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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빈소를 다녀와서

2016. 7. 10. by 현강

                                   I.

  불과 한 달 안에 가까운 친구 두 명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 위중한 것은 알았지만 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둘 다 너무 서둘러 떠났다. 그들이 아픈 게 마음에 걸려 새 에세이집 <기억속의 보좌신부님>이 출간하기가 무섭게 가장 먼저 보냈는데, 한발 늦어 둘 다 병상에서 책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갔다. 돌아보니 최근 두, 세 해 사이에 주위의 친구들이 너무 많이 세상과 작별했다. 이미 황혼으로 기운지 오래된 나이이니, 한편으로 그럴만하다고 받아들이면서도 반세기 이상 가까이 교유했던 오랜 친구들이 하나하나 미지의 멀 길을 떠나 이제 더 이승에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젊었을 때는 가까운 친구가 세상을 떠나면, 엄청난 경악과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그 여운도 무척 오래갔다. 그 때가 그래도 <순수의 시대>였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고 그런 일이 워낙 잦다 보니, 친지의 죽음과 그에 대한 반응도 얼마간 <일상화>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런 가운데 쉽게 체념하고 슬픔에 익숙해지며 <일상화>의 수렁에 빠져 들어가는 자신이 참 못마땅하다. 빈소에서 만난 친구들도 잠시 망자(亡者) 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을 나눈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소소한 세상 얘기로 화제를 돌린다. 나이 들어 감성이 무뎌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우리도 어차피 조만간 뒤 따라 갈 터라는 초월적 관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일상화>의 여울 속에서 죽음 앞에 서는 우리의 자세가 무언가 제 빛을 잃어 간다는 느낌이다.

 

 

                              II.

  내가 20 즈음이었으니 아주 오래 된 얘기다. 가친(家親)의 아주 가까운 친구 한 분이 갑자기 뇌출혈로 작고를 하셨다. 아버지가 죽마고우의 죽음을 크게 애통해 하셨고, 우리 가족도 큰 슬픔으로 받아 들였다. 한 숨만 푹푹 내 쉬시는 아버지를 뵙기가 딱해서, 온 식구가 며칠 동안 어버지 눈치만 살피며 조심조심 지냈다. 그런데 발인 날, 장지에 다녀오셔서 나와 저녁 겸상을 하셨던 아버지가 밥 한 그릇을 어렵기 않게 해 치우셨다. 상심(傷心)으로 식사도 제대로 드시기 어려우실 것으로 지레 짐작했던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래서 당돌하게 얼마간 비아냥하는 어투로 어른께 말씀을 건넸다.

 

“그렇게 슬퍼하시더니, 식사는 그냥 잘 하시네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무척 쓸쓸한 낯빛으로,

“어떻하겠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

라고 답하셨다. 나는 더 이상 대꾸할 말을 잃었다.

 

  훗날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자신의 금쪽같은 아들을 잃고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도 다시 밥상에 다가서는 자신을 향해 자책하시는 글을 쓰신 것을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옛날 아버지 말씀을 기억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 속에서도 관중을 웃겨야 했던 광대의 얘기를 담은 해리 골든(Harry Golden)의 단편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나 퀸(Qween)이 처음 부르고 그 후 여러 번  리메이크된 같은 이름의 노래도 인생의 이러한 잔인한 단면을 읊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상화>를 통한 슬픔의 극복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기제인지 모르겠다.

 

 

                                III.

   빈소에 다녀 온 날 저녁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가 내 마음을 크게 적셨다. 그래서 가까운 친지들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라고 써 보았다. 건강한 가운데 행복하다면 그 이상 바랄게 무얼까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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