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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2013. 3. 23. by 현강

  내가 <오스트리아 모델>에 관해 책을 쓰고 있다고 장광설(長廣舌)을 한 것이 재작년 겨울(현강재, 2011/12/21일 ‘미리 적는 발문(跋文)’참조)이었다. 그 후 별 소식이 없으니, 많은 분들이 책이 어떻게 되었느냐가 물으신다. 그래서 오늘은 그 답을 드려야겠다.

초고는 작년 봄에 마쳤으나, 그 후 얼마간 보완작업을 하며 차일피일 늦추다가, 며칠 전에 원고를 출판사(문학과 지성사)에 넘겼다. 그간 산고(苦)가 만만치 않았다. 아직 책 이름도 확정을 못 짓고 있는 형편인데, 앞으로 편집해서 책이 나오기 까지는 적어도 두 달은 걸릴 것 같다. 아래에 책의 머리글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를 옮겨 본다.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I.

   최근 들어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의 모범적 강소국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점차 이 나라들의 제도와 정책, 그리고 문화에 대한 지적 탐색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하나의 체제 모형으로서 <오스트리아> 만큼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준거틀이 되고 유익한 교훈이 될 만한 나라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현대사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역사다. 이 나라는 그 과정 속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난제들을 한발 앞서 매우 성공적으로 풀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아직 오스트리아에 대한 관심이나 연구수준이 매우 낮아, 이 나라는 그냥 ‘숨은 보물’로 남아있다. 일찍이 이 나라에 유학(1965-1970) 하면서 오랜 인연을 맺어온 필자는 이번에 보물찾기를 하는 심정으로 이 나라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재작년 여름 필자는 오스트리아를 방문하여 그간 이 나라의 변화된 모습을 직접 접하고 많은 이들과 생각을 나눴다. 이웃 나라들도 방문하여 이들이 오스트리아를 보는 관점도 익혔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는 국정(國政) 운영과 문제해결 과정에서 분명 ‘오스트리아적인’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합의(合意)와 상생(相生)’의 문화였다. 그것은 나라 발전의 원동력인 동시에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의 기본 정신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 나라의 문화사, 지성사 속에서는 ‘융합(融合)과 재창조(再創造)’의 놀라운 능력이 돋보였다. 필자는 바로 이 덕목들이 오늘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고, 목말라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다 집중적인 연구를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II.

   오스트리아의 현대사는 실로 파란만장한 드라마다.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은 1848년 부르주아 혁명의 불발과 유사 의회주의, 한 박자 늦은 산업화, 자유주의의 취약성 등의 정치경제적 후진성과 체제 내의 민족적, 사회적 갈등에 시달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종언을 고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이 거대제국을 통치하면서, 타협과 합의, 조정과 적응의 관리기법을 터득한다. 제국의 종말 속에서도 ‘세기말 빈(Wien)'은 폭발적인 지성문화를 꽃피운다.

 

   유럽 굴지의 거대제국에서 알프스 산간의 작은 약소국으로 전락한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과의 합병을 갈망하였으나, 전승국들의 거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깊은 좌절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트리아 제1 공화국(1919-1938)은 <아무도 원치 않는 나라>였으며, 경제적으로도 피폐하여 많은 이가 그 생존 가능성에 회의를 가졌다. 그런 가운데, 좌우 간의 이념대립이 첨예화되어 국민은 <검은 진영>(가톨릭 보수주의자)와 <붉은 진영>(오스트로 마르크시스트)으로 갈라져, 치열한 다툼을 벌리다가 끝내 1934년 총칼을 겨누는 시민전쟁으로까지 치닫는다. 이후 권위주의적 파시스트 정권(1934-1938)을 거쳐 1938년 히틀러에게 합병되는 비운을 맞는다.

 

  제2차 대전이 끝나자, 오스트리아는 미, 소, 영, 불의 연합국 네 나라에 의해 분할 점령된다. 이후 10년 간에 걸친 끈질긴 협상을 통하여 1955년 역사적인 국가조약을 통해 ‘중립화 통일’을 성취하고 국권을 확립한다. 또한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제1 공화국의 실패를 통절히 반성하고, 과거의 이념갈등에서 벗어나 좌, 우가 협력하여 국정을 관리하는 ‘합의제 정치’와 노, 사, 정이 사회적 협의를 통하여 경제 및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발전시킨다. 이 ‘두 겹의 합의체제’를 통하여 오스트리아는 전후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로 발돋움 하였다. 그 과정에서 오스트리아인들은 제1 공화국에서 결여되었던 ‘국민적 정체성’ 을 확립하고, 1955년 유럽연합에 가입함으로써 소극적 중립을 넘어 유럽과 세계를 향해 새로운 역사적 지평을 열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현재 1인당 GDp $ 46,960(2012년)로 세계 굴지의 부국이면서, 경제성장률, 사회보장수준, 고용률 및 물가안정, 그리고 사회평화에 있어 모두 OECD 최상위권에 있다. 그런가 하면 문화대국으로서 예술 및 문화, 학술부문의 세계 기여도 괄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는 영욕이 교차하는 굴곡진 역사 속에서 학습한 풍성한 역사적 경험과 응축된 문화적 힘을 갖춘 나라다.

 

                                                 

                                                      III.

   오스트리아는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와 서로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 우선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라는 점에서 그렇다. 역사는 멍에가 될 수도 있고 득이 될 수도 있다. 오스트리아는 전형적인 서유럽 국가가 아니다. 서구의 변방, 동서의 교차로에 위치하면서 서구의 선진적 여러 나라에 비해 자유주의의 세례, 산업화, 민주화에서 모두 뒤졌고, 그 때문에 권위주의적, 온정주의적, 엘리트주의적 정치문화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가 하면, 이 나라의 경우, 민주화의 단초가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양차 세계 대전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해 열렸다. 무엇보다 양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막대하여, 두 번 모두 바닥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들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공산화 위협을 받았다는 점, 세계체제 속에서 약소국으로 경제적 생존전략을 고심해야 했던 나라라는 점, 그러면서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고뇌했던 통일, 경제발전, 정치적 민주화, 노사협력, 복지국가 건설, 정체성 확립 등 국가적 핵심과제와 힘겨운 씨름을 해 왔다는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다. 또한 이 나라도 제2차 대전 이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유럽의 변방국가에서 대표적 강소국으로 크게 발전한 나라다. 따라서 오스트리아의 제도와 관행, 문제접근방식과 정책과정 및 정책사례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오스트리아 모델은 스웨덴 등 북구 여러 나라의 진보적 처방이나, 영미의 지나치게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처방보다 적실성이 훨씬 높다. 어떤 의미에서 ‘제3의 모델’, ‘중도통합형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이 책에서 ‘오스트리아 모델’이라는 개념을 상정하고 있으나, 이는 ‘스웨덴 모델’처럼 널리 보편화된 개념은 아니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필요에 따라 오스트리아가 갖고 있는 고유의 특색을 부각시키기 위해 영역에 따라 ‘오스트리아 모델’, ‘알프스 모델’, ‘도나우 모델’이라는 개념을 쓰기도 하나, 필자의 경우처럼 체제 전체를 포괄하는 통합모형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

 

   이 책의 내용이 우리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 책의 중심 부분인 제2부 오스트리아 모델의 핵심 내용을 아래에 간략히 정리하였다. 본론에서는 개개의 요소를 별개의 장으로 역사적, 이론적, 정책적 논의를 한다. 아래 6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오스트리아 모델은 1980년대 초, 중반까지 그 기본적 틀이 완성된다. 이 모델을 관통하는 정신은 역시 ‘합의와 상생’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 후(後) 물질주의의 대두, 세계화와 유럽화 등의 격류 속에서 엄청난 도전을 받고, 기존의 모형을 이후 변화하는 대내외 상황의 맞춰 재구성한다. 필자는 이 개혁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접근방식을 ‘융합과 재창조’로 정의한다.

 

                            1. 중립화 통일

오스트리아의 중립화 통일은 냉전시대가 기록할 수 있는 가장 반(反) 냉전적 정치협상의 산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오스트리아의 정치지도자들은 10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과 정치적 슬기를 통하여 4대 전승국들에 의해 분할점령 된 동서 냉전의 핵(核)지대를 통일된 정치공동체로 전환시키는 하나의 신화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오스트리아의 중립정책의 전개과정을 보면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이 찾아진다. 그들이 선택한 중립화 통일은 실제로 오스트리아가 적화(赤化)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서 ‘서방화’하기 위한 우회로였음이 드러난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에 가입하였으나 계속 중립화를 견지하면서 군사적 동맹의 밖에 머물고 있다.

 

                            2. 합의제 정치

   오스트리아는 중도통합형 합의제 정치의 전형으로, 제2 공화국 건국 이후 오늘까지 약 68년 중 40년을 중도 좌파와 중도 우파간의 대연정을 구성하여 나라를 통치했다. 오스트리아는 대연정을 통하여 1955년 국가조약, 1995년 유럽연합 가입 등 굵직굵직한 국가적 과제를 성취하고, 경쟁과 갈등보다, 타협과 합의에 의해서 국정을 운영했다. 오스트리아는 정치엘리트 간의 이러한 공존과 상생 노력에 의해 제1 공화국의 이념적 양극화와 진영의식을 극복하고, 합의적 정치문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90년대 이후, 오스트리아 정치의 다원화, 경쟁화가 증가하고 정당체제도 패권적 양당체제에서 온건 다당체제로 바뀌고 있으나, 이 나라 정치의 원형질인 <합의와 상생> 문화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3. 사회적 파트너십(노사정 협의체제)

    오스트리아는 서구에서 가장 발달하고 안정적인 노사 및 노사정 협의체제를 제도화하였다. ‘사회적 파트너십’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형 네오 코포라티즘 체제는 전후 경제 및 사회정책 결정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 나라의 경제성장과 완전고용, 정치적 안정과 사회평화, 그리고 복지국가 구축에 가장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오스트리아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통하여 계급투쟁을 협상테이블로 옮겨 ‘계급투쟁을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오스트리아가 ‘스트라이크 없는 나라’, ‘축복의 섬’으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화의 격랑과 후기산업사회의 대두 등에 따라 얼마간 퇴조하고 있으나, 오스트리아의 사회적 파트너십체제는 다른 나라와는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상당한 영향력과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오스트리아의 오늘의 번영은 합의제 정치와 사회적 파트너십이라는 정치 및 경제의 쌍두마차 내지 ‘두 겹의 합의체제’의 산물인 것이다.

 

                             4. 생태사회적 시장경제

    오스트리아의 자본주의 유형은 광범한 공공영역, 비시장적 기제에 의한 경제 조정 등 그 특유의 속성으로 인해 혼합경제 모델 내지 조정시장경제 모델 혹은 사회시장경제 모델로 불려왔다. 1990년대 이후 자유시장경제적 요소를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도 그 사회시장적 본질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요즈음 오스트리아는 ‘생태사회적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 기본목표는 시장경제, 사회정의 및 생태적 책임이다. 즉 위의 세 가지 목표가 똑같이 추구되어야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관점이다. 오스트리아는 특히 환경정책에 있어 유럽의 선도국가로서 ‘비 원자력 오스트리아’ 원칙이 연방헌법에 규정되었다.

 

                            5. 사회투자형 복지국가

오스트리아는 전후 정치적 합의제와 사회적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복지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이른바 크라이스키 시대(1970-1983년)에 이르러 선진 복지국가의 틀을 갖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 인구노령화 등 갖가지 정치경제적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복지체계의 개혁에 나섰다. 이후 오스트리아 복지국가의 전개과정을 보면, 신자유주의가 지향하는 경제적 효율성과 기존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가 표방했던 사회적 형평성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이른바 ‘제3의 길’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지향하는 ‘사회투자국가( social investment state)'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6. 국민적 정체성

오스트리아는 실로 오랜 세월동안 범(汎) 게르만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던 나라다. 그러나 제2 공화국에 들어 오스트리아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국민형성(nation building)에 성공했다. 전후 강소국 오스트리아의 성공의 역사가 국민적 유대를 강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오스트리아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흐름 속에서 인종주의의 대두와 우익 포퓰리즘의 발호 등으로 큰 홍역을 앓고 있다. 유럽지향성도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합스부르크 제국 이래 다민족과 다문화를 폭넓게 포용하며, 다원성 속에서 창의력을 키워 온 오스트리아의 어제를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V.

  이 책은 크게 세 부(部)로 구성된다. 우선 첫 부는 오스트리아의 역사, 특히 그 근, 현대사를 통시적(通時的)으로 조명한다. 이 책에서 오스트리아 근, 현대사에 비교적 큰 몫을 할애한 이유는, 바로 이 부분이 후속하는 개별 주제들의 역사적 배경이면서, 그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멀리 합스부르크 제국시대에서부터 시작되는 데, 그 이유는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실패와 제2 공화국의 성공의 유전자가 바로 거기에서 싹트고 자랐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유전자의 발견과 해명이 오늘의 오스트리아 성공을 가져오는데 매우 주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다음 2부에서는 오스트리아 모델을 구성하는 6가지 요소들을 주제별로 하나하나 집중 분석한다. 주제별 논의를 통하여 개개 요소들의 역사적 형성과정과 특징,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이들 요소에 대한 도전과 위기,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오스트리아 특유의 융합과 재창조의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 이처럼 통시적 역사기술(歷史記述)과 주제별 분석을 함께 엮는 이유는 양자를 종횡(縱橫)으로 교직(交織)하여 전체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시장경제 부분 만 제2장 오스트리아의 정치. 경제체제의 특징 안에서 논의하고, 다른 요소들은 모두 개별적인 장으로 집중분석한다.

 

   제3부에서는 오스트리아 현대사의 두 거인 ‘레너’와 ‘크라이스키’를 통하여 인물사의 과점에서 앞의 내용을 보완한다. 이는 오스트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족적을 남긴 이들 두 불세출(不世出)의 영웅의 생애, 정치철학과 그 정책을 통하여 오스트리아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이다. 타협과 합의, 조정과 적응, 점진주의와 실용주의를 앞세웠던 두 사람은 실로 ‘오스트리아적인, 너무나 오스트리아적인’ 인물이었다. 필자는 이처럼 ‘역사’와 ‘일’, ‘사람’이라는 세 겹의 장치를 통해 오스트리아 모델이라는 미답(未踏)의 세계에 접근했다.

 

 

                                         V.

   필자는 이 책을 쓰면서, 오스트리아 모델을 지나치게 미화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오스트리아 모델이 자리잡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 크고 작은 실패, 집단적 이기심과 위선, 모순과 역설을 함께 파헤치려 노력했다. 또한 이 책의 주조를 이루는 정치, 경제, 사회적 접근과 더불어 가능한 한 문화사적, 지성사적 접근도 곁들여 시도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합의와 상생’의 오스트리아 모델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 특유의 유미주의(唯美主義)적 특성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상념이다.

 

   필자가 오스트리아 모델이 형성된 현대사를 재조명하려는 가장 큰 의도는, 이 나라의 합의와 상생, 융합과 재창조의 역사가, 오늘 숱한 사회갈등과 첨예한 이념적 대결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우리에게 큰 교훈과 시사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스트리아의 제2 공화국의 오늘의 성공의 역사가 이념적 양극화, 정치적 극한 대결과 공멸로 점철되었던 이 나라 제1 공화국의 대실패 위에 이룩한 거대한 반전이기 때문에, 더 값지고 보람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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