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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비움의 미학 <성숙한 불씨> / 2009.10.6

2010. 7. 14. by 현강

  전에 대학에 나갈 때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으레 교수 휴게실에 들려 우편함에서 각종 우편물을 한아름 안고 연구실로 향했다. 가끔 반가운 편지나 주문한 책, 유익한 자료도 있지만, 대체로 별 쓸모없는 자료들이 대부분이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선전물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배달된다. 그때부터 내가 연구실에서 하는 첫 번째 작업은 필요한 자료를 고르는 일이다. 한 마디로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기는 작업인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버릴 것을 제때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우선 잡다한 선전물이나 한 눈에 불필요한 자료나 문건은 그냥 휴지통에 넣는다. 그리고 나면 내게 크게 도움이 됨직한 것부터 그런대로 쓸모가 있는 것, 그리고 당장엔 별 필요가 없지만 언젠가 참고가 될 수 있어 보이는 것 까지 다양한 종류가 남는다. 욕심 같아서는 많은 것들을 거두고 싶지만 실제 내 연구실 공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잡다한 자료가 훗날 오히려 짐이 된다는 그간의 경험 때문에 자료 선별과정에서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게 된다.


  
곧 제법 큰 휴지통에 버려진 자료들이 수북이 쌓인다. 그리고 나머지는 일단 필요한 정도에 따라 두어 뭉텅이로 나눠놓고 하나하나 다시 살펴본다. 조교에게 “혹시 자네 이것 필요한가” 물어 건네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휴지통 가까이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끔 의외의 수확에 쾌재를 부를 때도 없지 않다.


  
그런데 당장 버리기 아까워 여기저기 꾸겨 넣었다가 나중에 책상부터 서가, 연구실 바닥까지 잡동사니 천국을 만들기 일쑤다. 그렇게 되면 산더미처럼 쌓인 별 쓸모없는 자료의 숲, 그 미로 속에서 제대로 된 것 하나를 찾아내려면 온갖 고생과 시간낭비를 해야 한다. 결국 이들 자료들 대부분은 내손 한번 닿지 않은 채 몇 년 만에 한번 하는 연구실 총정리 때 한몫에 버려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자료를 고르면서 항상 스스로에게 되뇌던 말이 “버리자, 과감히 버리자”다


  
돌이켜보면 젊은 나이에는 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것저것 많이 챙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정년 가까워지면서 보다 많은 것을 제법 과감히, 그리고 별 망설임 없이 버렸던 기억이다. 적은 것을 더 채우려고 애쓰는 것보다 크게 버려 스스로를 비우는 것이 더 슬기롭다는 것을 몸소 체득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확실히 버릴 것이 많아진다. 여년이 길지 않으니 일을 더 벌리기 보다는 줄여야 하고, 거기에 맞춰 욕심도, 집착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훨훨 털고 한껏 비워 삶을 더 단순하게, 그리고 소박하게 만드는 것이 노년의 자연철학이 아닐까 한다. 거기에는 순리대로 사는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노욕이 아닌가 한다. 노인이 <제 일>을 찾아 그 일을 열심히, 보람 있게 하는 것은 노욕이 아니다. 문제는 온갖 세속에 대한 늙은이의 헛된 욕심과 추한 집착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욕되게 하고 주위를 어지럽게 만든다. 때문에 노년의 아름다움은 노욕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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