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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정치는 인성을 파괴하는가

2022. 6. 6. by 현강

                                           I.

코로나가 창궐하는 가운데 말도 많고 탓도 많았던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별칭이 따랐던 이번 대선에서, 특히 후보자의 인성과 도덕성 문제가 많은 논란을 빚었다. 많은 이가 정치가의 인성이 좋은 정치의 열쇠라고 주장했고, 또 적지 않은 이는 일할 능력만 갖췄으면 얼마간의 도덕성의 흠집은 눈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연관하여 제기되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이 정치가 인성을 파괴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내 어정쩡한 대답은 인간이 권력에 가까이 가면 인간성이 파괴될 개연성이 무척 높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이다.

 

정치권력을 둘러싼 다툼은 언제나 치열하다. 승리가 건져낼 전리품이 막대하고, 패배가 감내해야 할 손실과 아픔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승리를 의해 온갖 수단이 동원되기 일수이다. 불법과 부패, 모략과 위계, 배신과 모반이 판을 치고, 자칫 그것이 일상화된다. 이념과 교조주의에 빠진 사람일수록, 흑백논리와 지나친 자기확신 때문에 이념적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좋은 뜻과 대의명분을 위해 정치에 입문했던 사람들도 무자비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초심을 잃고 그 동네 문법에 길들어져, 끝내 인간성이 비뚤어지고, 마모되고 소진된다. 정치의 위계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자만과 자기존대(自己尊大)에 빠지고 성찰능력을 잃기 쉽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신의 바뀐 모습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고, 그럴수록 상태는 더 악화된다.

이러한 치명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치인이 권력의 광채에 눈이 멀고, 잔혹한 정치의 수렁에서 빠져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은 아니다. 그 예외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인성이 망가지고 도덕적으로 피폐화된 사람에게 나라의 정치를 맡길 수 있을까. 그가 머리가 영리하고 정치적 경험과 전문적 능력이 뛰어난다면, 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서 나는 강한 의문을 품는다. 그런 사람도 자주 그럴듯한 결정을 하고, 일상적, 기능적 결정에는 오히려 능숙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요한 정치적 결정은 그 안에 도덕적 판단을 함축하고 있으므로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결정을 그런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비도덕적인 정치꾼에게 주요한 공직을 맡기는 일은 사이코패스에게 어린아이를 돌보라고 부탁하는 것 다를 바 없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나는 정치인의 인성 내지 도덕성은 좋은 정치를 위한 중요한 전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어지는 글들에서 반 백년 이상의 모진 정치 풍파 속에서 뛰어난 정치적 업적을 이루면서 끝까지 도덕적 인간으로 역사 속에 살아남은 독일 현대사의 두 거인, 브란트(Willy Brandt)와 슈미트(Helmut Schmidt)를 살펴보려 한다. 두 사람은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가 크게 꽃을 피었던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차례로 총리로 재직했던 정치가다.

 

                                          II.

독일의 사회민주당 소속 4대 총리인 브란트(1969-1974년 재직)는 곧이어 그를 계승한 5대 총리인 슈미트(1974-1982년 재직) 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 두 사람은 동시대인으로,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다. 그런데 브란트와 슈미트는 사뭇 달랐다. 둘 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로 사회화 과정, 정치적 스타일 그리고 정치에 대한 이해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각각 총리로 재직시 그때 그 시대가 요구하는 최적의 정치적 리더십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브란트는 그의 생애 업적인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냉전으로 얼어붙은 동서간의 관계의 틀을 다시 세우고 독일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대 정치가다. 카리스마가 돋보이고, 영감과 열정이 넘치는 이상주의자의 면모가 크게 부각된다.

그런가 하면 슈미트는 석유위기, 두 자리 수의 임금인상, ‘적군파테러리즘, 냉전의 격화 등 서독이 건국 이래 최대의 도전과 위기에 처했을 때, 냉철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통하여 나라를 나락에서 건져낸 최상의 위기관리자(crisis manager)이다. 따라서 현실정치가로서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러한 상투적인 비교는 두 큰 정치가의 참모습을 살펴보는 데는 충분치 못하다. 브란트에게서 일견 그의 이상주의 내지 비전이 부각되는게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동방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총리직 뿐만 아니라, 결연히 그의 정치적 존재 자체를 걸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분명 기존 정치의 한계를 확장하고, 정치적 의제를 획기적으로 바꿔 놓은 재정의형(redefinitional)’ 리더의 전형이다. 그러나 그의 전략적 접근을 살펴보면 그는 매우 용의주도한 실용주의자였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핵심은 그 자신이 천명한 대로, ‘작은 발걸음의 정책이었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대결보다는 접근, 교주주의보다는 실용주의에 힘을 실었다. 기본적으로 서방세계와의 동맹을 굳건히 지키고 신뢰 관계를 유지하면서, 소련 및 동독을 비롯한 동구와의 접근을 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슈미트는 열정적 이념이나 장밋빛 비전을 쫓기보다는 실용주의를 앞세워 눈앞에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겨냥했던 실용주의는 언제나 도덕적 목표와 그 바탕 위에 세워졌고, 체제의 기본적 가치와 질서를 보존, 선양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슈미트는 문제해결에만 급급하는 기능적 관리기술자가 아니었다.

 

독일인들은 이 두 걸출한 역사적 인물들을 모두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런데 굳이 따진다면, 브란트에게는 더 많은 사랑을, 그리고 슈미트에게는 더 큰 존경을 보낸다는 느낌이다.

 

이어 지는 글에서는 브란트와 슈미트의 정치적 행적보다, 이 두 사람이 벌거벗은 권력이 난무하는 잔혹한 정치세계의 격랑 속에서 의연히 자신의 인격과 도덕성을 지키며 한 인간으로서 살아남은 이들의 인간적 존재적 측면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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