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전적 에세이

<신동아>와 나 -1980년대의 <신동아>를 회상하며-

2012. 10. 30. by 현강

                                      I.

  나와 <신동아>의 인연을 각별하다. 우선 나는 아마도 <신동아>에 글을 가장 많이 쓴 필자의 한 사람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데 도움을 주려고 며칠 전 <신동아>가 내가 그 동안 쓴 글의 목록을 보내왔다. 살펴보니 1976년 이래 <신동아>에 최근까지 40편의 글을 썼다. 그런데 그 중 23편이 한국 정치가 오랜 권위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향해 숨 가쁘게 질주하던 1980년대에 집중되어 있었고, 특히 민주화의 불꽃이 가장 높게 치솟았던 1985년 초부터 1987년 6월 항쟁 직전까지 9편의 글을 썼다. 글은 대부분 신군부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민주화의 당위와 그 나아 갈 길을 설파하는 정치평론이었는데, 글 목록 속에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내가 느꼈던 분노와 절박감, 열망과 감동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1980년대는 내 40대와 그대로 겹치는 시기이다. 때문에 나는 그 리스트를 보며 1980년대의 <신동아> 속에서 가슴 뜨거웠던 내 40대의 초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장기간 <신동아>의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편집회의에서는 그 시대에 걸 맞는 공공의제를 찾아내고, 그것을 어떻게 다를 것인가를 열띠게 논의했다. 가끔 주요한 편집기획에도 참여했던 기억이다. 편집위원 중에 나 보다 20년 연상인 소설가 <이병주> 선생이 계셨는데, 가끔 달관한 경지의 말씀을 툭툭 던지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1991년, <신동아>가 환갑이 되는 60년을 기념하여 프레스센터에서 4번의 연속기획 토론을 가졌는데 공전의 성황을 이뤘다. 첫 번째 주제인 “제 3의 길은 있는가”에서 내가 사회를 보았고, 세 번째 주제 “복지국가의 길‘에서 내가 발제를 했던 기억이다. 지금부터 21년 전에 <신동아>가 복지국가 담론을 펼쳤으니, 당시 <신동아>는 분명 시대를 앞서가고 있었다.

 

                              II.

  1931년에 창간한 <신동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지이다.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폐간되는 큰 고난을 겪었고, 암울했던 권위주의 시절 민주화에 앞장 서는 등 우리 민족과 영욕을 같이 했다. <신동아>는 연륜에서 비롯되는 서지적 가치를 넘어 권위 있는 시대의 기록으로 한국 언론사의 기념비적 가치를 지닌다. <신동아>가 한창 낙양의 지가를 올렸던 1980년대 중반에는 40만부를 넘는 폭발적인 발매부수를 올렸다.

내 뇌리에 가장 인상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1980년대의 <신동아>는 지식인 계층이 읽는 지성지와 대중이 읽는 종합지의 중간 정도의 성격을 지녔다. 얼마간의 상업성을 추구하고 있었으나, 사회와 시대에 대한 ‘의제설정’(agenda-setting) 기능을 성실히 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다. 시대적 고뇌를 같이 하며, 우리 사회가 무엇을 아파하는지,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성찰적 자세를 잃지 않았다. 당시 편집위원들도 당대를 향하여 비판적, 창조적 지성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불타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진입한 후, <신동아>는 지성지의 성격이 크게 약화되고, 교양 있는 일반 대중이 읽는 종합지로 변모했다. 그러면서 지성지의 핵심인 의제설정 기능을 잃었다. 영국의 <에코노미스트>나 프랑스의 <렉스프레스>도 시대와 더불어 지성지에서 종합지로 바뀌었으나, 아직도 의제설정 기능이 엄연히 살아 있는 것과 극명하게 비교가 된다. 그래서 내 마음이 아프다.

 

                                   III.

  시대와 매체상황이 크게 달라진 오늘 <아! 옛날이여>를 외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고언이 허락된다면, <신동아>가 현재의 백화점식 편집에서 얼마간 탈피해서, 우리 시대의 관심 주제를 한 발 앞서 제시하고,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함께 토론하는 열린 광장의 구실을 해 줄 것을 감히 청하고 싶다. <신동아>가 너무 무겁지 않게, 흥미를 돋우면서,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방식으로 의제 설정 기능을 왕년의 반쯤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얘기다. 오늘 이 땅의 주요 언론매체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어 실제로 이런 공간이 크게 비어있다. 때문에 <신동아>가 이 빈틈을 슬기롭게 파고든다면 그러한 시도가 무모하지 않으리라 생각이다.

 

  오랜 연륜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과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는 <신동아>가 창간 81년인 올해를 의미있는 변화와 발전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동아 2012년 11월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