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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염력(念力)

2013. 5. 22. by 현강

                                        I.

   진정성이 깃들인 말 한 마디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나는 지인들로부터 아래와 같은 얘기를 들을 때 그런 느낌을 갖는다.

 

   "T.V로 일기예보를 시청할 때면, 안 교수 생각을 자주 하게 되네. T.V 화면에 딱히 속초/고성 지역 예보는 나오지 않지만 강릉 일기는 나오지. 강릉 조금 위이니 대충 일기가 비슷할 게 아닐까. 서울보다 추운지, 더운지, 눈이 오는지, 비가 오는지. 그러면서 저 친구 지금 무얼 할까 상상해 보지.“

  “미시령이 눈으로 막혔다거나 그곳에 폭설이 온다면 괜히 걱정이 되지. 안 교수 집이 또 고립되겠구나 싶어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고마운 생각에 가슴이 뭉클하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지인들이 이처럼 나와 교감하며 내 생각을 해 주는 구나. 그들이 무언중에 나를 따듯하게 보살피고 있구나.

 

 

                                         II.

   전에 장관직을 마치고 대학으로 돌아 온 후, 우연히 수십 년 전에 함께 유학했던 착한 선배 한 분을 만났다. 그랬더니 그는 대뜸 “안 교수가 장관을 그만두니 내가 다릴 뻗고 잔다네”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왜냐고 물으니 “당신이 정부에 있을 때는 마치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 보낸 것 같아 불안하기 짝이 없었네. 교육부가 워낙 말썽 많은 동네라 더 그랬지. T.V.에서 ’교‘자만 나와도 괜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곤 했지” 했다. 그 분 말씀을 들으며 “제가 꽤나 믿음직하지 못했던 모양이네요”라고 장난스레 한마디 던졌으나, 속으로는 고맙기 그지없었다. 불초하기 짝이 없는 후배에 대한 애틋한 관심과 사랑을 이 보다 더 진솔할 수 있을까. “아. 이분이 정말 순수하게 내 걱정을 해 주는 분이구나.”

 

  그러면서 내가 두 번 장관직을 수행하고 그나마 큰 실수 없이 대학으로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많은 분들의 끊임없는 정신적 지원과 배려 덕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III.

  벌써 20년은 되었을 듯하다. 하루는 어떤 이가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10여 년 전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야간 석사과정에서 교수님 강의를 들었던 옛 제자입니다. 제가 저녁을 한번 뫼시고 싶은데 꼭 시간 내 주십시오”라고 했다. 며칠 후 프레스센터에서 그와 만났다. 그를 가르친지는 꽤나 오래되었지만, 내가 강의할 때 항상 맨 첫째 줄 가운데에 앉아서 열심히 경청하던 내 나이 또래의 나이든 학생이라 곧 얼굴이 기억이 났다. 그는 자신이 비례대표 출신의 현직 국회의원 C이며 S대 정치학과를 나왔노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임기가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는데, 더 이상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나를 만나려고 했느냐고 물으니, “아무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임기가 끝나기 전에 꼭 한번 뵙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실은 그간 선생님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늦은 시간까지 격의 없이 긴 얘기를 나눴다. 함께 겪었던 지난 시대의 애환을 얘기하고, 나라 걱정도 했다. 함께 아는 친구 소식도 나눴다. 그는 정치가답지 않게 무척 순수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정겨운 시간을 보냈다. 헤어 질 때, 그는 내게 “선생님, 앞으로 건강하십시오” 라고 축원했다. 그러면서 이어 “선생님은 분명 오래 오래 건강하실 것입니다.”라고 예언하듯 말했다. 내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C 의원님, 내가 앞으로 오래 건강할 것을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이 압권(壓卷)이었다.

 

   “제가 교수님을 자주 생각하듯 많은 제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선생님 생각을 하면서 부디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 바람들이 한데 모여 염력(念力)으로 선생님 건강을 굳건하게 지탱할 것입니다.”

   나는 그의 의외의 멘트에 감동했다. 그러면서 내가 평생 직업으로 교수직을 택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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