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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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이야기(재록)
어제 "교수님, 주례 이야기 참 재밌습니다"라는 댓글이 실렸다. 찾아보니 내가 15년 전(2011/10/15)에 현강재에 올렸던 글이다.나름 재밌어 다시 올려 본다. I. 교수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제자들 결혼식 주례를 자주 서게 된다. 나도 지난 세월 동안 300번 가까이 주례를 섰다. 그러다 보니 한창 주례를 자주 섰던 50대 때는 학자로서, 또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였는데, 모처럼의 주말마다 한, 두 차례 주례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생활에 지장이 컸다. 하지만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므로 주례는 그 전 과정에서 추호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주 하더라도 매번 긴장하고 적잖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일단 주례를 맡기 시작하면 누구는 해 주고 누구는 마다할 ..
202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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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 안성기(재록)
국민배우 안성기가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방금 들었다. 어질고 인정어린 표정, 조금은 익살스런 웃음으로 만인의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했던 그가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니 너무 가슴이 아프다. 아래 1997년 11월 1일에 올렸던 글을 다시 수록한다. 부디 하느님의 품에서 평화로히 영면하소서. I..국민배우 안성기를 처음 만난 것은 1959년 내가 대학 1학년 때이다. 그때 안성기는 장난기가 얼굴에 가득한 초등학교 1, 2학년짜리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1957년 로 영화계에 데뷔한 지 2년이 됐고, 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아역 상)까지 받은 후라서 유명 스타였다. 그런데 우연히 그가 내가 다니던 돈암동 성당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 어렵게 우리 집에..
2026.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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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공론의 장 만들어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4140 60년전 오스트리아 유학 당시 중앙일보 통신원을 했다. 오래전 얘기이다.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소식에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신문이 공론의 장 만들어야"…중앙일보 통신원 1호의 60년 전 기억 | 중앙일보60년 전 본지 창간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면서 유럽 관련 기사를 기고하는 통신원으로 일했다. 그는 "최근 중앙일보가 창간 60주년을 맞았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그간 까맣게 잊고 살았던www.joongang.co.kr
2026.01.01
자전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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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통신원 제1호
I.얼마 전 중앙일보가 창간 60주년을 맞았다는 보도에 접하면서, 그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옛 기억이 되살아나 몇 자 적어본다.나는 지금부터 60년 전, 1965년 10월 초에 오스트리아에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그에 앞서 우연한 계기에 새로 창간하는 중앙일보의 통신원이 되었고, 그 인연으로 한동안 중앙일보에 글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후 모진 세월의 흐름 속에 그때 일은 내 기억에서 거짓말처럼 거의 지워졌다. 1970년대 초 귀국한 이후 중앙일보에 적잖게 글을 실었고, 대담, 인터뷰, 행사 등으로 여러 차례 그 사옥을 드나들었는데도 한 번도 내가 한 때 이 신문 통신원이었다는 사실을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그러다가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사를 보는 순간, 마치 전기충격을 받은 듯 반세기 넘게 내 ..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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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벌어졌던 일
I나는 1970년대 초반에 3년 반 동안 한국외국어대학 행정학과 조교수로 재직했다. 이미 까마득한 반세기 저 너머의 일이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이후 외대)는 아직 단과대학이었고 전임교수가 70명 남짓의 중소 규모의 대학이었다. 그러나 외국학(언어·문학/지역학)에 특화된 대학으로 학생들의 수준이 무척 높았고, 사회적 평판도 좋았다. 그곳이 내 첫 직장이었고, 꽃다운 한창나이에 교육과 학문에 열정을 쏟았던 보금자리였다. 그래서 외대는 아직도 내게 추억의 사진첩을 연상시키는 마치 ‘고향’이나 ‘친정’ 같은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당시 외대에서는 매달 한 번씩 학장 주재의 전체 교수회의가 있었다. 여기서 30대에서 60대까지 전 교수가 한데 모여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며 대학에서 돌아가는 흐름을 공유할 수..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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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계 데뷔 첫날 풍경
I. 나는 1970년에 오스트리아 빈(Wien) 대학에서 공부를 끝내고, 이듬해 초에 귀국했다. 돌아와서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쯤, 한국정치학회 총무이셨던 동국대학교의 이정식 교수님께서 전화로 내게 곧 열릴 학회에서 연구발표를 할 것을 청하셨다. 나는 얼떨결에 수락했다. 1971년 2월 초, 연구발표회는 성균관대학교의 계단강의실에서 열렸다. 발표자는 두 사람, 이영호(李永鎬) 교수님과 나였다. 이 박사님은 연세대 정외과 내 6년 선배로,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조지아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조교수로 강의를 하시다 그 전해에 귀국, 이미 이화여대 정외과에 채용이 결정되신 기존 학자셨다. 원래 이분 단독으로 발표하실 예정이었는데, 내 귀국 사실이 알려져 학회에서 급히 내게 연락을 주셨던 것이었다..
202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