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나는 손수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택시 운전기사가 백미러로 뒤를 보면서, “제가 손님이 무엇 하시는 분인가 한번 맞춰 볼까요?” 하며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넨 적이 몇 번 있었다. 내가, “그러세요” 라고 대답하면, 대뜸 “학교 선생님이시지요”라고 되묻는다. 내가 그렇다고 말하면, “얼굴에 그렇게 써 있어요”한다. 그럴 때면 내심 무척 기쁘다. 내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직업을 얼굴에 달고 다닌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내가 그간 헛살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닌가.

 

                               II.

  내가 대학 교단에 40년 가까이 섰으니, 가르친다는 일이 몸에 배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제2의 천성’이 되었는지, 늘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든다는 비판을 자주 듣는다. 누군가 초등학교 여선생님과 결혼을 했더니, “이렇게 하세요”, “그건 안돼요” 하며 남편을 초등학생처럼 다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내게도 그런 면모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넘겨도 될 일을 일일이 지적하고, 자주 시시비비를 가리려 드는 가하면, 걸핏하면 야단치고, 훈계 하려 든다는 것이다. 어린 손자들 작은 잘못도 낱낱이 바로 잡으려 하고, 공공장소에서 누가 새치기를 하면 여지없이 끌어내고, 친구들과 편하게 어울리다가도 그르다 싶으면 꼭 따지고 들어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전에 정부에 있을 때도, 국회의원들로부터 “장관, 우리가 학생인 줄 하세요. 왜 번번이 가르치려 들어요” 라는 볼멘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들이 엉뚱한 얘기를 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처도, “제발 집에서는 선생 노릇 안했으면 좋겠어”하는 불평을 한다. 아마도 가르치려 드는 것이 직업병 수준인 것 같다.

 

                                    III.

  제자들에게도 엄격한 편이다.  실은 그리 너그럽지 못한 편일게다. 그래서 오랜 만에 제자들과 함께 만나면, 학창시절에 내게 혼났던 일화를 마치 무용담처럼 다투어 얘기하곤 한다. 내 기억에서는 이미 사라 졌는데, 그 때 그 것들이 그들에게는 하나하나가 만만찮은 사건이었고, 더러는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샘솟는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춘다는데, 내가 생각해도 학생들에게 칭찬보다는 질책을 더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떤 제자는 “그 때, 선생님께 혼이 나고 제가 크게 반성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호된 훈육이 제 인생에 큰 가르침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면 무척이나 고마우면서 한편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쏟아버린 물인데.

  그런데 그 직업병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듯하다. 얼마 전에는 한 제자가 이메일로, “선생님 블로그에 가끔 들어가는데, 선생님 글에는 어디나 ‘교육적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아직도 가르치고 계세요. 그래서 글을 읽으며, 선생님 강의를 듣고 있는 느낌이에요”라는 것이다.

 

                                 III.

  교수를 하면서 아예 마음먹고 제자를 호되게 꾸짖는 때도 없지 않다. 제자의 생각이나 행동, 혹은 버릇을 고치기 위해 쓰는 충격요법이 그것이다.

 

  80년대 중반 학번인 A군은 착실한 대학원생이었다. 학자가 꿈인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성품도 착했고 공부도 잘했다. 그런데 화초처럼 자란 친구라 학교 밖의 사회문제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의 동료들은 당시 시국문제에 무척 예민했고, 이념논쟁이나 정치사회적 쟁점 토론을 많이 했는데 이 친구는 이러한 주위 분위기를 완전히 외면하고 전공 공부, 그것도 지극히 기능적인 공부에만 매달렸다. 실은 나도 당시 학부는 물론, 대학원까지 지나치게 정치화, 이념화 되는 것을 우려했던 입장이었는데, 이 친구의 경우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아예 교실 밖의 사회적 흐름에 완전히 담을 쌓고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작심하고 A군을 내 연구실로 불렀다. 그리고 한국사회와 연관된 여러 현안 문제들, 그리고 이념적, 정치경제적 쟁점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물었다. 놀랍게도 그는 그런 살아있는 현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었다. 그러니 자신의 고유한 의견이 있을 리 없었다. 내가 묻는 말에 대해, 고작 “모르겠는 데요”, “워낙 관심이 없어서요”가 그의 대답의 전부였다.

  그의 대답을 듣다가 나는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크게 혼을 냈다. “도대체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 “사회과학을 전공한다는 놈이 우리 사회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도대체 너는 무슨 공부를 했느냐”, “ ‘죽은 공부’를 하는 놈은 우리 대학원에 있을 필요가 없다” 등 심한 질책을 하며, 윽박질렀다. 그는 무척 놀란 기색이었고, 급기야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내가 너무 나갔다 싶어, 뒤늦게 그를 달래며, 내 진의가 무엇인가를 설명했다.

A군은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유학을 갔다. 그는 현재 미국 중부의 어느 주립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내가 정년퇴임하기 직전, A군이 마침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내 연구실을 찾아 왔다. 그리고 나와 옛날 얘기를 나눴다. 그때 A군은 난생 처음 윗사람에게서 호되게 질책을 받았고, 그 후 며칠 동안은 요새말로 완전히 ‘맨붕’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살아있는 사회과학’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그 후 그 길로 매진해 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 듣기 좋으라고 한 얘기일 수도 있으나, 내 면전에서나마 그렇게 얘기하는 그가 고마웠다.

 

  B군은 경상남도 끝자락 바닷가 출신인데, 사투리가 무척 심했다. 학부 때부터 그랬는데 대학원에 와서까지 낳아진 게 없었다. 내가 한, 두 번 지적을 했는데도 별로 개선되는 기색이 없었다. 어떤 때는 이 친구가 아예 ‘사투리 지킴이’로 나섰나 싶었다. 이 친구 역시 대학교수를 지망하는데, 무척 걱정이 되었다. 한번은 그가 대학원 내 수업에서 발표를 했다. 그 때 나는 작심을 하고, 여러 친구들 앞에서 의도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자네 열심히 발표를 했는데, 솔직히 나는 심한 사투리 때문에 반도 못 알아 들었네. 서로 지적 소통이 되지 않았다는 얘길세. 자네가 앞으로 고향에서 장사를 하고 산다면 내가 더 말을 않겠네. 그런데 앞으로 꼭 대학교수가 되겠다면서, 사투리 교정에 힘을 쓰지 않으면, 어쩌자는 건가. 그건 학생들에게 못할 짓이 아닌가. 앞으로 발표 때마다 내가 지켜보겠네. 고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 터이니 그리 알게나”.

그후, 그도 교수가 되어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재작년 어느 작은 학술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했는데, 사투리가 크게 개선되어 있었다. 이제 그의 엷은 사투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얼마간 매력 포인트가 되어 있었다. 토론이 끝난 후, 그가 먼저 내게 다가와서, “선생님 많이 나아졌죠.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난 후, 대오각성(大悟覺醒), 와심상담(臥薪嘗膽)한 결과입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크게 칭찬하며, 그를 고무한 것은 물론이다.

 

  위의 두 경우는, 내가 마음먹고 제자들을 모질게 다뤄서 얼마간 성과를 거둔 경우이다. 그런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분명, 내가 제자들을 지나치게 질책해서 마음에 상처를 안겨 준 경우가 더 많았을 것 같다. 자괴하지 않을 수 없다.

 

                                       IV.

  내 서제에는 서예가 청남(菁南) 오제봉(吳濟峰) 선생이 써주신 <處無爲行 學不言敎> 라는 액자가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씀인데, ‘무위(無爲)의 삶’과 ‘말없는 가르침’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매일 한, 두 번 그 족으로 눈이 가고,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글귀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내가 오랫동안 그것을 건성으로 처다 보았던 게 분명하다. 선생이랍시고, 자기 성찰에는 게을리 하면서, 매사에 심판관 노릇을 자처하고, 제자들 야단만 쳤으니, 무위의 삶은 고사하고 말없는 가르침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어 온 셈이다. 크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말없는 가르침'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앞으로도 아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계속 내 방식대로 가르치려 들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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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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