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나는 약 2년 전에 <인생 3모작>(앞 글 ‘스웨덴으로부터의 화답’ 참조)를 제안한 바 있다. 첫 번째 일터에서 한 30년 열심히 일하고 50대 중반에 이르면 자신이 평소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 혹은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일을 찾아 70세까지 일 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 시골로 못자리를 옮겨 조용히 텃밭이나 가꾸며 ‘자연 회귀’, ‘자아 찾기’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도 곁들였다. 그러면서 <인생 3모작>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사회의 총체적 생산력을 높이고, 아울러 개인의 행복도도 제고하는데 필요한 삶의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평생학습’ 내지 ‘학습복지’의 개념이 깊게 깔려 있음을 내 비쳤다. 이에 대해 주위의 몇몇 가까운 이들이 관심을 표명했다. 그 중 한 제자와의 대화를 옮긴다.

 

                             II.

A군: 저도 선생님처럼 사회과학 전공의 대학교수인데, 제 생애주기나 인생경로는 보통사람과 다르잖습니까? 우선 교육기간이 일반인 보다 훨신 길죠. 그래서 30대 중반 넘어 겨우 교수가 됐고, 그나마 정년퇴직이 65세 까지라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는데, 학교를 옮긴다면 몰라도 교수라는 못자리를 어떻게 바꿉니까. 따져 보니 <인생 3모작>은 제겐 별로 해당이 안 되는 얘기 같습니다.

나: 아니네. 자네에게도 해당이 된다고 생각하네. 교수는 학인(學人)이고 공부하는 일은 평생의 업인데, 구태여 직업을 바꾸라는 얘기는 아니네. 대신에 공부의 내용과 접근방식을 바꾸게. 그러면 되네.

 

A군: 아니 무얼 어떻게 바꾸라는 말씀입니까.

나: 자네는 미국에서 전공분야를 익히고 경험주의적 방법론 내지 계량적 방법을 많이 공부하고 귀국하지 않았나. 그래서 그것을 바탕으로 여태껏 연구생활을 잘 해 왔지. 그런데 이제 자네도 50대에 들어섰으니, 그간 쌓은 내공을 바탕으로 서서히 전공영역도 넓히고 방법론도 점차 질적 방법론으로 옮겨 가는 게 어떨까 싶네. 젊었을 때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좁은 전공영역 안에서 학문적 엄격성을 중시하며, 실증적, 계량적 방법론에 치중하고 논리. 분석의 틀을 정교화 하는데 주력하네. 그러나 중년을 넘어서면 서서히 세상이 정해 준 학문의 경계를 넘어 인접학문과 폭 넓게 접촉하면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질적 연구로 큰 방향을 바꾸는 것을 권장하고 싶네. 실증분석에서 질적 연구로, 기능주의에서 본질 캐기로의 전이(轉移)가 그것이네. 나는 그것을 학문세계에서 두 번째 못자리 이동이라고 보네.

 

A군: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이미 제가 실증적 분석에 인이 박혀 있고, 그것이 편한데요.

나: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 그렇지만 실증적 연구의 한계를 자네도 알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 질적 연구도 실증적 연구의 단계를 거쳐야 그 기반이 견고한 거네. 그러니 자네는 이미 바탕이 제대로 세워진 것이네. 지금부터라도 거기에 덧붙여서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 책을 많이 보고, 글로벌한 쟁점이나 인류의 장래, 그리고 우리 사회가 붙안고 씨름하는 갖가지 난제(難題)룰 가지고 깊게 고민하는 연습을 하게나. 거기에는 보다 넓게, 깊게, 그리고 유연하게 사고하는 노력이 필요할 걸세. 아울러 인접학문의 학문적 성과를 폭넓게 섭렵하고, 인접학문과의 융. 복합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게나.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얻어진 지적 통찰력과 비판적 안목이 앞으로 자네를 자연스럽게 질적 연구로 인도할 걸 세.

생각해 보게나. 명색이 사회과학자인데, 늙어서 까지 통계분석이나 가설검증, 그리고 기능주의적 잣대에만 매달려서야 되겠나. 이젠 자신의 학자적 경륜과 사상이 통째로 녹아있는 질적 논변이나 영혼이 담긴 담론 쪽으로 서서히 못자리를 옮겨 보게나. 그러면 학문적으로도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고, 개인의 행복도도 더 높아질 걸세.

 

A군: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두 번째 못자리로의 이동이 수월하셨습니까?

나: 글쎄, 내 경우는 원래 공부 바탕이나 지적 구조가 두 번째 못자리에 가까웠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두 번째 못자리로 옮겨 간 것 같네. 그러나 내공이 약해서 그냥 긁적거리는 수준이지. 시늉만 한다는 얘기네. 여하튼 내가 그간 밥 먹은 체계에 의하면 행정학이 전공이지만, 50대 이후 공부하는 체계로 보자면, 행정학, 정치학, 정치사회학, 정치경제, 사회복지 중 어느 것일 수도 있고, 이들 전부일 수도 있지. 그 때문에 요즈음 내 서가에는 행정학 책, 특히 그 분야의 새 지식이나 기능적 흐름을 담은 책은 이제 거의 없네. 남은 것은 오히려 역사, 철학 책이 주류를 이루네. 젊어서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조(潮)와 기능적 효용성에 민감했는데, 이제 그 보다는 고전에 끌리고 본질적 사유에 더 관심을 쏟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흐름은 별스러운 게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라고 생각하네. 자네도 나이가 들으면 더 그렇게 느낄 걸세.

 

A군: 그럼 학자에게 세 번째 못자리는 무엇인가요?

나: 세 번째 단계는 아예 책을 덮고 얘기하는 게 아닐까 하네. 그동안 눈이 진물이 나도록 책을 읽었으니, 이제 책을 덮어 버리고 머리에 떠오르는 영상과 생각을 그냥 적어 보는 게 아닐까. 뇌리를 스치는 사유의 조각들, 그 섬광(閃光)들이 실은 수면위에 떠도는 한낮 부초(浮草)가 아니라, 그간 자신의 학자적 고뇌, 학인으로서의 삶과 사상을 여과한 정화(精華)라고 생각하네. 80 너머 까지 일일이 각주(脚註) 달아 가며 논문쓰기 보다 후학들이나 동시대인들에게 영감이나 통찰력을 불어 넣거나 혹은 큰 방향을 제시하는, 아니면 새로운 발상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에세이나 영탄조(詠嘆調)의 읊조림 같은 것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네. 일생 소설만 쓰시던 박경리 선생이 말년에 시작(詩作)을 하셨는데 대체로 그런 경지가 아닐까 싶네.

 

A군: 그럼 선생님은 지금 세 번째 못자리에 계신건가요?

나: 아니네. 나는 아직도 두 번째 못자리에서 헤매고 있다는 느낌이네. 세 번째 못자리에 진입해 보려고 미리 대부분의 책들을 여기 저기 주었고, 남은 것은 서울에 두고 이곳으로 몸만 왔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직도 책이 가까이에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네. 그래서 서울 갈 때면 그 때 그 때 필요한 책을 한 묶음씩 챙겨 오곤 하지. 학자로서도 아직 세 번째 단계에 들기에는 경륜이 부족하고, 생각도 여물지 않아 그 모양일세. 나이는 세 번째 단계에 진입해 있지만, 공부는 두 번째 단계에서 표류하고 있는 셈이지. 두 번째 단계에서 아직 내가 할 일이 있다는 미련과 집착이 남아있고, 다음 단계로 진입할 준비가 덜 된 것도 그 이유일 걸세. 그러나 한편으로 계속 열심히 세 번째 단계로의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네.

 

A군: 선생님은 두 번째 못자리 나이에 두 번 장관을 하셨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나: 첫 번째 못자리에서 국정(國政)에 관해 익히고 축적한 지식과 노하우를  실제 정책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질적 연구를 지향하는 내 두 번 째 못자리의 사유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심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네. 그러나 학자로서의 내 생애 차원에서 볼 때, 3년 미만의 그 시기는 하나의 에피소드이지 내 삶의 본류(本流)는 아니네.

 

A군: 선생님이 특히 지적, 예술적 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노후 시골 생활 내지 자연회귀를 권하셨는데, 그 점을 부연해 주시지요.

나: 지식인이나 예술인에게는 무엇보다 영감과 상상력, 그리고 자연스럽게 움트는 내면의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자연이 바로 그것을 선사하는 것 보물창고가 아닐까. 자연의 천연(天然)이 아닌가. 만물의 원본(原本)이 아닌가. 그러니 가공과 인공의 세상인 도시에서 모방과 학습으로 얻어 들이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네. 사람은 자연과의 대화에서 <진짜 세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고, 거기서 얻는 감동은 참된 지식과 진정한 아름다음을 잉태한다고 생각하네.

 

A군: 그래도 시골에서 외로움, 고독감을 떨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늙마에 꼭 그렇게 살아야 할까요?

나: 요사이 ‘고독력’(孤獨力)이라는 말이 유행이던데. 아마 고독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인 것 같은데, 어차피 인간은 고독하게 죽어가는 존재가 아닌가. 미리 얼마간 고독력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네.

그러나 물론 나는 그런 차원에서 하는 말은 아니네. 그냥 내 경험에 비추어 권하는 것이지. 그게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기에 시골생활을 누구에게나 권하지는 않네. 내 경우 따로 명상이나 선(禪)을 하지 않네. 그래도 자연 속에서의 존재만으로도 자주 충일된 느낌, 완전에 다가가는 즐거움을 얻네. 그것이 <군중 속의 고독>에 젖은 도시 생활보다는 사람을 훨씬 덜 고독하게 만드네. 그래서 권해 보는 것이네.

 

A군: <인생 3모작>을 상황에 따라 재해석 내지 변용하시는 게 재미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이 정형화된 ‘포뮬러’(formula)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는 하나의 유연한 준거틀이네요.

나: 잘 보았네. 유연하게 생각해야 되네. 어떤 이는 두 번째 못자리에 50세에 진입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60세 넘어 시작할 수 있다고 보내. 그러나 일평생 젊었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첫 번째 일자리를 고수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네. 일자리를 옮기지 않고, 같은 일터 혹은 직군(職群)에 머물면서, 일의 내용이나 일의 방식에서 새 길을 찾거나 질적 쇄신을 꾀한다면 못자리 이전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내가 첫 번째 일자리는 경성(硬性)으로, 그리고 두 번째 일자리는 연성(軟性)으로 상정하고 있으나, 연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쉽고 수월한 일을 뜻하지는 않네. 두 번째 못자리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이나 진정 보람되다고 생각하는 일이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생계를 우선시하는 첫 못자리 보다 더 전념하거나  헌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때로는 벤처 사업의 경우처럼 더 쇄신적, 모험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네.

  70세 넘어 낙향하라는 얘기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보네. 서울 한가운데 살면서도 세 번째 못자리를 실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네. 동양 고전에 나오는 ‘시은’(市隱)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하네. 시중에 살면서도 세속에 얼마간 거리를 두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정신적으로 자연인이 되는 경우가 그것이네. 도시 한가운데서 자아 찾기에 성공한다면 그것도 분명 세 번째 못자리가 아닐까.

  그러니 <인생 3모작>의 가장 큰 특색은, 사람의 생애주기를 자연의 순리대로 재구성했다는 것과 평생학습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체력은 약해지겠지만 경륜이 쌓이고 지혜가 는다고 보네. 또 젊었을 때는 살기에 급급해서 물질과 성취에 온 정성을 다하지만, 나이가 들면 차츰 자신의 당초의 꿈, 보람, 마음의 행복, 자아 찾기에 더 관심을 쏟게 되네. 이런 생애주기에 따른 인간의 자연적 성향의 추이를 세계의 못자리로 옮겨 본 걸세. 따라서 <인생 3모작>은 ‘자연적 삶의 양식’, 바로 그것이네.

  그리고 못자리를 옮기는 과정이 물 흐르듯 진행되고, 그것이 사회적 생산성과 개인의 행복과 성공적으로 연계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학습이 필수적이네. 따라서 <인생 3모작>의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보다 ‘학습복지’(learnfare)에 눈을 떠야 한다고 생각하네.

 

A군: 결국 앞으로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려면, ‘평생 일하고, 공부하라’는 말씀이네요.

나: 아니, 그 보다는 ‘평생 즐겁게 일하고, 즐겁게 공부하라’는 얘기지. 내가 자주 쓰는 말이지만 ‘놀이’와 ‘일’이 함께 할 때 인간은 가장 신나고 창조적이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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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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