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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65-75세가 '전성기'? 왜

2016. 11. 29. by 현강

                              I.

얼마 전 정년을 1년 가까이 앞둔 제자 교수 한 명이 나를 찾아 왔다. 그는 교수로서 마지막 한 해를 보내는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며 정년 후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내게 많이 물었다. 나는 지난 10년간의 내 삶의 과정을 되돌아보며 허심탄회하게 그에게 답했다. 혹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그와의 대화 내용을 아래에 1문 1답식 으로 정리해 보았다.

 

                             II.

문: 우선 정년 후에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하셨어요. 저도 이제 교수연구실을 비워야 하는 데, 집의 서제에도 책이 넘치고 어디 보관할 때가 없어요. 이번 기회에 아예 제 삶을 에워 쌓던 책의 그늘에서 완전히 헤어나고 싶습니다.

답: 나도 정년퇴직 때 책을 반 이상 정리했네. 도서관에 많이 보냈지. 그런데 지금은 가끔 후회하네. 학자에게 책이 무기가 아닌가. 책이 없으면 힘이 빠지네. 본질적 사색에 도움이 되고 지적 영감을 줄 수 있는 책들, 특히 ‘현대적 고전’들은 가능하면 간수하게. 그런 책들은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나네.

 

문: 선생님! 저는 이제 공부는 접을 생각입니다. 교수생활 30년에 많이 지쳤고, 또 이 나이에 무슨 연구입니까. 조금 편하게 즐기면서 여생을 보낼까 합니다.

답: 자네처럼 유능한 학자가 공부를 접다니. 무슨 말인가. 학자는 평생직업이네. 자넨 아직 건강하고 연금도 타니 기본적 생활에 걱정이 없지 않나. 지금부터 진짜 공부를 하고 업적을 남길 나이네. 인문. 사회과학자에게 퇴직 연령인 만 65세부터 이후 적어도 10년 간은 최고의 절정기네. ‘전성기’란 말일세. 알찬 수확을 거둘 나이에 그만 두다니.

 

문: 정년퇴직 후가 전성기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제 심신이 노쇠하고 지적 능력도 떨어지는데 또 공부에 매달리라니, 그것은 무모한 일이고, 일종의 노욕입니다.

답: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퇴직을 하면, 제도권을 떠나네. 학생들 가르치고 정규적으로 논문도 써야 하는 틀에 박힌 공적 의무에서도 벗어나네. 얼마나 홀가분한가 .이제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고 싶었던 일만 하면 되네. 시간도 나니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고, 봉사활동도 할 수 있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면서도 절대 손에서 책을 놓지는 말게나. 공부꾼이 공부를 멀리하면 마음이 불편해서 삶 자체가 균형을 잃네. 학자에게 공부와 집필은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징표네. 또 노년기에 공부만큼 ‘힐링’ 효과가 좋은 묘약은 없네.

 

문: 무슨 공부를 하라는 말씀입니까. 또 전공에 매달려서 연부역강한 후배 교수들과 겨루란 말씀입니까.

답: 꼭 그런 얘기는 아니네. 무어랄까. 이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랄까, 꾸밈없이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레 내 내면의 소리를 담아 글을 써보게나. 나도 거기에 이르기에는 까마득하지만 나름대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네. 인문. 사회과학자는 연륜과 더불어 안목이 성숙되고 생각이 깊어지네. 그래서 큰 학자들의 대작들이 노년기에 나오는 경우가 많네. 그렇게 볼 때, 연령적으로 6,70 대는 학자로서 한창 물오른 최상의 전성기이네. 이 때 공부를 접다니, 자네와 같은 뛰어난 공부꾼이 할 얘기가 아니네. 일종의 직무유기네.

 

문: 그러면, 선생님이 요즈음 공부하는 방식을 말씀해 주십시오. 참고할까 합니다.

답: 나는 이미 70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니, 한창 전성기의 자네의 경우와는 사정이 조금 다를 걸세. 그러나 내 생각을 얘기해 보겠네.

 

첫째, 이제 전공의 벽을 뛰어 넘게나. 세상이 정해 준 학문 간의 경계는 부질없는 것이네. 아예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벽도 허물고 여러 영역의 학문적 성과를 두루 수확해서 자네 식으로 새로 반죽을 하게나. 요새 많이 얘기하는 융합과 재창조네. 대학에 있을 때는 학과와 전공에 따라 밥 먹는 체계가 다르니 이게 쉽지 않지만, 이제 거리낄게 뭐가 있나. 그게 바로 천의무봉이네.

 

둘째, 공부할 때, 또 특히 글을 쓸 때, 그 안에 자네의 전 생애를 담게나. 사회과학자에게는 책에서 익히는 공부 못지않게 삶의 체험이 무척 중요하네. 그들은 자신의 생애과정 속에서 많은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얻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인생역정이 그에게 최대의 공부 밑천이네. 생각해 보게나. 다산 정약용이 멀리 강진까지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민생을 담은 그의 빼어난 정책론이 나왔겠나.

 

셋째, 내가 요즈음 쓰는 글의 주제는 대체로 그간의 내 공부와 인생체험을 준거로, 문제의식이나 내용에 있어 ‘내가 제일 잘 쓸 수 있다’ 고 자신할 수 있는 것들 만 고르네. 3년 전에 출간한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가 그렇고, 작년에 쓴 <5.31 교육개혁, 그리고 20년>도 마찬가지네. 말하자면 자신의 ‘고유성’이 두드러지는 주제를 택한다는 말일세.

또 10년 전만 해도 장기적 조망아래 공부계획을 세웠는데, 요즈음은 주로 중기, 단기로 하네. 내 나이를 감안한 것이지. 조금 큰 주제를 구상해도, 그 성과가 1-2년 단위로 줄이어 나올 수 있도록 배열한다는 얘기네.

 

문: 농촌에 생활하시는 게 선생님 연구에 도움이 되십니까?

답: 아직까지는 그렇다네. 주로 여름에는 농사짓고, 겨울에는 글 쓰는 게 내 일과인데, 실제로 글의 구상은 여름에 많이 하네. 농삿일하면서 머리는 계속 움직이니까. 많이 생각하고, 그것도 치열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하지. 그러면 대체로 가을로 접어들면서 글의 방향이 대강 정리가 되네. 내가 서울에 살며, 온갖 잡다한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혔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얼마간 세속과 등지고 사는 이곳 생활에 만족하네.

자연은 인간에게 엄청난 지적 영감과 삶의 활력을 선사하는 화수분이네.

 

                         III.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여러 해 전에 들은 인상적인 일화를 상기했다. 아래 인용구는 제자의 정년퇴임에 참석했던 90 문턱의 노(老)은사의 말씀이다.

 

“내가 정년을 할 때는 이 나이까지 살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정년 후에 공부를 접고, 그렁저렁 여행이나 다니며 재미있게 사는 데에만 열중했지요. 그러다 보니 90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후회막급입니다. 지난 20년 넘는 세월 동안 여유 있는 마음으로 계속 연구에 정진했다면, 아마 한, 두 편의 대작을 썼을 거라는 생각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제자와 후학들은 부디 제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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