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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가을의 문턱에서

2016. 9. 8. by 현강

   

  험한 산을 오르려면, 산 정상 가까이 ‘깔딱고개’라는 데가 있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서 한 걸음도 더 옮기기 어려운 지점인데, 그것만 넘으면 정상까지 큰 힘 안 드리고 오를 수 있는 산행의 마지막 고비다. 그런데 요즈음 내 심경은 마치 막 깔딱고개를 넘은 등산인의 느낌이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그나마 이곳은 ‘재난’ 수준이었다는 서울에 비해 기온이 3-4도 낮았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처음 겪는 폭염이었다. 덥다고 농사일을 소홀이 할 수 없어 한낮의 뙤약볕만 피하면서 농터에서 잡초와의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농터 300 평, 집 앞 잔디와 뒤뜰 화단 200평, 도합 500평을 농약, 제초제 쓰지 않고 비닐/부직포 피복 없이 관리한다는 게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몸무게도 5월 이후 매달 1Kg 씩 빠져 30대 이후 처음 75Kg를 기록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매년 한 여름이면 한, 두 번 허리나 발목 통증으로 고생을 하는데, 올 해는 별 탈 없이 ‘깔딱고개’를 넘긴 것이다. 잘 버텨 준 내 몸에게 감사한다.

 

  지난 주 40여일 만에 잠시 서울에 다녀왔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이 세월이 너무 빨리 달려간다고 푸념하며, “벌써 9월이 아닌가. 올해도 다 간 거야”를 되 뇌였다. 나는 세월이 빠르다는 데는 동의했으나, 올해도 다 갔다는 데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도 황금 같은 네 달이 남았는데. 여년(餘年)이 그리 길지 않은 우리에게 네 달이 어딘가.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제 시작이야”라고 작게 속삭였다.

 

  ‘깔딱고개’을 넘었으니, 이제 시간은 내 편이다. 그간 밀어두었던 산행도 하고, 인적 끊긴 바닷가도 나가 봐야지. 한가한 마음으로 청명한 하늘, 황금들녘, 안개 낀 설악의 연봉도 바라보아야지. 얼마 후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내 마음을 적실 것이고, 그리고 또 얼마 안가, 첫사랑을 닮은 흰 눈이 내리겠지. 아 참! 오랫동안 소홀이 했던 ‘현강재’에도 자주 글을 올려야지. 무엇보다 밀린 공부를 하고 내 영혼을 담은 글을 써야지. 이 모든 일이 내게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 일인가. 또 얼마나 호젓한 산촌의 가을, 그리고 초겨울에 어울리는 일들인가.

 

  앞으로 네 달,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벅찬 마음으로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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