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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역지사지(易地思之) <성숙의 불씨> / 2008.11.5

2010. 7. 14. by 현강

  지난 70, 80년대 대부분 대학의 교수 연구실에는 학교가 제공하는 이렇다 할 냉, 난방시설이 없어 더위와 추위를 교수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교수들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에는 주로 선풍기에 의존해서, 그리고 긴 겨울철에는 기름을 아끼며 석유난로를 피워 견뎠다.  

 
그러다가 80년대 후반인가 90년대 초부터 겨울철이면 중앙난방식으로 하루에 두 차례 불을 때 주곤 했는데, 그게 꽤나 인색해서 오후 늦게 되면 연구실에는 한기가 맴돌아 손을 비벼야 했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언제부턴가 냉방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에어컨은 교수 부담으로 스스로 설치하고, 전기료는 학교가 내준다는 조건이었다. 처음에는 머뭇머뭇하더니 젊은 교수들부터 한 사람, 두 사람 에어컨을 설치했고 그러다보니 90년대 말쯤에는 거의 모든 연구실의 냉방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그냥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버텼다. 30년 넘어 그렇게 지냈는데, 그리고 정년이 내일 모렌데 새삼스레 무슨 에어컨이냐는 생각이었다. 궁핍한 시대를 살아 온 우리 세대에게는 한 여름 연구실에서 땀 흘리는 게 그리 못 견딜 일만은 아니었다. 또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간 자기절제, 인내, 극기와 통한다고 생각해왔기에 스스로 그러는 내 모습을 스스로 그럴싸하게 여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 어떤 여름날 내방 조교가 불쑥 “선생님, 사회과학대학 안에 이제 에어컨 없는 교수 연구실이 두 방밖에 안 남았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아, 그래”라고 답하며 그냥 넘겼다.

  
그리고 얼마 뒤 방 조교 출신의 제자 교수 한명이 내가 혼자 있는 연구실에 찾아 왔다. 원래 주저 없이 직설적으로 자기표현을 하는 친구인데, 그날도 “선생님, 이 더위에 이게 무슨 고행이십니까. 숨이 막히네요.”라고 푸념을 앞세웠다. 그리고는 빙긋 웃더니 “선생님은 그렇다 치고, 조교 인권(人權)도 생각하셔야지요.”라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치 비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주체하기 어려운 회오(悔悟)의 정이 머리를 쳤다. “아니 이럴 수가. 그동안 내가 제 생각만 해왔구나. 이 방에 둘이 산다는 것, 그리고 나 아닌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삶을 살아 온 신세대 젊은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간과하다니! 그가 선풍기 하나로 견디면서 얼마나 힘겨웠을까.

  다음 날 나는 부랴부랴 에어컨을 설치하고, 조교에게 “그동안 고생이 너무 컸다”고 심심한 위로를 했다. 그러자 영문을 모르는 조교는 “정년을 코앞에 두시고 이제 에어컨을 다시면 어떡해요. 다시려면 아예 일찍 다실게지”라며 어정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상대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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