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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잡초와의 전쟁

2012. 7. 11. by 현강

                         I.

   작은 규모이지만 농사를 시작한 후 가장 큰 어려움이 잡초라는 희대의 난적(難敵)과의 싸움이다. 잡초가 제일 맹위를 떨치는 요즈음 여름 한철에는 적어도 하루 대여섯 시간은 잡초 뽑는데 시간을 보낸다. 오랜 가뭄 뒤에 비가 오면 반갑기 그지없으나, 비 온 후에 더 기승을 부릴 잡초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무겁다. 땡볕에 쭈그리고 앉아 잡초와 씨름하다 보면, 내가 이 짓을 하려고 이곳에 왔나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다. 그런데 2, 3일만 소홀히 해도 농토가 온통 잡초 천지이니 어쩔 수 없이 그들과의 힘겨루기가 일상사가 되었다.

 

                        II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잡초를 ‘아직 그 가치가 발견되지 않은 식물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잡초는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무 쓸모없는, 그러면서도 그 강인한 생명력과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자칫 농사를 통째로 망치게 하는 천하의 무뢰한임에 틀림없다. 초봄 언 땅을 헤집고 올라와 눈 깜짝할 사이에 농토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아예 제 놈이 주인행세를 하기가 일수이다. 따라서 잡초는 모든 농사꾼의 공적이며, 그 때문에 잡초를 효율적으로 방제하는 일이 농사의 기본이다.

 

  잡초제거에 골머리를 앓다가 많은 이들이 끝내는 제초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제초제는 약의 독성 때문에 흙속의 유익한 미생물까지 서서히 죽여 땅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에 삼가는 것이 옳다. 그 보다는 약 뿌린 후 잡초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무리지어 누렇게 고사하는 모습이 마치 전쟁터에 시신이 널려 있는 것 같아, 생명의 땅인 농토에서 행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도 손이 많이 가서 나도 지난 봄 작물과는 거리가 있는 농로 입구에 제초제를 한번 뿌려 보았다가 그 처참한 몰골에 기겁을 해서 그 후로는 제초제에 손을 대지 않는다.

 

   텃밭의 경우, 비닐피복이 가장 일반화된 잡초방제 방법이다. 올해도 망설이다가 그냥 또 한 해 그것 없이 견뎌보기로 했다.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 생명을 홁과 더불어 보고 싶어서였다. 까만 비닐 속에서 고개를 내미는 채소가 마치 비좁은 사육장에 갇혀 먹이를 향해 우리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닭처럼 측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내 상념에 불과하지, 아마 채소의 입장에서는 잡초라는 흉악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비닐장막이 고마울지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했다.

 

  흔히 잡초를 뽑을 때, 잡초의 종류에 따라 낫, 곡괭이, 갈고리, 예초기 등 각종 잡초제거기구가 동원된다. 뿌리가 약한 잡초는 햇볕 좋은 날 곡괭이로 박박 긁어 옆으로 밀어 버린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경우 몸을 구부리고 앉아 호미로 뿌리를 캐어내는 고전적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할 때가 많다. 그런데 호미로 잡초 캐는 일이 실제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앉았다 일어났다 계속 움직이며, 잡초를 캐자면 무릎 관절과 허리에 적잖은 부담이 온다. 요사이 농촌에서는 밭 매는 아낙들이 엉덩이에 부착해서 움직일 때마다 덜렁 덜렁 따라 이동하는 스티로폼 의자를 많이 사용한다. 보기엔 우스꽝스럽지만 매우 유용한 고안물이다. 그런데 나는 다리통이 커서 이음줄이 몸에 들어가지 못해. 이동할 때마다 그것을 손으로 옮겨 가며 그냥 걸터앉는 간이 의자로만 사용한다. 그래도 엉거주춤 꾸부리고 일하는 것에 비하면 한결 몸에 부담이 적다.

 

   여름철 땀이 많이 나면, 또 특히 저녁녘에는 온갖 날벌레들이 몰려들어 괴롭힌다. 어제도 호박꽃 주변의 잡초를 뽑다가 벌에게 왼쪽 눈두덩을 제대로 쏘였다. 순식간에 눈이 크게 부풀어 올라 얻어터진 <록키>처럼 인상이 갑자기 달라지니 우리 집 강아지까지 마구 짖어댄다.

 

                         III

     뽑고 돌아서면 다시 고개를 내미는 것이 잡초다. 한쪽 구석에 손대다 보면 저쪽 구석이 무성하다. 한 나절 일해야 겨우 한 고랑을 마친다. 그래서 잡초와의 전쟁은 영원한 전쟁, 승산 없는 싸움이라는 절망감이 밀려올 때가 많다. 세계 여러 나라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빈곤과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남미의 대통령들도 자주 ‘마약과의 전쟁을 벌려왔다. ’조폭과의 전쟁‘을 공언한 검사장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 마다 세상이 떠들썩댔지만 실제로 크게 성공한 예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온갖 ’전쟁‘들을 주도했던 주역들도 내가 비온 후 마치 불사조처럼 기세 등등 새파랗게 다시 솟아오르는 잡초 앞에서 느꼈던 진한 열패감을 맛보았을 것 같다. 암 수술에 임한 집도의가 개복 후, 암세포가 원발부위에서 다른 부위로 크게 전이된 것을 발견하고 느끼는 좌절감도 이와 비슷할 듯하다.

 

   잡초를 캐면서 농작물과 잡초의 관계는 세상의 축약도(縮約圖)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세상에 좋은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 잡초 같은 사람도 적지 않다. 악인이나 범죄자들이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듯, 이들 잡초들도 흉포하고 끈질기게 수시로 농작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잡초를 캐다 보면, 이놈들이 농작물이나 수목, 화초의 뿌리 등에 바짝 엉겨 붙어 주작물의 영양을 뺏어 먹고, 숨통을 죄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럴 때면, 악인의 손아귀에서 약취의 대상이 된 힘없는 시민이나 왕따를 당하고 있는 심약한 청소년을 연상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잡초제거는 약자의 편에 서서 악한 세력을 퇴치하는 정의로운 공권력에 유추된다. 잡초의 근절, 범죄 없는 세상은 기대할 수 없겠으나, 그것이 현저하게 줄어 든 세상은 아마도 가능하고, 그것이 또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닐까.

 

                           IV.

  그래도 잡초 뽑는 일을 하면서 머리로 생각과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그냥 흘려버리는 시간 같지는 않다. 오랜 추억을 더듬어 향수에 젖기도 하고, 얼마간 떨어져서 세상을 지켜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어제 읽은 책의 내용을 되씹기도 하고, 새로 준비하는 책의 구성을 다듬기도 한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철따라, 시간 따라, 또 시각에 따라 바뀌는 울산바위의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도 그런대로 쏠쏠하다. 무엇보다 일생 백면서생이었던 내가 노후에 흙과 더불어 노동을 하며 산다는 느낌이 좋다. 말년에 박완서 선생님이 정원에서 호미로 잡초 뽑는 일이 무척 즐겁다고 하셨던 말씀에 얼마간 공감이 간다. 그래서 잡초 캐는 일은 힘겹고, 짜증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분명 경제적 효율성이나 기회비용으로 따질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잡초와의 전쟁을 벌리면서 몇 가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너무 상식적인 얘기지만, 세상만사의 해답은 다 그런 게 아닌가.

 

첫째는 인내와 끈기로 임하자.

잡초제거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면 힘들지만 그런대로 해 볼만 한 싸움이다. 방심과 게으름, 미루기는 금물이다. 매일 전사(戰士)처럼 결의에 찬 모습으로 싸움터로 나가자. 그리고 잡초가 뿌리를 깊게 내리기전에 선제공격하자. 매일 하는 것, 하루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어학공부의 왕도라는 얘기는 여기도 그대로 통한다.

 

둘째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농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잡초와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이왕 해야 할 것이면 즐겁게 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 생각과 마음을 즐겁게 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숙제이다.

 

그러나 요즈음 내가 즐겨 쓰는 방식은 일하러 나갈 때 화두(話頭) 처럼 한 가지씩 ‘생각할 거리’나 ‘추억거리’ 를 머리에 담고 나서는 것이다. 비교적 크게 부담 없는, 그러면서 흥미 있는 주제 하나를 갖고 나서면 일하는 동안 즐겁게 머리를 가동시킬 수 있다. 자유롭고, 여유롭게, 그리고 스스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사두’(思頭)에 다각도로 접근하는 것이다. 궁구(窮究)가 필요한 무거운 주제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부담스러우면, 과거의 재미있는 추억거리 하나를 챙겨갖고 나서도 좋다. ‘부산 피난시절’도 좋고, ‘유학시절 친구 Hans' 도 좋다. 그러면 일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된다.

 

 

                                       V.

  잡초 뽑다가 가끔 일어나 크게 기지개를 편다. 그리곤 올해 제법 많이 열린 부루베리 몇 개를 따 먹는다. 잡초와의 전쟁은 이제 한 고비를 넘고 있지만, 어차피 찬 바람이 불고 뒤이어 동장군(冬將軍)이 찾아오면, 결국 내가 위대한 자연의 힘을 빌어 승리자로 등극할 것이다.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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