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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지방화 여록 <성숙한 불씨> / 2009.7.23

2010. 7. 14. by 현강

이곳 속초/고성에 와 살기 시작한지 이제 3년이 가까워 온다. 아무 연고도 없던 곳이라 처음에는 이곳 사정에 어두웠고 실제로 지역사회에 대한 세세한 관심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 자연에 취해 산과 바다, 호수와 계곡을 자주 찾았지만 이곳 주민들의 생활세계와는 얼마간 거리를 두며 살았다.


  
‘탈 서울’을 하면서 가능하면 서울과 중앙에 대한 관심은 줄이고 이곳의 일상에 충실하자고 다짐을 했는데도 부지불식간에 내 주된 관심은 여전히 서울 중심, 나라 전체에 가있었고 정작 내 구체적 삶이 펼쳐지는 이 지방과 이곳 주민들의 사는 모습에 대해서는 피상적인 관심밖에 없었다. 그래서 TV뉴스를 볼 때에도 전국 뉴스가 끝나고 지방 뉴스가 시작될 때면 으레 채널을 다른 데로 돌리곤 하였다. 몸만 여기 있지 마음은 그냥 서울에 머물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처음 한해를 넘기면서 내가 차츰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농사가 잘 안되면 그 걱정을 하게 되고, 피서철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 비가 올라치면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되었다. 피폐한 지역경제를 실감하면서 아내에게 이제 이마트에 그만가고 재래시장과 양양 5일장을 가자고 종용하게 된 것이나, 어쩌다 서울에 가면 가까운 이들에게 속초/고성 자랑에 열을 올리는 것도 그런 변화의 모습이었다. 아내는 오래된 <강원도 짝사랑>이 발동했다며, 자칭 <속초/고성 홍보대사>라고 놀린다.

 
 
무엇보다 TV 뉴스를 보면서 이제는 전국 뉴스를 대충 듣고, 이곳 지방 뉴스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서울과 중앙, 전국은 점차 멀리 느껴지고 그에 대한 관심도 엷어졌다. 그러면서 이곳, 이 지역의 구체적 삶의 세계에 차츰 빠져 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것이 전혀 애써 노력하지 않은 채, 또 스스로 의식하지 않는 사이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게 얼마간 신기하고 흥미롭다. 아니 스스로 놀랄 때도 없지 않다.

 
 
의식의 <지방화>가 진행되면서 걱정도 함께 는다. 요즈음 내 심기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곳 고성의 가장 큰 자랑인 명품 소나무들이 끊임없이 바깥으로 반출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명목으로 허가를 맡아 합법적으로 소나무 반출을 진행하는 모양인데, 식목의 달이라는 지난 4월 이후 내 집 앞 먼 길로 줄지어 실어 나른 아름드리 소나무만 해도 수백 그루는 족히 될 것이다. 소나무를 무리로 패간 뻘건 산등성이는 을씨년스럽게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데 장마철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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