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단상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성숙한 불씨> / 2009.11

2010. 9. 18. by 현강

10년 전으로 기억한다. 60세로 넘어가는 초겨울에 내 처가 뜬금없이 “당신 10년 젊어질 수 있다면, 그때로 되돌아가겠어?”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곧장 “싫어, 그 모진 세월을 왜 되풀이 해”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내 처가 “되풀이가 아니고, 10년이 그냥 열려 있는데도”라며 재차 물었다. 나는 “그래도 싫어”라고 한 마디로 답했다. 그랬더니 내 처도, “실은 나도 그래”라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서로 “왜냐”고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 가까운 친구 몇 명과 만난 자리에서 그 얘기를 했더니, 웬걸 대부분의 친구들이 “무슨 얘기야, 10년이 젊어지는데, 당장 돌아가야지”라는 입장이었다. 어떤 친구는 “무슨 소리야. 50대가 황금기인데 다시 산다면 정말 멋지게 해낼 텐데…”라며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내가 왜 세월을 되돌리기를 원치 않았을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마디로 잘라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마도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 중 하나는 지나간 50대, 10년의 세월이 내 편에서는 무척 힘겹고 고단한 시간으로 기억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 시절, 학교의 주요 보직, 학회장도 지냈고 언론에 글도 많이 썼고 2년 가까이 장관직도 수행했으니 남 보기에는 그럴싸해보였을지 몰라도 내 마음의 거울에는 질곡으로 각인될 때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내 딴에는 지난 10년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그 비슷한 세월을 왜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곁들였던 것 같다. 다른 주요한 이유인 즉,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60대에 내가 할 일을 어린아이처럼 꿈꾸며 새로운 10년에 진입하는 내 처지가 무척 다행스럽고 고맙게 느껴져 언감생심 다른 욕심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밖에 아마도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 속절없다는 생각도 얼마간 보태졌지 않았을까 싶었다.

  만 65세 정년을 맞았을 때, 다시 내 처가 세월을 몇 년 되돌리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펄쩍 뛰었다. “무슨 얘기야. 이제 아무런 사회적 책임도 없이 정말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는데.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인데.” 그 때 내 대답은 명료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지나 이제 나이 70으로 진입하는 겨울에 섰다. 이번에는 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난 10년 세월을 되돌리고 싶으냐고. 이번에도 대답은 “아니오”였다. 아직 그런대로 건강한 편이고 70대에도 나를 속으로 살찌게 할 일들이 남아 있어 가슴이 뛰는데, 왜 인생을 복습할 것이냐는 생각이 앞선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스산한 기운이 맴도는 것은 숨기기 어렵다.

'삶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교와 코끼리  (0) 2010.09.20
비 오는 날의 수채화  (2) 2010.09.20
음치로 세상살기  (0) 2010.09.16
한 이발사와의 추억  (2) 2010.09.05
학자의 서가에 오래 남는 책들  (0) 2010.09.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