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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머릿속 자명종

2012. 6. 5. by 현강

                        I.

   나는 스무 살 무렵, 일 년 이상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런데 한번 그 고비를 극복한 뒤에는 잠자는 데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잠을 잘 자는 것은 내 인생에서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눕기만 하면 쉽게 잠이 들고, 대체로 숙면을 한다. 그리고 깨고 싶을 때 눈을 뜬다. 그런가 하면 잠이 부족하면, 틈새 시간에 잠시 눈을 붙여 어렵지 않게 모자란 잠을 벌충한다.

 

   그런데 수면 습관과 관련해, 나는 한 가지 재주라면 재주, 능력이라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잠자리에 들면서 일어날 시간을 미리 머리에 입력하면 한 치의 어김도 없이 그 시간에 눈을 뜬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명종이 따로 필요치 않다. 이러한 머리에 입력된 <모닝 콜>은 컴퓨터처럼 정확해서 내가 기억하는 한 20대 후반이후 부터 최근까지 한 번도 빗나간 일이 없다. 깨는 시간도 놀라울 정도로 엄밀해서 미리 설정했던 바로 그 시각, 정시에 거짓말처럼 눈을 뜬다. 초는 몰라도 분을 어기는 적도 절대 없다. 내가 <머릿속 자명종>을 네 시로 맞췄는데, 잠에서 깰 때 시계가 두 시를 가리키고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시계가 고장 난 것이다. 내가 잠 깬 시각은 분명 네 시 정각일 것이다. 또 실제로 그렇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가 “세 시에 깨야지”하고 정했다가, “네 시에 일어나도 괜찮겠는데”하고 머리에 이중 장치를 설정하면, 영락없이 네 시에 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쪽으로, 더 여유 있는 시간을 택한다는 것이다. 결혼 후 내 처는 내 이러한 기상천외(?)의 재주를 옆에서 목격하고, ‘소름이 끼쳤다’고 얘기한다.

 

                      II.

   내가 이러한 재주를 언제,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20대 후반 외국에서 유학할 때, 시간에 쫓기면서 공부하고 잠을 줄이려 애쓰다가 자연스레 습득한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한, 두 번 머리에 정한 바로 그 시각에 정확히 잠에서 깨자, 긴장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무심히 넘겼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머릿속의 자명종>이 반복해서 정확히 작동하다 보니 점차 자신이 생기고, 그것이 확신으로, 그리고 마침내 어김없는 삶의 정률(定律)로 내면화된 것 같다. 이 방면에 조예가 깊은 친구 말로는 ‘초보적 자기최면’ 수준으로 그리 대단한 일은 못 된다는 얘기한다.  믿거나 말거나다.

 

    돌이켜 보면, 이 재주라면 재주, 습성이라면 습성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살았던 내 지난 인생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되돌아보면 일과 연관해서 나는 항상 내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추구했고, 그 때문에 언제나 힘에 겨웠고 시간에 쫓겼다. 정 힘에 부치면, 나는 일을 줄이기보다 과감히 잠을 줄였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잠 예약제>를 체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학시절 이후 계속된 긴장 속에 삶이 이러한 생존전략을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닐까. 긴장 없이 정각(正刻)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이 <머릿속 자명종>의 덕을 꽤 보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비교적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 관리에 이로운 점이 많다. 내가 <새벽형> 인간으로 정착한 것도 아마 이 습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격동의 시대였던 1980년대에 주요 일간신문에 자주 정치칼럼을 썼다. 당시 대부분 주요 신문이 석간이어서 으레 아침 8시면 기자가 연구실에 와서 글을 받아가곤 했다. 말하자면 그 시간이 데드라인이었다. 나는 대체로 그 전날 밤, 글 주제만 머리에 정해 놓고, <머릿속 자명종>을 네 시에 맞춘 후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면 어김없이 네 시면 잠에서 깬다. 그러면 일곱 시까지 글을 마무리하고 간단히 아침을 든 후 연구실로 향했다. 네 시 기상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그 때문에 칼럼 집필에 한 번도 차질이 없었다. 정부 공직에 있을 때도 언제나 이른 새벽에 깨서 그날 준비를 했다. 요즈음 내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어김없이 맑은 정신으로 새벽에 쓴다.

 

                       III.

    6년 전 이곳 속초/고성으로 온 후, 나는 <머릿속 자명종>을 애써 활용하지 않는다. 이제 분초를 쫓기는 일도 없거니와 나 스스로 보다 자연의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정확하게는 이제 <머릿속 자명종>이 실제로 필요 없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모닝 콜>을 입력하지 않아도 새벽 네 시면 영락없이 잠에서 깬다. 늦게 자도 그 시간에는 눈이 번쩍 뜨인다. 말하자면 자동으로 새벽 네 시가 <평생모드>로 입력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속초/고성 이전 생활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자동장치는 이제 내게 아무런 긴장을 수반하지 않은 채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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