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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지난 선거, 그리고 그 이후

2012. 4. 23. by 현강

            I.

    재작년 블로그를 개설 할 때, 내 처는 정치와 교육 얘기는 쓰지 말라고 내게 조언했다. 나는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늘그막에 나라 정치에 대해 중언부언하는 것도 볼썽사납거니와, 깊이 관여했던 교육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점잖아 보이지 않을 듯싶어서였다. 그런데 요즈음 생각이 바뀌고 있다. 어차피 정치와 교육이 내 전공이자 관심영역인데, 나이가 들고 떨어져 산다고 이 영역과 담을 쌓고 딴청을 하는 것도 그리 진솔한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이들 주제에 관한 내 생각을 전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II.

     요사이 4. 11 총선이 끝나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예상외로 선전하였고, 민주통합당은 방향을 못 잡아 패배를 자초했다. 민주당의 패배는 무엇보다 당의 정체성과 신뢰의 위기가 깊어지면서 비롯되었는데, 민주당은 아직도 이에 대해 자기성찰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이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새누리당은 좌클릭으로 성공했고, 민주당은 좌클릭으로 실패했다. 왜냐. 새누리당의 좌클릭은 적절했고, 그 방향이 중도를 향했는데 반해, 민주당의 좌클릭은 과도했고, 극단을 향했기 때문이다. 번지수 모르는 좌편향에 민주당은 중도성향 시민의 우려와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보수 세력을 강고하게 결집시켰다.

새누리당은 새 조타수 박근혜 아래서 자잘한 실수는 있었으나, 큰 방향을 바로 잡았다. 이명박 정부와 분명히 선을 그어 정권 심판론의 예봉을 둔화시키면서, 경제민주화, 복지, 대북 유연화 등을 표방하며 좌클릭을 감행, 중도층의 표심을 잡았다. 신뢰와 미래를 얘기한 것도 그럴듯해 보였다. 골수 보수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마땅치 않았으나, 양극화 정국에서 그들도 새누리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패착의 연속이었다. 잘못된 흐름은 한명숙 대표의 취임연설에서부터 시작됐다. ‘1%대 99%’라는 극단적 상황연출은 <반 월가 시위>의 구호로는 그럴듯할지 몰라도 정권 창출을 바라는 대 야당의 미래비전으로는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이고, 무책임했다. 지인 한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 한 대표의 발언이 문성근의 ‘백만 민란’과 오버랩 되어 “섬뜩”했다고 술회했다. 한미 FTA의 전면거부,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 등도 도가 지나쳤고, 그 속내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도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 내에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반체제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민주당이 통진당과의 야권연대 공동선언에서 “대선이후 새롭게 펼쳐질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지향과 가치를 함께 한다”고 천명할 때, 다수 국민의 우려는 깊어졌다. 민주당이 극단적 좌편향의 통진당에 코가 꿰이면서, 제 모습을 잃었다. 공동선언 자리에 함께했던 몇몇 종북인사들의 면면도 국민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했다. 그러면서 걱정했다. 앞으로 이들이 함께 추구할 수순이 무엇일까. 혹시 ‘한미동맹파기, 재벌해체, 국가보안법폐지, 미군철수’가 아닐까하고.

 

    민주통합당은 통진당과의 연대를 통하여, 정체성의 위기, 신뢰성의 위기를 불러왔고, 결국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다. 대신 통진당은 민주당과의 제휴를 통하여 정치적 명분을 높였고 역사상 유례없는 약진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당이 아직도 본질을 보지 않고, 총선의 패인을 지엽(枝葉)에서 찾거나 정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심지어는 ‘나꼼수를 안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앞으로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서는 건강하고 믿음직한, 그러면서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는 중도개혁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III.

     서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체제를 보면, 영국과 같은 양당제도 있지만, 대체로 ‘온건 다당체제’이다. 어느 당도 의석의 과반수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정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상례이다. 간혹 큰 정당 둘, 대체로 중도 좌파(사민당)와 중도 우파(기민당) 정당이 제휴하여 이른바 대연정(大聯政)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주요 정당들이 저마다 이념적 지향이나 정책에 차이가 있으나 체제의 근본적 문제, 즉 다원적 민주주의나 자유시장경제에 대해서는 정치적 합의를 하고 있고, 그 때문에 정치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진다.

      

     체제의 근본적인 문제에 동의하지 않는 극좌나 극우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매우 낮다. 국민들은 이미 이들 반체제정당들을 향해 철저하게 이른바 ‘방역선’(防疫線, cordon sanitaire)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서독의 사민당은 이미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맑시즘과 결별했고, 한때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큰 힘을 발휘하던 공산당도 1970년대 이후 이른바 유로 코뮤니즘으로 변신하면서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끝내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이제 유럽의 주요 정당들은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볼 때, 중도좌파, 중도, 중도우파 권역 안에 포진하고 있으며, 이들 정당은 이념과 정책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대결을 피하고 정치적 타협과 합의를 통하여 상생정치를 지향한다. 따라서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은 연립정부 구성에서 극우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포퓰리스트 정당이나 아직도 사회주의혁명을 꿈꾸는 시대착오적인 극좌 세력은 당연히 배제한다. 독일의 사민당(SPD)이 기민당(CDU)하고는 대연정을 하여도, 사민당의 극좌파탈당파와 구동독의 공산당이 주축이 되어 만든 좌파당 (Die Linke)과는 연립정부 구성을 거부하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그들은 이렇듯 정치적 양극화와 원심화를 지양하고, ‘구심적(求心的)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III.

 

        한국 정치와 연관하여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될 사항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최근 여야 간의 이념적 양극화가 점점 더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이듯이 실제 다수 국민의 정치적 성향은 폭 넓게 중도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한국정치의 현주소는 여야가 정치시민들의 중도적인 정치적 성향을 양극으로 끌어당기는 형국이라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에는 편향적 언론과 일부 지식인의 책임도 만만치 않다. 합리적 정치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선거 때면 마땅한 선택지(選擇肢)가 없어,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차악(次惡)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는 정치적 입지를 중도로 옮겨야 하며, 극단적 대결 보다 타협과 합의를 지향하는 상생정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여야의 주요 정치세력은 체제의 근본적 가치에 대해 정치적으로 합의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반체제 세력에 대해서는 국민과 힘을 합해 공동의 방역선을 쳐야 마땅하다. 우리가 지켜야 할 기본적 가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다원적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질서, 인권존중 등이다. 물론 이 개념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지향한다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매사에 북한제체를 추종하는 세력과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종북(從北)과 북한과의 화해, 협력, 교류를 주장하는 것과는 엄연히 구별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비단 주요 정당뿐만 아니라 언론, 시민단체, 논객들도 합의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주요 정당은 언어적 극단주의(verbal radicalism)을 피하고 실현가능한 정책을 제시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실속 없는 언어적 극단주의는 갈등과 대결을 낳고, 불신과 증오를 증폭시킨다. 여야가 과격하고 추상적인 정치적 상징이나 개념을 남발하고 실제로 실현가능한 정책개발에는 지극히 게으른 현실이다. 복지담론의 경우도 그렇다. 사실상 모든 선진국의 복지정책은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간의 선택이 아니라, 양자의 사려 깊은 혼합정책이다. 다만 어떤 정책혼합(policy mix)이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고, 보다 실현가능한 것이냐에 대한 합리적 토론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여야가 실질 토론은 제쳐놓고 이념논쟁만 일삼고 있다.

 

 

           IV.

    위의 논의는 민주통합당의 진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야당은 민주주의의 희망이다. 민주당은 이제 좌클릭을 멈추고 개혁적 중도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하여 반체제적 정치세력과의 제휴는 삼가고, 언어적 극단주의에서 벗어나 실현가능한 정책개발에 앞장서야 한다. 언필칭 진보와 선명성을 앞세우거나, 지나치게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회, 경제 정책은 중도좌파 수준으로 안보정책은 중도 수준으로 재조율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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