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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책가방과의 오랜 인연 <성숙의 불씨> / 2009.2.6

2010. 7. 14. by 현강

  돌이켜 보면 나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거의 일생동안 책가방과 함께 살아왔다. 현재까지의 내 인생 대부분이 학창생활이거나 교수시절이었으니 책가방은 언제나 내게 필수품이었다. 그러다 보니 책가방은 거의 내 몸의 일부나 다름없게 되었다. 책가방이 손에 없으면 마치 장수에게 칼이 없는 것처럼 금방 허전하고 불안하기까지 했다. 내가 원래 손에 들었던 우산이나, 몸에 지녔던 시계나 모자 같은 물건들을 곧잘 잃어버리는 편인데 여태껏 한 번도 책가방을 잃어버렸던 기억이 없다.

  
어떤 때는 가방에 책과 자료를 가득 채우고 연구실에 갔다가 하루 종일 바쁘게 맴돌면서 책가방을 한 번도 열어보지도 못하고 저녁때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교수들이 비슷한 체험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항상 글에 쫓기다 보니 어쩌다 여름휴가를 갈 때도 가족 눈치를 보며 두툼한 책가방을 들고 떠나곤 했다. 그 경우에도 피서지에서 제대로 글을 써 본 기억은 없다. 몇 년 정부 일을 할 때도, 항상 책가방을 끼고 다녔다. 수행비서가 들겠다고 나서면 놀라 빼앗아 들곤 했다. 그래야 든든하고 마음이 놓였다.

  
외국여행을 다녀올 때 내게는 물론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 하나 사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한번은 유럽 여행지에서 마음에 꼭 드는 고풍스러운 가죽 책가방을 하나 발견하곤 난생 처음 쇼핑을 했다. 그랬다가 온 가족으로부터 장난 끼 어린 집단성토를 받았지만, 그게 다름 아닌 책가방이라서 사면이 된 적도 있었다.

  
정년을 하고 이곳 속초로 내려 온 후에도, 어쩌다 서울을 갔다 올 때는 항상 책가방을 들고 움직인다. 빈손으로 잠시 다녀와도 될 경우도 예외 없이 책가방을 챙기게 된다. 이미 직업병이 고황(膏肓)에 이른 것이다.

  
내 처에 따르면 최근에 내 몸이 걸을 때면 왼쪽으로 조금 기울어지는데, 그게 다 일생 오른 손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녔기 때문이란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항변하지만, 그 말이 내심 그럴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내가 아직 책가방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좋게 생각한다. 대단한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아직 학문에 대한 집착과 공부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그 불씨를 좀 더 피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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