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2

삶의 단상 2012. 8. 28. 10:57 |

* 이 글은 대화 1의 후속편입니다.

 

A군: 많은 국민들이 실제로 이념적으로 중도적인 입장인데, 일정한 쟁점이 부상하면 그에 대해 양극으로 갈라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나: 우리 나라의 유교전통 속에 옳고 그른 것을 칼로 자르듯이 분명하게 가르는 이른바 <벽이론>(闢異論)적 요소가 매우 두드러지는데, 우리들 심성 속에도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할 때는 무언가 맺고 끊는 식이어야 한다는 심리적 성향이 크게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네. 그러다 보니 당초 마음의 상태보다 결정의 순간에 더 양극으로 치닫는 경향이 엿보이네. 그 외에도 양당 정당체제, 그리고 전부를 쟁취하거나 전부를 잃어버리는 대통령 중심제 정치제도도 이 경향을 부추기고 있지 않나 싶네. 그런가 하면, 특히 우리의 경우 사회적 책임을 몰각(沒覺)한 좌, 우의 주요 언론이 정치적 양극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보이네.

   보다 본질적으로 따져보면 우리 사회가 아직 의식의 차원에서 ‘성숙한 사회’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네. 성숙한 사회는 열린 마음, 합리적 토론,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사회라고 보네. 그런데 아직 우리의 마음이 닫혀있고, 합리적 토론에 미숙할 뿐더러,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데 필요한 경험, 의지, 노력이 두루 부족하다고 보네.

 

A군: 그러잖아도 여쭤 보려 했는데요. 선생님은 속초/고성에 내려가신 후 신문을 보지 않으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나: 사실이네. 그러나 가끔 인터넷을 통해 웹서핑을 하니 새로운 정보나 세상 흐름을 아예 멀리하는 것은 아니네. 터놓고 말하면, 좌, 우 어느 쪽이든 기존 신문들이 너무 이념 편향적이어서 부아가 나네. 그래서 정신건강을 위해 아예 구독하지 않네. 이들 언론이 지나치게 ‘진영의식’에 사로 잡혀, 진실과 공익을 외면하고 스스로 정론이기를 포기하고 있네. 내용을 보지 않아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지 뻔하고, 그 논의 수준도 매우 치졸해서 바른 상황인식이나 지적 공감대를 이루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네. 특히 정치적 전환기에는 그 정도가 더 적나라하지 않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지식인 논객들도 지나치게 이념화 되어 있다고 보이네.

 

A군: 방금 지식인 논객들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는데요.

나: 논객들 중 많은 이들의 논조를 보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시키고 사회적 합의에 기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느낌이 들 때가 많네. 말하자면 이들 스스로가 진영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얘기지. 한쪽으로 기울어진 언론이 그런 분들을 필자로 선호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이들 지식인들 자신의 문제도 있다고 보네. 지식인은 마땅히 이념적,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 진실과 역사에 마주해야 하는데, 많은 이가 그 보다는 진영의 관점에서 편향적 상황인식을 증폭시키는 구실을 한다는 느낌이네.

 

A군: 그렇다면, 이 시대의 지식인은 마땅히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나는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이념의 포로가 아닌 자의식이 강한 비판적 지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러면서 그들의 모든 지적 판단이 진실과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공공성을 크게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따라서 그들은 지나치게 편향적 이념이나 정파적 이해관계에 빠져 그 첨병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보네.

 

A군: 저는 선생님이 정부에 들어가셨을 때 크게 놀랬어요. 유신 이래 항상 비판적 입장에서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외치시던 분이, 만년 야인(野人)으로 남으실 줄 알았는데, 두 번이나 장관을 하시니. 그것도 이념적 성향이 다른 두 정권에서 장관직을 맡으셨으니 놀랄 수밖에요. 김영삼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과는 평소에 아셨던 사이인가요? 한번 묻고 싶었습니다.

나: 장관에 임명되기 전, 두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였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권과는 아무 연계가 없네. 두 정부 모두 민주화 이후에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이고, 교육부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아서 맡았던 것이네. 나랏일이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지. 또 내 전공이 정치학, 행정학이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국정운영에 대해 관심이 컸고, 그래서 장관직을 수행하면 큰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 그러나 실제로 두 정부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정하는 과정에서 고뇌가 무척 컸네.

구태여 따져 보면, 이념적 성향으로 볼 때 김영삼 정부는 나 보다 오른 쪽에,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얼마간 나 보다 왼쪽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네. 그러나 나는 두 번 장관을 하면서, 항상 정권의 이념이나 대통령의 가치지향보다는 교육 본질과 나라와 국민의 미래에 입각하여 국사에 임하려고 많이 노력했네. 그 때문에 청와대와 갈등도 적지 않았네.

 

A군: 선생님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대 놓고 정치에 투신하는 대학교수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나: 국가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 지식인들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제 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개인적으로, 평상시에 대학교수들의 현실 정치참여는 적정수준을 지키는 것이 좋다고 보네. 예컨대 자기가 선호하는 당이나 정치인의 정책자문을 한다든지, 논변을 통해 그 정치적 입장을 지원하는 정도는 용인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학자나 교수로서의 본분을 넘어서는 과도한 정치참여는 자제하는 게 옳다고 보네. 특히 좌, 우의 극단적 이념을 강하게 표방하면서, 체제의 기본가치를 흔들거나 사회통합을 해치는 방향으로 현실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은 특히 삼가야 된다고 보네.

  나는 지식인의 본질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따라서 진영논리에 깊숙이 빠져 정신적으로 폐쇄회로에 갇혀버린 사람은 이미 진정한 지성인이 아니라고 보네. 좌, 우 어느 쪽도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을 때, 지식인으로서의 진면목이 가장 역연하게 드러난다고 보네. 비록 외롭지만 ‘단기’(單騎)일 때, 가장 지식인답다고 보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은 가능한 한 이념이나 정치색이 짙은 집단이나 운동에 깊이 개입하는 것은 삼갈 필요가 있다고 보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자신의 진영에서 영웅대접을 받는 ‘스타 교수’ 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네.

 

A군: 현재 한국의 여야 대결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히고 아귀다툼을 하는데, 국민의 입장에서 딱하기 그지없잖습니까?

나: 실제로 우리나라의 여야 큰 정당, 즉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그들 간의 실제의 이념적, 정책적 거리 이상으로 쌍방 간에 대결적이고 전투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고 보네. 무엇보다 양당 모두 지나치게 ‘언어적 극단주의’ (verbal radicalism)의 수렁에 빠져 있네. 최근에 새누리당이 정책적으로 중도 쪽으로 방향을 틀고, 민주당내 몇몇 유력 대선주자들도 중도를 지향하지만, 일단 어떤 정치쟁점이 부상하면 양당이 서로 양극에 대치하는 것은 여전하네. 정책토론이나 합의 추구의 노력 대신에 실속 없는 극단적 언어를 구사하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 거의 버릇처럼 되어 있네. 언어적 극단주의는 갈등과 대결을 낳고 불신과 증오를 증폭시키네. 그러다 보니 여야가 과격하고 추상적인 정치적 상징이나 극단적 개념을 남발하고 합의를 겨냥한 실제적 정책논의는 소홀히 하게 되네. 그러다 보니 정책불임(政策不姙)과 비생산적 정치가 일상화되네. 실제로 따져 보면, 여야, 모두 극단적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들이 아니네. 따라서 중원(中原), 즉 넓은 의미의 중도정당의 정치권역 내에서 대화와 합의를 통해 상생하는 격조 있는 정치를 보고 싶다네.

 

A군: 이제 한국정치도 대선국면으로 접어들었는데,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나: 합리적 정치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기존의 한국 정치 및 정당정치는 그들이 기대했던 그림이 아니네. 이미 말했듯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중도적 정치성향이 강한 정치시민들을 여야가 무리하게 양극으로 끌어당기는 형국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선거 때 자신들이 고르고 싶은 마땅한 선택지가 없네. 뿐만 아니라 구태정치를 일삼는 기존 정당들이나 그 지도자들의 행태에 크게 식상해서 그들에 대한 염증과 혐오감이 크게 고조되고 있던 차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안철수 교수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마치 감로수와 같은 청량감을 선사했던 것이 아닌가. 그의 때묻지 않은 과거와 공공성, 진영의식을 거부하는 그의 중도적 정치적 자세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 왔다고 보여지네.

 

A군: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 같나요. 또 나온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나: 출마여부를 내가 단언할 수는 없지. 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한국정치를 긴장시키고 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야. 현재로서는 민주당에 박근혜를 물리칠 수 있는 대항마가 그리 마땅치 않기 때문에, 끝내는 안철수가 민주당이나 범야권과 연대해서 대선에 출마를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네. 물론 야당과 직접 관계없이 독자 후보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어쨌든 안철수가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 대선에서 득승하기 위해서는 기존 야당이나 야권의 이념적 지향이나 정치전략, 그리고 그 정책의 틀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그에 편승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네. 따라서 그것을 뛰어 넘어 자신의 고유한 정치비전과 정책노선을 선 보여야 될 걸세. 나는 안철수의 성패는 그가 한국정치의 ‘상투성’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고 보네.

 

A군: 통합진보당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세요. 이른바 신당권파와 구 당권파가 결국 결별의 수순을 밟게 될까요. 또 그들과 민주당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리될까요?

나: 이른바 통합진보당의 구 당권파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에 추종하는 반체제세력이기 때문에, 그들은 한 마디로 우리나라 정치의 장(場)에서 배제되어야 할 존재라고 보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적은 수 나마 그들을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유권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우려를 자아내는 일이네. 지난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이 이들 구 당권파가 주도하는 통진당과 야권연대를 결성한 것은 큰 패착이었네. 민주당은 이 연대를 통하여 정체성의 위기, 신뢰성의 위기를 자초했고, 결국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지 않나. 민주당은 다시는 이러한 역사적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걸세. 이른바 신당권파도 최근의 일연의 사태를 계기로 구당권파와 결별하고 독자 진보정당으로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걸세.

이와 연관하여 재야 원로 모임인 이른바 ‘원탁회의’가 야당이나 야권, 혹은 안철수 교수에게 또 무엇을 요구할지 걱정이 되네. 그들은 이제껏 진보진영의 후견인, 중재자로 자처하고 평화와 통일의 이름으로 ‘친북’을 진보이념의 주요 요소로 포장하고, 이를 야권에게 강요해 왔네. 또 그럴 때면, 늘 진보언론이 무비판적으로 그 편에 섰네. 야권, 특히 민주당이 종북세력과는 단절하되 사회정책적인 면에서는 건강한 중도좌파 정당으로 재출발해야 한다고 보네. 남북관계에서 지나친 ‘친북’ 내지 ‘종북’ 편향을 보이거나, 다시 종북세력과의 연대하는 일은 바로 자신들의 묘혈을 파는 길이기 때문이네.

 

A군: 박근혜 후보는 어떻게 보십니까.

나: 박근혜 후보가 지난 선거에서 ‘좌클릭’을 한 것은 잘한 것으로 보았네. 한나라당이 ‘상투적’ 우파 정당의 틀에 안주하며 국민에게 신망을 잃어 가는 마당에, 그 녀가 새로운 희망의 신호탄을 터뜨렸다고 보았네. 박근혜 후보의 성패는 그녀가 앞으로 한국의 사회통합과 미래건설을 위해 어떤 행보와 정책제안을 할지에 달려 있다고 보네. 문제는 그녀의 언술이나 정치적 제스처 보다는 마음에 깃들여 있는 ‘진정성’이 아닐까 하네.

그녀가 5.16과 연관해서 ‘최선의 선택 운운’ 한 것은, 그녀의 여물지 못한 역사관, 민주주의관을 반영하는 듯해서 크게 실망했네. 정 대답하기 어려우면, “그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엄청난 고뇌를 하셨으리라 봅니다” 정도로 얘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정치적 성패는 한국 우파정치의 상투성과 한계를 얼마나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네.

 

A군: 결국 선생님은 여야가 폭넓은 중원에서 좌, 우에 포진하며 중도개혁을 위해 경쟁을 하는 그림을 그리시고, 여야가 실속 없는 양극화 대신 합의와 상생정치를 지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새누리당은 ‘좌클릭’, 민주당은 ‘우클릭’을 해야 된다고 보시는 것 같은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가요. 그리고 이를 위해 정치인들은 물론, 언론과 지식인도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시지요.

나: 대체로 그런 그림이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를 위해 우리 국민들과 사회도 변화해야 된다고 보네. ‘열린 마음’, ‘합리적 토론’,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성숙한 사회’가 바로 그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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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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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독자 2012.08.31 18:43 Address Modify/Delete Reply

    선생님의 글과 생각 신선한 숲의 공기같습니다.
    구구 절절 이렇게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는 지요.

    선생님이 가진 생각과 정신을 가진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는데...
    앞은 잘 안보이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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