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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수면 이야기 몇 가지 더

2012. 6. 19. by 현강

                      I.

    지난 글에서 내 유일한 재주인 머릿속에 미리 입력한 시간에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머릿속 자명종' 얘기를 자랑처럼 늘어놓았다. 이왕 시작한 김에 오늘 내 수면 습관에 관련해 몇 가지 에피소드를 더 펼쳐 보려고 한다. 쓰려하니 마치 무용담을 떠버리는 것 같아 낯이 간지러우나,  거짓 없는 얘기이니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기 바란다. 특히 수면장애로 고생하는 분들의 깊은 양해를 구하다.

 

                     II.

    내 모습이 ‘후덕하게’ (?) 생겨서 잠이 많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잠이 적은 편이다. 20대 후반이후에는  대체로 5시간 내외의 수면시간을 유지하고 있다. 그 정도 자면 대체로 일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 바쁠 때는 수면시간을 조금 줄이고, 낮에 틈틈이 자는데, 내가 자주 애용했던 것이 차안에서의 단잠이다.

 

    30대 시절 우이동 그린파크 근처에 살았다. 아침에 연세대학교로 출근하자면 버스로 약 50분이 걸린다. 당시 나는 아침에 우이동 종점에서 빈 버스에 오르면, 무조건 오른쪽 제일 앞좌석, 그러니까 운전사와 나란히 위치한 버스 앞 창문 바로 뒷좌석으로 향한다. 내게는 그 자리가 만원버스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숙면할 수 있는 천혜의 자리이다. 그곳에 앉으면, 곧 <머릿속의 자명종>을 45분후로 작동하고, 편한 마음으로 깊은 잠에 빠진다. 내가 잠에서 깰 때는 대체로 버스가 연희동 로터리를 돌아 연희성당 옆을 지날 때쯤이다. 그러면 나는 단잠에서 깨어나 서서히 일어날 채비를 시작한다.

     그 당시, 나는 대학에서 <연세춘추> 주간을 맡고 있어 무척 바빴다. 게다가 매일 빠짐없이 한 시간 가까이 새벽산행을 강행했기 때문에 늘 잠이 부족했다. 그 모자란 수면을 출근시간 버스 쪽잠으로 거뜬히 보충한 것이다. 말하자면 내 수면시간은 <밤잠+버스 잠>으로 계산된다. 나는 코를 고는 좋지 않은 잠버릇이 있는데, 다행이 버스 안에서처럼 공공장소에서는 전혀 코를 골지 않고 얌전하게 잠을 잔다. 몸에 깊이 밴 습성도 차안에서는 신통하게 통제가 된다.

 

    정부에 있을 때도 격무에 시달려 항상 잠이 모자랐다. 그래서 짧은 이동 시간이면 어김없이 차 속에서 잠을 잤다. 가까이서 점심을 들고 청사로 돌아 올 때나, 청사에서 10분 남짓 거리인 청와대 회의에 갈 때도 차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 잠은 정말 꿀처럼 감미로웠다.

 

                         II.

    내가 장관으로 재직할 때, 실.국장들 간에는 ‘공포의 6시 40분’이라는 말이 오갔다고 한다. 장관이 이른 6시 40분이면 전화를 걸어 현안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그날 할 일을 지시하는 통에 새벽 단잠을 설쳐 생긴 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 짝이 없는 얘기인데, 새벽 4시에 깨어나는 나로서는 여명이 밝아 올 때면, 이미 해가 중천에 뜬 대낮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새벽에 꿀같은 단잠을 자는 사람들을 깨워 그런 무례를 저질렀던 것 같다.

    변명을 하자면 이러하다. 새벽에 일찍 깨어 그 날 할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다 보면, 그때그때 궁금한 일, 의논할 일도 적지 않고 불현듯 좋은 아이이어가 머리에 떠올라 한시라도 빨리 담당자와 생각을 나누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날의 뺵뺵한 일정을 살펴 보면, 해당 국장과 대화할 시간이 없을 게 뻔했다. 그래서 체면불구하고 불쑥 이른 시간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국장들은 처음에는 잠에 취해 전화를 받았으나, 얼마 지난 후 부터는 아예 새벽 일찍 깨어 장관 전화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정부에 있을 때, 나는 가능하면 본부 과장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관료제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간부들로서 맡은 분야에 관한 한 전국을 관장하는 실무 총책이기 때문에 이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이 잘 돌아가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현안으로 고심하는 주요 과장들에게는 언제든 주저 없이 장관실을 두드리라고 했고, 내 일정 때문에 그것이 어려우면, 주요 현안에 관해 이메일을 통해 수시로 보고, 문의, 협의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내 이메일은 24시간 작동하니, 한 밤중에라도 보고하라. 아무리 늦어도 내가 3시간 안에 답변,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수시로 이메일을 점검했다. 그런데 간혹 국회 회기 중이나, 주요 현안이 터졌을 때에는 한 밤중에도 연락이 오는 경우가 없지 않고,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빠른 대응을 했다. 이 때, 나의 이른바 <머릿속 자명종>이 그 효험을 발휘했다.

     장관직을 수행하는 기간은 엄청난 격무 때문에 평균 5시간 자기가 어려웠다. 대체로 밤 11시 넘어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에 잠을 깨는데, 그 때는 한밤중인 1시경 잠시 일어나곤 했다. 급한 현안이 있을 때는 자기 전, 잠에서 깬 후는 물론, 1시에 잠시 일어날 때도 어김없이 이메일 점검을 했다. 따라서 미리 공언한 <3시간 이내 장관 회신> 약속은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교육부에 “우리 장관은 잠을 안 자나봐”라는 소문이 돌았다.

 

 

                            III.

      나는 깨어날 시간을 미리 머리에 예약하는 재주와 더불어, 옅은 잠을 자면서 주변의 움직임을 크게 놓치지 않고 감지하는 재주라면 재주, 능력이라면 능력을 갖고 있다. 회의 도중 생각에 잠긴 시늉을 하며 슬며시 반(半)잠을 자는 경우가 그런 경우인데, 물론 점잖은 일은 못된다. 실제로 이런 경험은 다른 많은 이들도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별 재주 축에 낀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학에서도 이런 저런 회의가 많다 때로는 필요한 논의가 다 끝난 듯한데, 괜히 지엽적인 문제로 시간을 끌며 지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루하고 몸이 꼬인다. 그럴 때는 여지없이 조름이 찾아든다. 간혹 견디기 어려울 지경이 되면, 나는 서서히 눈을 감고 명상하듯 반 수면상태로 젖어 든다. 옅은 잠에 들면서, 의식의 반쯤은 열어 놓아 회의의 흐름을 크게 놓치지 않는다. 멀리 다른 이들이 논의하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아련히, 까마득하게 들린다. 그러다가 대수롭지 않은 논의라고 단정하면 나는 한 단계 더 깊은 잠으로 빠져 들어간다. 허나 긴장의 끈을 완전히 늦추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몽롱하게나마 주위의 흐름을 계속 감지한다.

     한번은 그렇게 쪽잠에 취해 있는데, 사회자가 “안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라고 나를 청하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띠고 나름대로 내 생각을 피력했다. 회의가 끝난 후, 평소에 친했던 사회자가 내게 다가와 

     “멀리서 보니 안 교수가 잠에 빠져있기에 혼내려고 마음먹고 급습했지. 그런데 잠든 게 아니라 그냥 눈을 감고 있었더군.”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간략하게 답했다.

     “ 자면서도 다 들려.”

 

     정부에 있을 때, 한번은 오후 늦은 시간에 실국장 회의를 주재했다. 피로가 겹쳐 잠이 쏟아졌다. 의견을 물으니 갑론을박 논란이 많았다. 나는 중론을 모으기 위해 모두 한마디 씩 의견을 피력하라고 청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새겨들었는데, 시간이 감에 따라 서서히 잠에 빠져 들었다. 허나 선잠을 자면서도 의식의 반쪽은 깨어 대충 발언의 큰 줄거리는 어렴풋이 따라 갔다. 얘기가 모두 끝날 무렵,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논의의 큰 흐름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렸다. 회의가 끝나자, 국장 한명이 내게 다가와 웃으며 “장관님, 주무신 게 아니셨어요”하고 물었다. 그러면서 회의 도중 내가 분명히 깊은 잠에 빠졌기에, 실국장들이 서로 옆구리를 찌르며 곧 펼쳐 질 흥미진진한 “씬” (실국장 얘기는 다 끝났는데 장관은 계속 잠만 자고 있는)에 모두가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깝게도 그 꿈이 무산되었다고 말하며, 되물었다.

     “장관님, 정말 주무셨어요. 아니면 깨어계셨어요”.

     내 대답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은 비몽사몽(非夢似夢)이었어요”.

 

                              IV.

     나는 젊었을 때부터 무척 코골이가 심했다. 위에서 쓴 대로 쉽게 잠이 들고 수면시간은 마음대로 조절하는데, 코 고는 습관은 좀처럼 개선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심하게 코를 골다가  갑자기 숨을 멈추고 한 동안 무호홉 상태로 들어가기 때문에  함께 자던 사람을 크게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 참 후에야 ‘후’하고 크게 내 쉬어, 옆 사람도 안도에 숨을 쉬게 하기가 다반사였다. 내 코고는 소리에 놀라 스스로 깬 일도 자주 있었다. 그러다 보니 코골이와 연관된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30대 초, 내가 한국외국어대학에 있을 때이다. 한국 정치학회 발표 때문에 부산에 갔다가 하루를 자게 되었다. 나보다 10년 연상인 같은 대학 정치학과의 M 교수님과 한 방을 썼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분은 코를 심하게 골기로 유명해서 ‘코골이 챔피언’이라는 별명이 있는 분이셨다. 잠자리에 들면서, M 교수님이 내게, 자신이 코를 심하게 고신 다고 말씀하시며, 내가 잠을 설칠 게 분명하다고 미리 양해를 구하셨다. 나는 황급히

   “아무 걱정 마십시오. 실은 저도 엄청나게 코를 곱니다" 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면서 속으로 코골이 끼리 만났으니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튼 날 아침, 내가 눈을 깨니 M 교수님이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이셨다. 내가 조심스럽게 안녕히 주무셨냐고 문안 인사를 드렸더니,

     “안녕치 못 하네. 밤새 한숨도 못 잤네. 코를 심하게 고는 건, 그렇다 치고, 세상에 자신도 코골이라고 얘기하다가, 그 말도 마무리 하지 않고 코를 골기 시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데 있나” 하며 역정을 내셨다.

     상경한 후, M 교수님이 말씀을 옮기셔서 만나는 분 마다 내게

    “아니 챔피언이 안 교수에게 한방 먹었다며”,

    “겨뤄 보지도 못하고 당했으니 부전 패라고 하던데”

     등 화제가 만발했다.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는 1년에 두 번, 교수연수라는 명목으로 1박 2일로 지방 나들이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975년에 내가 연세대로 직장을 옮긴 후, 두 번째로 연수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원로 교수 두, 세분에게만 독방이 배정되고, 나머지 교수들은 한 방에 둘씩 자던 때였는데, 행사를 주관하던 선배 교수님이 신참 교수인 내게 독방을 배정하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며, 방을 다시 배정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 분이 내게,

     “지난 번, 연수회 때, 안 교수와 한방을 썼던 모 교수가 밤을 꼬박 새웠다는 얘기네, 그 후 아무도 안 교수와는 한 방을 쓰기를 원하지 않네. 그냥 혼자 주무시게나”

하는 게 아닌가. 이후 나는 연수 때 마다 뜻하지 않게 ‘원로급’ 대우를 받았다.

 

     요즈음은 예전처럼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 아니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언젠가 신문에서 옆으로 누워 자면 코골이가 개선된다는 기사를 보고, 그대로 했더니 한결 나아졌다. 내처는 뇌성벽력(雷聲霹靂) 치듯 심하게 코를 골던 사람이 어린 아이처럼 얌전하게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늙어서 그러나 싶어 안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미 이력이 났으니 그냥 안심하고 예전처럼 코를 골라고 권한다. 그게 ‘나 답다’는 얘기다.

 

    코골이 일화도 이렇게 점차 옛 얘기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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