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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껍데기는 가라

2013. 1. 20. by 현강

                                      I.

  1995-97년 내가 교육부장관으로 있을 때 일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전문대학 명칭에서 ‘전문’ 자(字)를 빼달라고 건의했다. 전문대학 측은 전문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하니 그 ‘두자’는 빼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안 되겠다고 하자, 협의회은 물론 많은 개별 전문대학들이 대대적으로 로비에 나섰다. 그리곤 당.정.관에 접근하여 전방위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자 국회 교육위에서도 여야 없이 많은 의원들이 내게 “저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그 이름 두자 빼줘 사기를 올려주면 좋지, 작은 일에 왜 그리 까다롭게 구냐”고 나를 몰아 세웠다.

 

  나는 전문대학은 전문 중견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대학인데, 그 핵심개념인 ‘전문’을 빼면 어떻게 되느냐는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 ‘두자’가 빠지면, 4년제 일반대학교와 구별도 어려울뿐더러, 그렇게 해서 잠시 눈속임한다고 본질이 바뀌냐고 되물었다. 당시 나는 전문대학 육성을 위해 새로운 정책적 구상을 많이 하고 있었기에, 그 청사진을 내 보이며 전문대학 측의 마음을 달래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 효과가 없었다. 경악할 일은, 그 일을 주도하던 몇몇 전문대학 관계자들은 아예 대놓고 “ 교육부에서 앞으로 아무 지원을 안 해도 좋습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명칭만 바꿔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장사바닥에서도 하기 어려운 얘기를 거침없이 내뱉았다.

 

  나는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제기될 때 마다, “전문대학이 제 이름을 그대로 견지하면서 쇄신노력을 해야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있고, 사회적 편견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전문대학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이 길은 바른 길이 아닙니다” 라며 ”어떤 경우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그나마 든든하게 느껐던  일은  평판이 좋은 몇몇 모범적 전문대학들은 명칭변경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변경 압력이 워낙 거셌던 탓에 그들이 나서서 반대 입장을 펼치지는 않았으나, 내게 사적으로 ”저희들은 어떠한 경우도 ‘전문’이라는 두 글자를 빼지 않을 작정입니다. 전문대학 육성이 저희들의 꿈이고 목표인데, 어떻게 그 꿈을 뒤로 숨기나요“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차 주변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 내 입장에 동조하던 국회의원들도  “장관, 고집이 너무 세신 것 같아요. 세상 좋은 게 좋지, 함께 사는 세상인데 혼자만 반대하시면 되나요”라고 타박을 하기 시작했다. 명분상 당연히 나를 지지할 것으로 믿었던 언론도 입을 다물었고, 교육부 고위관료들도 이 쟁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회피했다.

 

  결국, 나는 혼자 남았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했다. 극도의 외로움이 엄습했다. 그럴수록 나는 오기가 생겨, 그 얘기가 나오면, “아니 껍데기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나요”라고 대들었다.

 

                                                      II.

  1997년 8월 나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 되어 전문대학 명칭에서 ‘전문’이 빠졌다. 모든 게 조용하게 이루어졌고, 언론도 따로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나만 분에 못 이겨 며칠 밤을 뒤척였다.

그 후, 세월이 얼마 지났다. 그러던 중, 전문대학 학장들이, 학장 명칭을 총장으로, 그리고 대학으로 끝나는 전문대학 명칭을 대학교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내가 당초에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첫 단추를 잘못 바꿔 끼니 그에 맞춰 줄줄이 다시 끼는 것이다. 아직 명칭도 바뀌지 않았는데, 어떤 전문대학 학장은 뻐젓이 자신의 명함에 총장으로 새겨 가지고 다닌다는 예기도 들렸다.

 

  얼마 후 결국 그들이 겨냥했던 모든 일을 이루었다. 대학 이름에 전문이 빠지고, 학장이 총장이 되었는가 하면,  대학명칭에 ‘교’가 덧붙여졌다. 이제 대학 이름만 보아서는 2, 3년제 전문대학인지, 4년제 일반 대학교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양자를 같은 포장지로 쌓은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별다른 이의 제기나 저항 없이 조용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대로 받아 들였다. 내 상식으로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비상식적 처사인데, 그냥 물흐르 듯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내 눈에는 껍데기가 본질에 이긴 것으로 , 비상식이 상식을 압도한 것으로 보였다.

 

                                           II.

   전문대학의 이름 바꾸기는 한 예에 불과하다. 껍데기를 바꿔 끼어 본질을 호도하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수없이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런 가운데, 온 사회가 지나치게 ‘껍데기’와 ‘겉보기’를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눈가림'과 '눈속임'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마치 당연한 듯 용인되고 있다. 요즈음 성형수술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온통 껍데기로 뒤덮이고 있다.

 

  내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은, 이러한 비상식적인 일들이 간단없이 진행되는 데, 이에 대해 우리 사회에 아무런 사회적 이의 제기나 비판적 논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의분(義憤)이 고갈된 사회’다. 선거나 정치와 연관해서는, 진영논리에 입각한 편향된 분노가 분수처럼 치솟고 애증이 무섭게 교차하면서, 정작 우리의 구제적 삶의 과정에서 상식적인 한 마디가 필요할 때는 모두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 정의로운 분노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이런 세태를 보면서, 우리 나이 이른바 '4, 19 세대'의 심금을 크게 울렸던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를 되새겨 본다.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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