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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글과 인격 <성숙한 불씨> / 2009.4.29

2010. 8. 16. by 현강
 흔히 글은 글 쓰는 이의 인품과 인격을 반영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반신반의하는 편이다. 글로써 언필칭 도덕과 정의를 앞세우며 서릿발 같은 필봉을 휘두르는 논객들 중에도 실제 삶의 세계에서는 언제라도 <메피스토펠레스>와 손을 맞잡을 만큼 비도덕적인 사람도 적지 않고, 천상의 아름다운 어휘를 구사하는 문인들 중에도 막상 만나보면 속기(俗氣)가 철철 넘치는 이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큰소리만 치는 유명정치인이나 평판이 좋지 않은 대 기업가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아예 읽지 않는 편이고, 아는 이들의 글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뢰도를 감안해서 그 내용을 정도껏 받아들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사람은 글로써 자신을 오래 위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보여 진다. 한 사람의 글을 자주 접하다 보면, 그 글속에서 그 사람의 관심, 가치지향, 사는 방식이 묻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고, 그래서 음악이나 미술작품의 경우가 그렇듯이 글만 보고 글쓴이가 누구인가를 어렵지 않게 가려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마 그 때문에 글과 인격이 자주 등식화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자신의 인격을 담은 글인가. 나는 우선 진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실하고 솔직해야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거짓이 깃들어 있거나 지나친 과장. 미화, 혹은 필요이상의 현학적 표현이나 시니시즘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대신 글속에 얼마간 고뇌의 흔적이 있거나 인간적 풍미가 곁들이면 더 글쓴이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또한 글은 마땅히 그 사람의 영혼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 때 혹은 지난 권위주의 시대에 항일과 반독재의 선두에 나섰다가 안타깝게 막판에 훼절한 분들의 뒷날 글을 보면 이미 글이 글이 아니다. 영혼과 닿아 있지 않은 글은 아무에게도 감동을 선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히 체제 전환기에 범람하는 시대나 권력, 혹은 대중영합적인 글은 세속적 목표를 위해 자신의 인격을 던져 버린 예에 불과하다.  

아울러 인격적 성숙을 반영하는 글은 사회 통합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결단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시기에나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야 하는 주요 논점의 경우에는 자신의 인격을 담보로 명백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지나치게 이념적이거나 극단적 입장에 집착하는 글 보다는 서로의 이해를 돕고, 연대를 강화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사회 통합적 글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격을 담은 좋은 글을 읽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이런 글은 일렁이는 공감을 통해 다른 이의 영혼을 적셔주고 우리 모두를 한걸음씩 보다 공동체적인 삶으로 이끈다.  

이렇듯 글을 쓴다는 일은 역시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그것은 진정한 인격적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한 불씨 / 안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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