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는 자주 자신이 한 말을 잊고 산다. 아니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오랜 만에 만난 제자가 내게 “그 때 선생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라고 옛 이야기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나 자신은 그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더구나 그가 진지한 얼굴로, “그 때 그 말씀이 제가 유학시절 몇 번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라고 말할 때는 무척이나 당황스럽다. 그러면서 내심 미안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아마 교직에 오래 있었던 다른 분들도 이런 경험이 꽤 있었을 듯싶다.

 

                            II.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떤 자리에서 전에 교육부에 함께 있었던 K 국장을 만났다. 그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던 도중,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교수님을 장관으로 두 번 모셨습니다. 20 년 전 공무원 초년병이었던 사무관 시절, 그리고 그 후 과장 때였지요. 그런데 장관님을 생각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게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라는 어구입니다. 그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국정에 임하는 공무원의 자세를 말씀하실 때나, 정책토론을 할 때에도 빼 놓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실제로 나는 그렇게 말했던 구체적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니 분명 내가 의도적으로 미리 준비하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순간 그 말이 나를 꽤나 감동시켰다. 내가 정말 꼭 하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아마 무의식 중에 가슴 속에 깊이 잠겨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그 때 그 때  튀어 나왔던 것 같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라는 말은 동어반복에 가까운 무척 평범하고 일상적인 어구다. 지적인 표현과도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 짧은 말 안에 일의 성취와 연관된 많은 것이 들어있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전율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집에 오면서 그 말을 계속 되씹었다.

 

우선 매사에 마음이 중요하다. 일에 대한 동기와 성취욕구, 열정과 헌신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없거나, 마음이 흔들리면 일을 의무감에서 적당이 하거나 일 하는 시늉에 그치기가 쉽다. 따라서 일에 몰두하려면 우선 마음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공직자의 경우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공공심(公共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 마음도 정성이 깃들어야 제 빛을 발한다. “정성을 다하면 돌 위에도 풀이 난다”는 옛말도 그 때문이다.

 

                               III.

나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유능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온갖 시험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는 뛰어난 공부꾼, 아이디어가 섬광처럼 반짝이는 재주꾼, 남들이 힘겨워 하는 일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실력자, 어려울 때 더 돋보이는 발군의 위기관리자....이들은 언제나 내게 선망과 경이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들 능력자들이 나를, 그리고 내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 놓은 경우는 드물었다. 오히려 언제나 나를 깊은 감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은 뜻 있는 일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속 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당장 크게 두드러지지 않을지 모르나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라를 지켜주는 버팀목이다. 유능인(有能人)들은 간혹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만 믿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마음이 함께하지 않는 능력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지성인(至誠人)’은 옳은 일에 꾸준히 자신의 온 정성을 쏟는 ‘마음이 성숙한’ 인간형이다. 나는 공직에 있을 때,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이 유능인이 되기에 앞서 나랏일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헌신하는 참된 '지성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이 자주 튀어 나왔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마음공부’, ‘마음수련’, ‘마음가꾸기’ 등의 개념을 좋아 한다. 그것이 모든 것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한다”라는 말이 더 없이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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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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