 그 자리가 정치와 행정을 연구하는 학자인 나에게 엄청난 공부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대학 강단에서 이론으로만 가르치던 나에게, 장관직은 정치와 행정이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그 감춰진 속살을 관찰,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최상의 매력적인 학습자료가 나를 강하게 유혹했던 것이다. 아울러 내가 정치와 행정, 그리고 정책을 오랫동안 강의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또 내가 맡을 교육이라는 영역 또한 내게 생소한 부문이 아니므로, 열심히 성심성의를 다하면, 그 직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얼마간의 자신감(과 착각)이 함께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장관직은 바로 정치와 행정이 만나는 교차점에 있었다. 우선 장관은 실제로 적지 않게 정치가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장관은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대통령의 대리인으로서 그의 정치적 목표의 성취를 위하여 정책적으로 보좌하며, 국정전반에 걸친, 그리고 무엇보다 소관영역의 정책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아울러 국회, 정당, 이익집단 및 시민사회 등을 상대로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조정과 중재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한편 부처의 내부관리자로서 정책의 집행과정을 관리하며, 조직, 인사 및 예산을 총괄하는 등, 민간기업체의 ‘최고관리자’(CEO)와 유사한 행정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의 장관은 2중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그러므로 폭넓게 행정을 공부해 온 학자들에게 장관직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익숙한 동네다. 아울러 그것은 엄청난 공부거리를 제공하고, 그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론, 지식과 관점을 적용해 볼 수 있는 실천의 장을 제공한다. 또한 장관직 수행의 생생한 경험을 다시 학문적으로 환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학문세계를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V.

나는 스스로 장관직의 수행이 정치. 행정학자로서 나를 크게 성장시켰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론과 실천 사이를 맴돌며 그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다른 쪽을 목말라 했던 나에게 양자를 연계, 융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장관직을 떠난 후, 나는 그 경험으로부터 수확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을 공저했고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쓰는 글 속에도 분명 내가 수행했던 두 번에 걸친 장관직의 체험과 학습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성찰이 알게 모르게 용해되리라고 확신한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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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07 21:37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현강 2016.04.08 04:5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멀리 떨어져 있어 뵙기가 불편합니다.
    왠만하시면 제 이메일 ahnby@yonsei.ac.kr로 용건을 알려 주시면 제가 정성껏
    답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