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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이념의 벽을 넘어서기 <성숙의 불씨> / 2007.7.31

2010. 7. 14. by 현강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정말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특히 최근 들어 이념과 연관하여 그런 느낌을 많이 가진다. 누구나, 특히 배운 사람들이면, 일정한 이념적 지향이 있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얼마간의 이념적 편향성을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사리를 분간하지 못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런데 점차 우리사회에서 건강한 토론이 사라지고 있다. 일정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논의하기에 앞서 미리 입장을 정하고 제 주장만 앞세운다. 그러니 온통 독백만 난무하고 진정한 대화는 실종한다. 경청, 숙고, 심의, 합의 등의 개념이 무의미해 진지 오래다. 언필칭 중도를 얘기하고 합리를 앞세우는 사람들과도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그가 이미 이념의 수렁에 깊숙이 빠져 있음을 절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념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의 방법은 일정 쟁점이 제기되었을 때, 우선 그것이 던져주는 정치적 상징이나 이념적 함의에 현혹되어 섣부른 결론을 내리는 것을 삼가는 일이다. 그 보다는 일단 판단을 유예하고, 사실과 분석에 바탕을 두어 생각을 바탕부터 다시 정리해 보는 노력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사실과 정보를 가능한 한 폭넓게, 다양한 연원에서, 치우치지 않게 수집해야 하며, 실증적 분석과 더불어 질적 분석을 함께 병행해야 한다. 쟁점을 역사적으로 되짚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 주변에는 일생 한 신문만 본다고 자랑삼거나, 마음에 맞는 무리들과만 교류한다고 내세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같은 관점만 보강하기 때문에 생각의 판도를 넓이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폐쇄회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결론도 쾌도난마식으로 찬, 반 양 갈래로 내릴 일도 아니다. 문제해결을 획일적으로 할 것이냐 다양하게 할 것이냐, 시기적으로 장, 단기적으로 혹은 몇 단계로 나누어 할 것이냐, 아니면 일거에 할 것이냐, 강도는 어떻게 할 것이냐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대안이 존재한다. 하나하나 따져 보며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 합의수준을 높여야 한다.

 

  성숙한 사회는 열린 마음, 합리적 토론,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사회다. 성숙사회를 이루기 위한 지식인들의 성찰과 분발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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