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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대통령과 현인' 재록(再錄)

2016. 11. 3. by 현강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심기가 너무 불편하다.  아래에 약 4년전에 <현강재>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린다.  그 때 내가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현인 대신 무녀(巫女)가 있었다.

 

대통령과 현인(賢人)

삶의 단상 2012.12.26 08:53 |

                          

                                I.

  나는 평소에 대통령 가까운 거리에 현인(賢人)이 한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는 굳이 아는 것이 많고 지혜가 출중한 글자 그대로의 현인일 필요는 없다. 그 보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 그리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면 된다. 굳이 비서실장이나 특보, 수석과 같은 직책을 맡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사람이 언제라도 대통령에게 다가갈 수 있고, 대통령도 그 사람을 크게 신뢰해서 평소에도 그와 고민을 나누고, 중요한 결정에 앞서 그의 의견을 묻는 관계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이 그런 사람 하나 옆에 두기가 무어 그리 어렵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사심 없는 상식인, 그러면서 대통령과 서로 신뢰하고 깊이 교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대통령을 옆에 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고, 그게 가능하다면, 그것은 대단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적절치 못한 사람을 새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고 또 그런 생각을 했다.

 

                              II.

  매사에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사에 대해 많은 이가 공유하는 적절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하고, 상황을 편견 없이 인지할 수 있는 건강하고 신중한 판단능력이 있어야 한다. 대체로 그런 사람은 합리성과 균형감각을 갖추고 얼마간의 상생의지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주변에 많은 이들은 그에 이르기에 몇 %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심이 없다는 것도 말이 쉽지, 실제로 그런 사람이 그리 흔치 않다. 자신의 입신이나 눈앞의 작은 이익에 급급한 사람은 많아도 국리민복이나 공공성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더욱이 정치주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권력욕이 남달리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라 전체와 큰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정권과 당리당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처럼 막상 찾자면 사심 없는 상식인도 흔치 않은데, 그런 사람을 대통령이 제대로 찾아내서 지근(至近)에 두고,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교감, 소통, 자문한다는 일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사람이 많아도 그런 사람은 드물다. 내가 ‘현인 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국왕이나, 대통령 혹은 수상의 배우자가 그 ‘현인’ 구실을 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집안의 야당’ 운운 하는 것도 거기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 당선자는 싱글이니 그런 배우자도 없다.

 

                               III.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가로서 좋은 자질을 많이 갖추고 있다. 애국심이 강하고 원칙을 중시하며 결단성과 카리스마도 있다. 영민함도 느껴진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그녀에게 가장 우려하는 것은, 폭넓게 의견을 나누고, 함께 고민하고 교감하며, 생각을 여과(濾過)하는 ‘소통능력’의 부족이다.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후보자 간에 세 차례 정책토론이 있었는데, 나는 박근혜 후보자에게서 예행연습이 부족했거나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정책토론은 선거과정의 ‘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 각 후보자는 마땅히 여러 차례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 자신을 한껏 풀어 놓고, 여러 전문가들과 자유롭게 논박하면서 스스로의 강점을 보강하고 빈틈을 메우는 고된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런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박근혜 당선자는 정책결정과정의 최종단계에서 얼마간 혼자 고민하고 홀로 결정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나라의 정책결정과정에서는 끊임없는 토론이 필요하며, 그 마지막 단계에서는 최종적으로 사안을 심도있게 검토하는 공동의 숙고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박근혜식 결정과정을 보면, 전체 과정에서 의견수렴과 토론이 부족하고, 특히 마지막 검토과정에서 그녀는 언제나 혼자인 것 같다. 대통령은 ‘외로운 결정자’라고 하지만, 그녀의 경우 그 정도가 너무 지니치다.

 

  대통령 당선자의 ‘내게 맡겨라’ 식의 정치 스타일은, 그간 모든 고난과 역정을 홀로 헤쳐 온 그녀 특유의 인생역정과 무관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나랏일을 혼자 결정해서는 안 된다. 무엇 보다 자신에 대한 과신(過信)은 금물이다. 그것은 자칫 독선과 아집, 그리고 사고의 폐쇄회로에 빠지기 쉽다. 그보다는 인간은 누구나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 함께 고뇌하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 혼자 쓴 ‘모범답안’은 대부분 모범답안이 아니다.

 

  많은 대통령 연구가들이 입을 모으는 것이, 성공한 대통령은 남다른 소통, 교감, 그리고 설득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고 정책적 관점이 출중하더라도 소통능력이 부족하면 결국은 실패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그 재직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측근에 겹겹이 에워 쌓여 청와대라는 구중궁궐(九重宮闕)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평소에 소통능력이 탁월하던 사람도 결국은 ‘불통’(不通)에 의해 ‘결정무능력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청와대 입성하기 전부터 ‘국민 대통합’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을 자신의 ‘입’으로 발탁하니 어찌 걱정이 안 될 것인가.

 

                              III.

  나는 197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신문, 잡지에 정치평론은 많이 썼다. 그런데 글을 넘기기 전에, 늘 연구실에 대학원생 조교에게 글을 읽혔다. 그러면서, “상식에 어긋나는 것만 지적하게‘하고 부탁했다.

 

  정책을 결정할 때나, 사람을 발탁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이 ‘상식’에 어긋나지 않느냐를 점검하는 것이다. 상식은 국민수준의 통찰력이고, 국민의 평균적 마음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결정이 국민생각과 크게 괴리가 있으면, 그건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소통하는 대통령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할지 몰라도 결정적 낭패는 절대 겪지 않는다.

 

  그런데 소통은 무엇인가. 소통은 자신의 둘러싸고 있는 장벽을 스스로 깨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방하는 것이다. 소통은 또한 타인에 대한 신뢰,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다. 타인을 신뢰하고, 그들이 내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으면, 소통에 나서게 된다. 아니 소통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된다. 신뢰를 사회적 자산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새 대통령이 국민을 신뢰하고, 그들 누구. 어떤 부류와도 진심으로 소통할 생각을 한다면, 그래서 진정으로 국민대통합의 대장정(大長程)에 나선 다면, 굳이 대통령 곁에 현인이 없어도 무슨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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