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정년퇴직한 후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 와 산지 4년이 되었다. 그 동안 많은 지인들이 ‘시골살이’에 대해 내게 이것저것 물어왔고, 또 더러는 직접 이곳을 찾아 살펴보고 가기도 했다. 대부분 적지 않은 관심을 피력했는데, 막상 내 주변에는 ‘탈(脫)서울’을 감행한 사람은 아직 없다.

내가 서울을 떠나려 할 때 몇몇 지인들은 “아마 2년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 올 걸세”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들도 이젠 내가 ‘그곳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 스스로도 이곳 생활에 연착륙(軟着陸)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 경험을 토대로 은퇴 후 시골살이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이 글은 서울에 가까운 수도권에 별장이나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려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글은 아니다. 이 글은 은퇴 후 작심하고 서울을 떠나 멀리 지방 소도시나 산촌에서 ‘새 삶’을 꾸려 보려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II.
우선 시골살이를 꿈꾸면서도 막상 이를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는 걱정거리가 무엇인가 따져 보자.

그 중 하나는 “나는 당장이라도 하향하고 싶은데 마누라가 절대 반대라서”이다. 그러면서 부인이 ‘늘그막에 영감 없이는 살아도 친구 없이는 못 산다’라든가 ‘손자 재롱’, ‘쇼핑재미’ ‘고급문화에 대한 미련’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서울을 떠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예 시골가기를 처음부터 포기하는 게 옳다. 당장 어렵사리 부인을 설득하더라도 그 약발이 오래 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은 건강 및 의료와 연관되는 걱정이다. 지병이 있거나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아서 혹은 만약의 위급한 사태가 걱정돼서 의료시설이 좋은 대도시를 떠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건강 걱정을 늘 머리에 달고 다니는 사람에게 시골행은 무리다. 그러나 이 경우 재고의 여지는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의학적으로 검증된 장수(長壽)의 세 가지 요건은 운동과 음식, 그리고 조기검진인데, 따지고 보면 시골은 운동과 음식 등 섭생에는 최적의 조건이고, 조기검진은 마음에 문제이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안과 연관된 불안감이 자주 제기된다. 시골 외진 곳에 살면 강도 등 강력범죄에 무방비가 아니냐는 얘기다. 당연한 걱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실제로 지방 소도시나 산촌의 경우 좀 도독은 있어도 강력범은 거의 없다. 또 보안업체의 도움을 받으면 이 문제도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많은 이가 우려하는 것이 고독, 외로움, 소외감 등 심리적인 어려움이다. 이 문제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심각한 문제인 것은 틀림없다. 적은 외로움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나 세상사는 재미를 사람들과 어울리는데서 찾은 이에게는, 황혼 무렵 홀로 서산에 걸린 저녁노을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리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이가 자연과 교감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내면적 충일(充溢)을 만끽한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 자주 제기되는 걱정이 생활의 불편과 문화 향수(享受) 기회의 부족이다. 도농(都農) 간의 삶의 양식의 차이 및 문화적 격차는 분명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농촌 생활개선, 교통 및 통신망의 발달, 문명의 이기 및 대중문화의 확산 등으로 그 간격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외에 현지 적응 내지 주민과의 화합의 문제도 많은 이의 심각한 우려 사항 중 하나다. 이는 지방 소도시 아파트로 옮기는 경우에는 별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산촌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경우 이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사전에 이주하고자 하는 곳의 형편을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허나 중. 장년층이 영농을 목적으로 하향하는 경우에 비해, 은퇴 후 노령자의 이주는 상대적으로 현지 갈등의 소지는 적은 편이다.

   III.
그렇다면 시골살이의 장점은 무엇인가. 큰 것 두 가지만 얘기하려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시골살이의 전체를 포괄하는 주요한 대목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시골살이가 경제적으로 매우 유리하다는 점이다. 한국 노인 대다수가 ‘100세 시대’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채 노령기에 접어들었다. 때문에 물가가 비싸고 소비수준이 높은 대도시에서 여생을 보낸다는 것은 무척 버거운 일이다. 그런데 지방 소도시나 농촌으로의 이주하게 되면 적어도 의. 식. 주의 부담은 현격하게 줄여 든다. 무엇보다 주거비가 파격적으로 적게 들고 식품 및 의류 지출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생활비를 낮추면서 삶의 조건을 크게 개선하고, 만족도도 높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음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자연의 혜택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신선한 공기, 맑은 물, 생명의 원천인 산천초목과 토지는 우리 삶의 원초적 바탕을 건강하게 새로 다져준다. 또한 자연은 우리에게 최상의 먹거리, 볼거리, 일거리를 제공한다. 그뿐인가. 농촌에는 인공도시가 토해내는 온갖 소음과 분답(紛沓), 갈등과 경쟁 대신에 자연이 안겨주는 평온과 순리, 정신적 여유와 평화가 감돈다.

   IV.
이제 내 경우를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정년하기 10년 전부터 은퇴하면 서울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내 처도 동의했다. 그녀가 도예, 천연염색, 정원 가꾸기 등에 관심이 많은데, 그 모든 것이 서울을 떠나면 더 수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첫 고개를 무난히 넘겼다.

 처음부터 서울에서 멀리 갈 궁리를 했다. 서귀포, 남해, 속초가 주요 후보지였는데, 마침 가까운 친구가 속초에 미리 자리를 잡고 그곳을 ‘강추’했다. 결국 설악과 동해가 함께 손짓하고, 친구가 기다리는 이곳으로 왔다.

 속초/고성생활 4년 동안 건강이나 보안 문제로는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간 감기 한번 걸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건강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적 작업이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대도시에서 보다 오히려 소도시나 시골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한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있어 지식과 정보의 수집과 소통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자연으로부터 지적, 예술적 영감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2년간은 의도적으로 서울에 기웃거리는 일을 극력 피했다. 서울에서 열리는 공식적 모임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고, 내 편에서 서울 친지들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작심하고 ‘정 떼는’ 작업을 한 셈이다. 서울에서 얼마간 ‘잊혀진 존재’가 되어야 이곳에 발붙이기가 한결 수월할 것 같아서였다. 이곳에 연착륙 하는데 그것이 꽤 주효했던 것 같다.

가끔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꼈지만 가슴이 저며 올 정도로 심각한 적은 없었다. 생활인으로 시골에 살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그러자면 고독할 틈도 없다. 가까운 친구와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시골살이를 하다보면, 문화, 특히 고급문화를 누릴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서울에 산다고 실제로 문화적 향수 기회가 그리 많은가. 내 경우, 실제로 바쁘다는 핑계로 서울에서 예술이나 문화생활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 그래서 몇 년에 한번 영화관에 가기도 어려웠는데, 오히려 여기 와서는 적어도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영화관에 가는 편이다. 또 작년 한 해에 서울에서 열리는 음악회, 공연, 전시회에 네 번이나 갔다. 그 때 마다 모처럼의 기회인양 느껴져 마음이 설렜고 기쁨도 그만큼 더 컸다. 다양한 지방 축제에 자주 기웃거리고 <양양 5일장>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 뿐인가. 여기서 나는 서울에서 보다 음악을 훨씬 더 자주 듣고, 가끔 그림도 그린다.

 뭐니 뭐니 해도 나에겐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쁨이 가장 크다. 우리 집에서 설악동, 봉포 바닷가, 영랑호가 똑 같이 차로 15분 거리다. 다른 사람들이 일 년을 별러야 한번 올까 말까 하는 자연 명소를 나는 옆 마을 가듯 자주 오간다. 내 서재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울산바위는 언제 보아도 한 폭의 명화이다. 그런가 하면 도보로 왕복 1 시간 걸리는 뒷산 솔밭 길은 여름에 뱀, 겨울에 멧돼지 걱정만 빼면 최상의 명상 길이다. 근처에 양질의 온천이 많은 것도 주요한 매력 포인트다. 사철 마당 가꾸고, 텃밭 일구는 재미 또한 빼 놀 수 없다.

 처음 여기 올 때만 해도 서울서 속초에 오는데 차로 서, 너 시간 걸렸다. 그런데 미시령 터널이 뚫리고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두 시간 반이면 거뜬하다. 서울과 너무 가까우면 자칫 서울이라는 거대한 ‘블랙 홀’에 다시 빨려 들어 갈 위험이 크다. 한편 서울과 지나치게 멀면 어쩌다 서울행을 해야 할 때 적지 않은 불편이 따르게 된다. 그렇게 볼 때 속초-서울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적절하다고 본다.

 아직 결론을 얘기하기는 이르지만, 대체로 나의 ‘탈 서울’은 그런대로 성공적이 아닌가 싶다.

 
    V.
마지막으로 내 경험에 비추어 은퇴 후 시골살이의 성공조건을 간추려 보고자 한다.

첫째, 마음의 준비와 부부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시골살이는 삶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다. 따라서 자신의 ‘시골살이 적합성과 ’현지 적응 가능성’에 대해 냉철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부부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마땅히 할 일이 있어야 한다. 삶의 의미와 성취의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 일을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셋째, 심신이 건강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시골살이는 생각만큼 낭만적이고 목가적이지만은 않다. 그것은 눈앞의 현실이고 생활이다.

 넷째, 사회적 교류는 적정 수준인 게 좋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사회적 네트워킹은 오히려 부담된다.

 다섯째, 살면서 현지 주민과 생활의 격차를 보여서는 안 된다. 현지에 걸맞게 검약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치와 과소비, 오만과 과시는 주민들과 위화감을 조성하고 자칫 따돌림과 소외를 자초할 수 있다.

 여섯째, 마음을 비워야 한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자연에 귀의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몸만 시골에 있고 마음은 여전히 서울에 머문다면 실패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움의 철학>이 성공적 시골살이의 필수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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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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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21 05:3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이강렬 2011.01.26 17:26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도 7년전부터 시골살이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 양평군 강하면 텃밭을 매주 토.일요일 열심히 가꾸고 있습니다. 지금 밭에는 마늘 600여개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마늘 6-7접을 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나무를 부실하게 싸줘서 걱정입니다. 얼어죽었을 것 같은데...
    글에서 행복이 뚝뚝 묻어납니다. 제가 제 블로그에 열심히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