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로 세상살기

삶의 단상 2010. 9. 16. 08:35 |

  I.
나는 부끄럽게도 음치, 몸치, 면치, 기계치 등 뒤에 치(癡)자가 드는 각종 ‘바보’ 반열에 빠짐없이 든다. 게다가 자동차 운전도 못 하고 골프도 못 친다. 아예 자동차 운전대나 골프채를 손에 잡아 본 적도 없다. 수영도 못하고 길눈도 어둡다. 다재다능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멀다.

그중에서도 제일 못하는 것이 노래다. 세계적인 음악 도시 빈에서 오년 간 살았는데, 노래는 정말 젬병이다. 다른 이들은 대체로 노래가 시원찮아도 동석한 이들의 강권에 의해, 혹은 주위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노래하는 시늉이라도 하는데, 나는 뭇 사람 앞에서 노래하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실제로 성인이 된 이후, 어떤 자리에서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예의가 아닌 것을 뻔히 알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내게 어떤 사람이 제일 부러우냐고 물으면, 곧장 '노래 잘 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그렇다고 내가 음악을 마다하는 편은 절대 아니다. 조예가 깊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여러 장르의 음악을 두루 좋아한다.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속 깊은 감동이나 거기서 우러나는 그윽한 행복감은, 내게 하루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아름다운 시간이다.

  II.
우리나라는 전 국민이 노래방을 애용하고, 강제로 노래를 시키기를 즐기는 나라다. 좌중이 원하는 데 끝까지 노래를 거부하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음치에게 척박하기 짝이 없는 땅에서 내가 어떻게 남들 앞에서 노래 한번 안 하고 여태껏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게 도시 가능한 일인가.

실제로 내가 기업과 같은 위계적 조직이나 사람들과 만남이 잦은 서비스 업종에 종사했다면 아마 그게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 교수들 간에는 위, 아래 관계보다는 동료적 관계가 주를 이루고, 비교적 서로 강요하는 일은 삼가는 편이어서 자발적으로 노래를 하지 않으면 강권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교수가 학생들 연수에 동행하거나 사은회에 참석하는 경우, 학생들이 노래를 청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럴 때, “노래는 무슨, 나는 오늘 심사위원이다. 자네들이나 하지” 정도의 단호한 멘트 한마디면 학생들이 더는 강요하지 못한다. 내가 3년 가까이 정부에도 근무했지만, 부처의 수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내게 무엇을 정도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때그때 마다 상황극복을 위해 얼마간 모질게 버텨내야 했고, 통과의례처럼 약간의 곤욕은 치루 곤했다.

가까운 친구나 친지, 제자들도 이제 내 노래를 들으려 무리한 시도를 더는 하지 않는다. 그간의 숱한 좌절이 그들을 포기로 이끈 지 오래다. 사정 모르는 사람이 기를 쓰고 내 노래를 들으려고 하면, 오히려 적절하게 분위기를 엮어 나를 궁지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편이다.

정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나는 시를 낭송했다. 따라서 만약에 대비해서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는 서정시 몇 편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시 낭송은 자칫 자연스레 달아오르는 모임의 분위기를 급랭시킬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조심해야 한다. 궁여지책으로 시를 낭송하자면 부끄러워 얼굴부터 붉어지기 일쑤다.

이처럼,여러가지 수법을 동원해서 내가 사람들 앞에서 호기있게 목청을 뽑아 보는 희대의 불상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니 내 가슴은 숯검정처럼 시꺼멓게 탈 때가 많았다.

  III.
법정스님이 돌아가신 후 그분에 대한 에피소드가 많이 공개되었다. 그런데  나를 흔들어 놓은 것 중 하나가 스님이 생전에 뭇 사람들 앞에서 한사코 노래를 부르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정 궁지에 몰리시면, “스님 노래 시작한다...노래 끝났다.”로 얼버무리셨다는 다는 얘기다. 그 말씀을 듣고 실로 나는 환희. 작약했다.

“그 어른이 나와 같은 과(科)라니, 아니 그렇다면 스님도 음치셨을까.”

그러면서 혼자 생각했다. 스님도 꽤 고달프셨겠다.

수 년 전에 제자들이 우리 집에 왔다 내 처에게 물었다.

“우리 선생님은 진짜 음치 신가요. 아니면 그냥 남들 앞에서 노래하시기를 피하시는 건가요?”

내 처 대답이 걸작이었다.

“글쎄요. 나도 모르겠어요. 40년 너머 같이 살았지만 내 앞에서도 한 번도 노래 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거야, 본인과 하느님만이 아실 거에요.”


글쓴이 현강재 현강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