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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프랭클과 '죽음의 수용소'

2012. 4. 19. by 현강

                        I.

   프랭클(Victor E. Frankl, 1905-1997)은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낳은 현대 정신의학의 발생지인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대계 관료의 아들로 태어났다. 빈 의대를 나와 신경정신과 의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1942년-1945년간 아우슈비츠를 포함하여 네 곳의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를 전전하다 가까스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신혼 중에 헤어진 그의 아내, 부모 및 다른 가족은 그곳에서 모두 목숨을 잃는다.

 

   전쟁이 끝난 후, 프랭클은 그의 수용소 경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Logotherapy)를 창안한다. ‘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인간의 의미추구'(Man's Search for Meaning)는 1997년 그가 죽기까지 24개 언어로 73판을 거듭했고, 전 세계 고등학교와 대학의 심리학 및 신학의 표준 텍스트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이시형 역, 2000, 2005, 청아출판사)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프로이트의 ’쾌락 추구‘, 아들러의 ’권력 추구‘ 와 달리, 인간의 ’의미추구 의지‘(will to meaning)에 초점을 맞춘 그의 로고테라피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에 이어 제3의 빈 심리치료학파라 불린다.

 

   프랭클은 모든 인간적 가치가 철저히 박탈당하고, 번호로만 존재했던 강제수용소의 아픈 경험을 통하여 자신의 치료방법과 새로운 철학적 조망을 터득했다. 로고테라피의 핵심은 1)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것, 2) 삶을 위한 주된 동기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들의 의지이며, 3) 의미를 찾은 자유이다. 그러므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이 지론이다. 그는 주장은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라고 술회한 도스토예프스키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고테라피스트의 역할은 환자가 자신의 삶의 의미와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의 심리치료의 ’실존적‘ 측면은, 인간은 그의 신체적, 환경적 조건이 아무리 암울해도, 언제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 내지 ’능력‘ 이 있다는 것이다. 강제수용소에서 자신이 남은 마지막 빵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처럼 말이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만은 나치 친위대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고유의 정신적 영역이다. 그는,  인간은 고통(pain), 죄책(guilt), 그리고 죽음(death)이라는 ‘비극적인 3종 세트’(tragic triad)에 시달리지만, 비극에 직면하여 최선을 추구하는 인간의 놀라운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하며, 이른바 ‘비극적 낙관주의’(tragic optimism)를 제시한다. 프랭클은 이렇듯  고통을 성취와 성과로 바꾸고, 죄책감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인간의 덧없음을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는 자유와 더불어 책임(Verantwortung)을 크게 강조하면서, 미국은 대서양 연안에 우뚝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균형추로 태평양 연안에 ‘책임’을 상징하는 조각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랭클에 따르면, 많은 현대인이 이른바 ‘실존적 공허’(existentielles Vakuum) 속에서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동조주의(Konformismus)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 추종하는 전체주의(Totalitarismus)에 목줄을 매거나, 아예 의미상실(Sinlosigkeitsgefuehl)의 심연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심인성(心因性) 노이로제(psychogenic neurosis)라고 하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누제틱 노이로제(noogetic neurosis)라 부르고, 병의 원인을 심리적인 것에 두기보다, 인간 실존의 정신론적 차원에 두고 있다. 즉 그것은 의미추구 의지의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그가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른 치유법이라는 것이다.

 

              II.

 

   죽음의 골짜기에서 생환한 사람의 이야기는 극적일 수밖 에 없다. 그러나 프랭클은 자신의 경험을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삶의 가치, 창조적 자아의 철학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개인의 비극을 인류의 교훈으로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나는 그의 책, ‘인간의 의미추구’(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두 가지 대목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하나는 삶과 죽음의 갈림 장면이다.

 

   “장교는 군복이 꽤 잘 어울리는 마른 체격의 키가 큰 사람이었다. 그 말쑥함에 대비되어 오랜 여행에 지친 우리의 몰골이 더욱 초라해 보였다. 그는 외손으로 오른쪽 발꿈치를 받친 채 무심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른손을 들고 집게손가락으로 아주 느리게 오른쪽 혹은 왼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중에 손가락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대개는 왼쪽이지만)을 가리키는 이 행동의 이면에 어떤 무서운 의미가 깔려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날 저녁에서야 우리는 그 손가락의 움직임이 가지고 있는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첫 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는 죽음 행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채 몇 시간도 못 되어 집행되었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역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직행했다. 수용소로 이송된 사람 중에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던 우리 생존자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록 생사의 갈림길은 아닐지라도, 수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중에는 자신이 선택의 주체가 되는 경우도 있으나, 때로는 운명 혹은 제3자에 의해 결정되거나 선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후자에서도 쓰나미가 닥치듯 주체할 수 없는 운명적인 큰 손에 의해 상황이 결정되는 때가 있는 가하면, 면접시험 때처럼 당락이나 선별 결과의 책임이 얼마간 나에게 있는 경우가 있다. 내가 소개하려는 다음 대목은 이 뒤의 예와 연관된다.

 

   “가능하면 매일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그러니 늘 면도하고 똑바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그러면 더 이상 가스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의의 대목은 자신을 쓸모 있는 모습으로 보여 죽음에의 선발을 모면하라는 얘기다. 선별의 주체는 저쪽이지만,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가부의 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나를 제대로 가꾸라는 것이다. 나치도 최소한의 자기 정당화 내지 자기 위안을 위해 저들이 아무 쓸모없는 ‘인간말짜’이기 때문에 죽였다는 사회적, 심리적 기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직 노동력이 남아있고 인간적 면모를 갖춘 사람들을 서둘러 가스실로 보내지 않으리라는 논리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주장은 생존전략의 차원을 넘어 더 깊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수감자가 자신의 실존적 의미를 깨닫고 훗날 이를 바르게 실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고, 아울러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자유를 다하여 끝까지 삶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내적 결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III.

 

    그는 종전 후 빈 대학 정신신경과 교수로 85세까지 일하고, 하버드 등 세계의 유수한 대학에서 강의했다. 1995년 죽기까지 39권의 책을 썼고, 4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미국 정신의학회는 학회 최고의 영예인 ‘오스카 피스터 상’(Oscar Pfister Prize)을 그에게 수여했는데, 그는 역사상 이 상을 받은 유일한 비(非) 미국인이다. 프랭클의 대표작 ’인간의 의미추구‘는 미국과 일본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 10권“에 선정되었고, 생전에 세계 각국으로부터 29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프랭클은 등반가로도 국제적 명성이 지녔고, 67세에 항공사 자격을 취득하기도 한다. 1947년 재혼하였는데, 유대교 신자인 그는 천주교 신자인 새 부인의 뜻을 존중해서 함께 시나고그와 성당을 다니며, 성탄절과 하누카(Hanukkah, 유대교 축제)를 함께 경축했다. 그의 딸 가브리엘레(Gabriele)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딸 안나(Anna)가 아버지의 정신분석학을 계승한 것과 유사하다. 그는 삶을 마칠 때까지 학자로서, 인간으로서 높은 품위를 지키며 자신의 지론대로 신체와 마음과 정신을 함께 닦아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다. 일찍이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갔던 그가, 세계를 품에 안으며, 92세까지 역동적인 삶을 영위한 것도 무척 인상적이다.

 

   내가 빈 대학교에 유학했던 시기(1965-70년)에 그는 그 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했는데, 부끄럽게도 당시에 나는 내 공부에 쫓기어 그의 존재조차 몰랐다. 또 실제로 프로이트와 아들러가 그랬듯이 프랭클도 제 나라에서 보다 외국에서 훨씬 더 유명했다.

 

            IV.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연구 보고에 따르면, 일본 노인들이 한국 노인보다 평균 수명은 물론 이른바 ‘건강나이’도 더 높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노인이 한국 노인보다 평소에 건강을 더 잘 챙길 뿐만 아니라, 꿈과 희망과 목표가 있다는 노인의 비율도 일본(72.2%)이 한국(58.8%)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 노인들도 더욱 야무진 꿈과 희망을 다지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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