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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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1.이곳 고성에 나를 찾았던 지인들이 내게 던졌던 가장 많은 질문은 “이런 외진 곳에 사니 외롭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 대답은 대체로 “가끔 외로울 때가 있죠. 그런데 그리 절실하지는 않아요”였던 것 같다.한 10년 전에 가까운 선배 한 분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부산에 특강을 갔다가 KTX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인데, 차창 밖으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불시에 외로움이 밀려와 내게 연락을 했다며, “아니 나는 한나절 서울을 떠났는데도 벌써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느낌인데, 당신은 10년째 그 촌구석에 멀쩡하게 처박혀 사니 도시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II.서울 태생으로 이곳과 아무 연고가 없는 내가 여기와 살며 별로 외로움을 타지 않는..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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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호혜·선린 연대를 지향하며
지난 5월 17일 나는 연세대학교 개교 140주년 기념 사회과학대학 학술세미나에서 “자유주의, 그 안에서 새 빛 찾기”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이 강연의 마지막 부분, ‘결론에 대신하여: 동아시아의 호혜·선린 연대를 지향하며’를 조금 보완하여 아래에 싣는다. 이 세미나에는 또 한 명의 기조강연자였던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비롯하여 여러 명의 일본 학자들이 참석해서, 두 나라 사이에 긴밀한 학문적 교류를 했다. 마침 올해가 한·일 국교 60주년이다. 며칠 전에는 캐나다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양국 정상이 만나 보다 성숙한 한·일관계를 다짐했다고 한다. 양국 간에 이런 우호적 분위기가 앞으로 더욱 잘 이어지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린다. 결론에 대신하여: 동아시아의 호혜·선린 연대를 지향하..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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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친구들의 전화번호
I 나이가 80대 중반에 이르니, 가까운 친구들 다수가 세상을 떠났다. 얼마전 내가 나온 고등학교 홈 페이지에 들어가니 동기생들의 “생존률 52.5%”라고 공지되어 있었다.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이 81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나이에 고교 동기가 아직 반 이상 살아있다니 매우 준수한 성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친구들의 부음을 더 자주 듣게 될 터이고 그때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의 옛 추억의 편린들을 되살리며 인생무상을 체감할 것이다. II. 내 핸드폰 연락처>란에 친구들을 비롯해 가까운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오래전 이곳 강원도 고성으로 내려온 후 서울과의 교류가 뜸해져 실제로 거기 담긴 이름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연락처를 살펴보면 거기에 이미 ..
2024.09.13
자전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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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벌어졌던 일
I나는 1970년대 초반에 3년 반 동안 한국외국어대학 행정학과 조교수로 재직했다. 이미 까마득한 반세기 저 너머의 일이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이후 외대)는 아직 단과대학이었고 전임교수가 70명 남짓의 중소 규모의 대학이었다. 그러나 외국학(언어·문학/지역학)에 특화된 대학으로 학생들의 수준이 무척 높았고, 사회적 평판도 좋았다. 그곳이 내 첫 직장이었고, 꽃다운 한창나이에 교육과 학문에 열정을 쏟았던 보금자리였다. 그래서 외대는 아직도 내게 추억의 사진첩을 연상시키는 마치 ‘고향’이나 ‘친정’ 같은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당시 외대에서는 매달 한 번씩 학장 주재의 전체 교수회의가 있었다. 여기서 30대에서 60대까지 전 교수가 한데 모여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며 대학에서 돌아가는 흐름을 공유할 수..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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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계 데뷔 첫날 풍경
I. 나는 1970년에 오스트리아 빈(Wien) 대학에서 공부를 끝내고, 이듬해 초에 귀국했다. 돌아와서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쯤, 한국정치학회 총무이셨던 동국대학교의 이정식 교수님께서 전화로 내게 곧 열릴 학회에서 연구발표를 할 것을 청하셨다. 나는 얼떨결에 수락했다. 1971년 2월 초, 연구발표회는 성균관대학교의 계단강의실에서 열렸다. 발표자는 두 사람, 이영호(李永鎬) 교수님과 나였다. 이 박사님은 연세대 정외과 내 6년 선배로,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조지아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조교수로 강의를 하시다 그 전해에 귀국, 이미 이화여대 정외과에 채용이 결정되신 기존 학자셨다. 원래 이분 단독으로 발표하실 예정이었는데, 내 귀국 사실이 알려져 학회에서 급히 내게 연락을 주셨던 것이었다..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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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춘추와의 인연(III)
I. 나는 가끔 /Annals 주간 시절이, 참으로 힘겹고 어려운 시간이었는데, 왜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깔로 내 뇌리에 자주 떠오를까 의아할 때가 많다. 또 그 때의 고생스러웠던 큰 기억들은 시간과 더불어 점차 퇴색하고, 당시에 소소하고 단편적이었던 한 컷, 한 컷의 즐거웠던 작은 순간들이 덧칠되고 미화되어 밀도 있게, 또 낭만적으로 추억되는지 신기할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고통 속에서 겪는 작은 행복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인 것 같다. '연세춘추와의 인연(I)'올 올린 후, 당시 기자였던 안인자 교수가 내게 문자를 보내, “춘추와 함께 한 1년 반은 참으로 제 생의 황금기였어요”라는 술회했다. 나는 “와! 이 친구들도 그 시절을 아름답게 추억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놀라고 크게 기뻤다..
2021.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